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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세무사들의 국민청원

  • 2018.01.15(월) 09:00

관행적으로 맡겨진 4대보험 대리업무 개선 요구
세무사들도 의견 갈리지만 시스템 개선 필요

한 때 세무사들이 노무사 영역까지 업역을 확장한 것으로 자평했던 4대보험 대행업무가 세무사들에게 없으니만 못한 업무가 되고 있습니다다. 추가 보수는 발생하지 않는 반면 4대보험 행정시스템 미비로 업무 부담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죠.
 
최근에는 젊은 세무사들을 중심으로 4대보험 업무에 대한 손질을 요구하는 국민청원까지 제기된 상황인데요.
 
세무사 개업 5년차로 자신을 소개한 진모 세무사는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4대보험 제도의 행정운영이 누구의 피와 땀이 녹아 이루어지고 있는지 아십니까'라는 제목의 청원을 올렸습니다.
 
4대보험 신고 등의 업무가 복잡하고 불편하게 돼 있는데다 세무사의 업무가 아닌데도 관행처럼 세무사들이 전담하고 있으니 정부가 나서서 제도를 편리하게 바꾸고 세무사들에게 이를 대행하게 하려면 합당한 보상을 하라는 내용입니다.
 
이 청원은 세무사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15일 현재 청원 참여인원이 8400명을 넘어섰습니다.
 
그렇다면 세무사들은 본업인 세무대리 업무도 아니며 국민청원을 낼 정도로 하기 싫은 일을 왜 하고 있는 것일까요.
 
# 끼워 맡긴 사업자와 끼워 판 세무사
 
4대보험 업무는 원래 사업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사업자는 인력과 봉급 변동 사항이 생기면 그 내용을 각 공단에 신고해야 하죠. 소득에 따라 보험료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4대보험 업무를 직접 하기 어려운 사업자는 노무사에게 맡기는 것이 정상인데요. 하지만 영세 사업자들은 4대보험 신고 때문에 별도로 노무사를 이용하기 쉽지 않습니다. 비용부담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이 때 사업자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세무사인데요. 영세한 사업자들도 세금신고는 해야하니까 세무사가 노무사보다는 좀 친숙하거든요. 세무사는 사업자의 급여관리도 해주고 있기 때문에 장부작성이나 세금신고 대리를 맡기면서 "이것도 좀 해달라"는 끼워 맡기기가 가능했습니다. 
 
세무사들도 이런 사업자의 상황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세무대리 영업을 하면서 "그것도 서비스(공짜)로 해드릴게"라며 4대 보험업무를 끼워 판 거죠. 심지어 한국세무사회가 나서서 4대보험 업무를 세무사의 업무라며 적극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 편치 않은 4대보험 업무
 
하지만 4대보험 업무는 세무사들에게 상당한 부담이 됐습니다. 덤으로 해주는 일이다보니 보상은 없는데 그 업무량이 만만치가 않았거든요. 영세한 사업장일수록 직원들의 입퇴사가 빈번한 데다 4대보험 시스템은 제대로 통합이 안돼 있어 매번 각 공단에 개별적으로 연락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본업인 세무신고보다 4대보험 때문에 더 바쁘다는 세무사 사무소 직원들의 원성이 컸죠. 세무사들이 수주해 온 가욋일이 세무사 사무소 직원들에게 전가된 것이죠.

무료로 해주는 일이지만 책임이 뒤따르는 것도 부담입니다. 세무사 사무소에서 공단에 신고서를 넣었는데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경우 사업자에게 보험료가 징수될 수도 있는데요. 이 때 사업자는 세무사 탓을 하며 책임을 지웁니다. 
 
서울의 한 세무법인 대표세무사는 "일선 사무실 직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이 4대보험 업무"라며 "세무사 업계에도 직원 고용 불안정 문제가 심각한데 가장 큰 원인제공을 4대보험 업무대리가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설명했습니다.
 
최근에는 이 문제가 세무사들을 직접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세무사의 숫자가 늘어나고 사무직원 채용이 어려워지면서 일부 젊은 세무사들이 직접 4대보험 업무를 챙기게 된 것이죠. 젊은 세무사들을 중심으로 국민청원 운동까지 벌어진 이유입니다.
 
# 세무사의 적은 세무사?
 
세무사들의 고충 해결에 같은 세무사들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부 세무사들의 경우 4대보험 대리를 서비스로 해주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거든요. 
 
세무사들 전체의 이익을 따져봐야 하는 한국세무사회 차원에서 이번 국민청원 운동에 별로 공감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세무사회 한 관계자는 "세무대리와 4대보험 대리를 엮어야만 겨우 먹고 사는 세무사들도 많다. 딱 잘라 낼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세무사회는 과거에도 세무사들의 업무적인 문제보다는 업역확대라는 명분에 더 무게를 뒀습니다. 2016년에는 4대보험 업무를 노무사가 통합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노무사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세무사회가 적극 반대하기도 했죠.

실제로 청와대 국민청원에 세무사회 차원의 집단적인 지원은 없는 상황입니다. 청원이 제출된 지 열흘이 지난 지금도 청원 참여인원이 8400명대에 그치고 있는데요. 청와대 국민청원은 30일 동안 20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추천(참여)하는 경우 청와대 및 정부가 청원에 대해 공식적인 답변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세무사 2만명과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세무사 사무소 직원들이 있지만 앞으로 청원 참여인원이 크게 늘어나기는 어려워보입니다. 하지만 청원에 참여한 세무사들은 "이참에 4대보험 문제가 공론화돼 불편하고 불합리한 신고시스템이라도 고쳐지면 좋겠다"고 기대합니다. 
 
"내가 세무사인가? 4대보험 관리사인가?" 세무사로서의 자괴감을 털어놓는 말로 시작한 진모 세무사의 국민청원은 계륵이 되어버린 세무사의 4대보험 대리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요. 
 
▲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진 모 세무사의 청원글/ 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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