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환경부가 제품의 재포장을 금지하는 규칙을 만들려다가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묶음 판매를 할 때 불필요한 재포장을 금지하려는 게 규제의 취지였는데 '원 플러스 원' 같은 할인 행사를 아예 막는 규정이라는 반발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해입니다. 환경부가 할인을 막을 이유가 없습니다. 정부의 어느 부처라도 유통업체의 할인을 막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환경부는 국민과의 소통도 부족한 상황에서 새로운 규제안의 문구를 명확하게 다듬지 않고 성급하게 규제개혁에 나섰다가 역풍을 맞게 됐습니다.
지난 2018년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이 환경부의 의뢰를 받아 만든 보고서는 '1+1 또는 정품 판매 시 불필요한 이중 포장 사례가 많아지고 있어 이를 자발적 협약 또는 포장규칙 제11조(포장제품의 재포장 자제) 규정을 금지 규정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권하고 있습니다. 할인이 문제가 아니라 포장이 문제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포장을 막자던 규제가 할인을 막겠다는 규제로 이해되면서 환경부는 결국 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습니다.
정부의 규제 재검토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번 해프닝으로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포장재 쓰레기에 대한 정책이 후퇴할까 우려스럽습니다. 환경부가 포장에 대한 규제에 나서야 할 만큼 현재 우리나라의 쓰레기 문제는 심각합니다.
정부는 그동안 꾸준히 각종 포장재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올해 1월1일부터 대형마트의 자율포장대에서 박스 테이프와 끈이 사라진 것이 대표적입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3개 사에서 연간 사용되는 포장용 테이프와 끈의 양은 658t 수준입니다. 이는 상암구장(9126㎡) 857개를 덮을 수 있는 양입니다.
이에 환경부는 지난해 8월 각 대형마트와 자율협약을 맺고 매장 안에서 자율포장대와 종이박스를 모두 없애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박스는 폐지로 버릴 것을 재활용하는 것이라는 지적에 테이프와 끈만 없앴습니다. 여기서도 환경부의 서투름이 드러났네요.
정부가 포장에 대한 규제를 들여다 보는 것은 심각한 쓰레기 문제 때문입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2월 전수조사를 통해 발견된 불법·방치 폐기물 120만여t 중 60%인 72만6000t을 처리완료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2월부터 지난 5월까지 전국적으로 27만5000t의 불법 쓰레기 더미가 새로 쌓였습니다. 불법 폐기물 더미의 80%는 일회용품 등 폐합성수지입니다.
코로나 19 등의 영향으로 일회용품 사용이 크게 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포장과 배달음식을 많이 먹다 보니 관련 쓰레기양이 늘고 있는 것입니다.
재활용 쓰레기가 늘면서 재활용 폐기물 가격은 내려가고 있습니다. 올해 2월 kg당 289원이었던 페트(PET) 가격은 이달 기준 215원으로 떨어졌고, kg당 554원이었던 폐플라스틱(PE재생플레이크) 가격은 이달 480원으로 내려갔습니다. 쓰레기 관련 업체 입장에서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무단투기를 부르는 구조입니다.
이런 쓰레기 중 상당분이 포장재 쓰레기입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음식물을 제외한 생활폐기물 중 포장폐기물 비율은 62%(2014년 기준)에 달합니다. 매년 5% 이상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런 상황은 분명히 유통업체들의 묶음 재포장에 일부 책임이 있어 보입니다. 유통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과대포장과 재포장은 이제 근절할 때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