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서 부득이하게 상속하는 것보다 사전에 증여하는 것이 절세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제 자산가들 사이에서 상식이 됐다. 배우자나 직계존비속간에는 10년에 한 번씩 일정액의 증여재산공제를 받을 수 있고, 부동산처럼 자산가치가 오르는 재산일수록 미리 물려줘야 세금부담이 줄기 때문이다.
실제 자산가들의 증여 트랜드를 살펴보면, 이러한 절세 방정식이 재확인되는 모습이다. 최근 들어 20대 이하, 특히 10살이 채 되지 않은 어린 자녀들에 대한 증여가 급증했고, 부동산 자산의 증여도 많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택스워치가 최근 증여 트랜드를 확인하기 위해 국세청에 수집된 증여세 신고 및 징수현황(2013~2017년분)을 집중 분석했다.
# 세액공제 축소탓?…증여 자체가 늘었다
우선 증여 자체가 크게 증가했다. 각종 공제를 받고도 증여세를 낸 증여 건수(세액 결정건수)는 2013년 10만9644건, 2014년 10만5533건, 2015년 10만1136건으로 소폭 감소했으나 2016년에 12만4876건 2017년에는 14만6337건으로 급증했다. 전년대비 증가율로는 2016년 23.5%, 2017년 17.2%가 늘었다.
증여재산은 더 큰 폭으로 늘었다. 2015년 14조7295억원에서 2016년 18조401억원으로 3조원 넘는 증가세를 보인데 이어 2017년에는 24조5254억원으로 전년대비 6조5000억원이 넘는 증가폭을 보였다. 한 번 물려줄 때 큰 금액의 재산을 물려줬다는 의미다.
증여 건수와 금액이 2016년부터 갑자기 많이 증가한 것에는 제도 변화가 한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증여세를 자진해서 신고납부하는 경우에는 신고세액공제라고 해서 납부할 세액의 일정액을 빼주는데, 그 공제율이 2017년부터 해마다 크게 줄도록 재설계됐다.
증여세 신고세액공제율은 2016년까지 10%였지만 2017년에 7%로 줄고, 2018년에는 5%, 2019년부터는 3%로 줄었다. 1억원의 증여세를 내게 됐을 때 2016년에는 1000만원을 빼고 내면됐지만, 2019년에 증여하면 300만원만 공제받는다.
신고세액공제는 단순히 자진신고만 해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산가들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물려줘서 세액공제를 많이 받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제율이 줄어들기 직전인 2016년에 특히 증여 건수가 급증한 까닭이다. 2019년에 5%에서 3%로 또 공제율이 줄었기 때문에 통계가 없는 2018년에도 증여는 늘었을 가능성이 높다.
# 어릴수록 좋다?…10세 미만 자녀 수증자 급증
사전증여가 절세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10년'마다 증여재산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는 6억원까지 공제되고 자녀도 성년이면 5000만원, 미성년이면 2000만원을 빼고 증여세를 계산한다. 태어나자마자 2000만원을 물려준 후 10살 때 2000만원 20살에 5000만원, 30살에 5000만원을 증여하면 산술적으로 세금 한 푼 없이 1억4000만원을 물려줄 수 있다.
실제 증여를 받은 수증자의 연령대를 보면 30세 미만의 수증자가 크게 늘었음이 확인된다. 특히, 10세 미만 수증자 증가율이 무섭게 올랐다. 전년대비 연령대별 수증자수 증가율을 보면 10세 미만의 경우 2017년에 무려 48.8%가 증가했다. 2016년 2179명이던 10세 미만 수증자는 2017년 3243명까지 불었다.
같은 기간 20대(20세~29세) 수증자도 전년도보다 26.7% 늘어 뒤를 이었고, 10대(10세~19세) 수증자도 24.4%가 늘었다.
증가율이 아닌 전체적인 수증자 수는 40대와 50대에 집중돼 있었다. 2017년 기준 40대 수증자가 3만8887명으로 가장 많았고, 50대 수증자가 3만2940명, 30대 수증자가 2만8368명으로 뒤를 이었다. 사실상 상속이 임박한 세대의 자녀세대가 40~50대이기 때문에 사전 증여가 직계비속에게 집중된 것으로 해석된다.
# 집값 오르기 전에 주자?…부동산 증여 급증
증여재산의 종류에도 시대흐름이 반영됐다. 세무전문가들은 자산가치가 오를 가능성이 높은 재산부터 증여하라고 조언하는데, 최근 수년간 부동산의 가격상승은 사전 증여를 부추겼다.
실제 집값이 오르는 시기에 증여시기는 중요하다. 최근 5년 사이 3억원이 올라 시가 8억원이 된 주택이 있다고 하자. 이 주택을 5년 전에 증여했다면 5억원에 대한 증여세를 부담하면 되지만, 지금은 8억원에 대한 증여세를 내야 한다.
최근 재산종류별 증여건수를 보면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재산의 증여가 크게 늘었음이 확인됐다. 부동산 증여는 2013년(5만6806건) 이후 2014년(5만7069건) 2015년(5만5053건)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2016년 7만2470건으로 급증한 다음 2017년에도 8만7064건으로 1만5000건 이상 늘었다. 2016년 대비 2017년에 증여건수가 오히려 줄어든 유가증권이나 200여건의 소폭 증가에 그쳤던 금융자산과 비교된다.
증여금액 기준으로도 부동산 증여가액은 2013년 6조5722억원, 2014년 7조42억원, 2015년 6조7606억원으로 정체됐다가 2016년 9조5786억원으로 3조원 가량 뛰었고, 2017년에는 13조3537억원 규모로 13조원을 돌파했다. 증여건수 증가폭에 대입해보면 부동산을 물려주는 사람도 크게 늘었지만 이왕 물려줄 때 비싼 부동산을 물려줬다는 뜻이다.
부동산은 전체 증여에서의 비중도 크다. 2017년 기준 세금을 부담한 총 증여건수는 14만6337건인데, 부동산 증여건수는 8만7064건으로 전체의 59.5%를 넘었고, 같은 기간 증여금액도 부동산(13조3537억원)이 절반이 넘는 비중(54.4%)을 차지했다.
이런 현상은 2018년에도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연도별 주택증여건수가 2017년 8만9312호에서 2018년 11만1863호로 급증했다. 관련 증여세 납부액도 늘어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