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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홍원식 회장이 명예롭게 퇴임하는 법

  • 2021.10.12(화) 15:28

불리한 건엔 거리두기… '회피성 매각'만 강조
당분간 영향력 지속…마지막 책임 다해야

"모든 책임은 여기서 멈춘다(The buck stops here)"

미국의 제33대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의 집무실 명패에 새겨진 문장이다. 지난주 진행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선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모습에서 이 문장을 떠올렸다. 자리의 무게감은 다르지만, 똑같이 책임을 다해야 하는 위치에 선 두 사람의 모습이 사뭇 달라서다.

이날 홍 회장은 증언하는 내내 고개를 숙였다. 육아휴직 후 복직한 여성 팀장의 퇴사를 종용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부끄럽다"고 답했다. 지난 4월 발생했던 '불가리스 코로나19 예방 효과 주장 논란'에 대한 질의에는 "잘못된 일이며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임직원과 대리점주 등 구성원의 심적·물적 피해에도 유감을 표했다.

다만 사과와 별개로 '책임'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홍 회장은 여성 팀장의 퇴사를 종용한 것은 인사팀이라고 했다. 구체적 지시를 내리는 녹취록이 퍼진 상황임에도 자신은 해당 팀장의 임신 사실조차 몰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가리스를 둘러싼 논란은 신문 기사로 처음으로 접했다고 밝혔다. 수십 개 언론사에 사전 안내된 간담회 아니었냐는 질문에는 얼버무렸다.

/사진=비즈니스워치

홍 회장은 남양유업 사태의 돌파구로 '제3자 매각'을 택했다. 자신이 회사에서 손을 떼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책임 회피는 계속됐다. 홍 회장은 매각 무산의 책임은 전적으로 한앤컴퍼니에 있다고 강조했다. 남양유업과 자신은 '피해자'라고 항변했다. 나아가 하루빨리 한앤컴퍼니와의 소송을 마무리하고 제3의 '적합한' 매각자를 찾겠다고 밝혔다. 이 대목에서 홍 회장의 눈빛은 유독 날카로웠다.

홍 회장의 태도는 책임을 회피하면서 자신의 입장만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의원들의 질타는 당연했다. 이용호 무소속 의원은 "아무것도 아는게 없느냐. 바지사장이냐"고 몰아 붙였다. 사회를 맡았던 김성주 정무위원회 간사(더불어민주당)마저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제가 좀 흥분해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공허한 사과가 불러온 참상이었다.

물론 홍 회장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 항상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중간관리자와 한앤컴퍼니가 일을 망쳤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억울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홍 회장은 남양유업의 '최고경영자'이자 '오너'다. 최고경영자는 결과를 책임지는 자리다. 지난 상반기 홍 회장이 남양유업에서 8억원이 넘는 급여를 받은 것도 이 책임에 대한 대가다.

게다가 홍 회장이 제시한 해법인 제3자 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될지도 미지수다. 법원은 한앤컴퍼니가 낸 홍 회장 소유의 남양유업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홍 회장은 재판이 마무리되기 전에 남양유업 지분을 팔 수 없다. 여기에는 최소 3~5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양유업이 소송에서 승리하더라도 빠른 매각은 여의치 않다. 홍 회장의 '노쇼'로 남양유업은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재판 과정에서 홍 회장에게 불리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신뢰도는 더욱 낮아질 수 있다. 이 경우 제3의 인수 희망자가 나타나더라도 한앤컴퍼니 이상의 조건을 제시할 가능성은 낮다. 홍 회장이 남양유업을 내려놓기까지 아직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것이 홍 회장의 노림수일 수도 있다.

결국 남양유업의 미래는 홍 회장의 향후 행보에 달려 있다. 스스로의 '명예로운 퇴진'은 이미 어려워졌다. 여론도 등을 돌린지 오래다. 정치권도 향후 남양유업을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홍 회장이 어차피 매각할 것이라는 핑계로 변화를 피할수록 상황은 최악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 피해는 오롯이 남양유업이라는 회사와 그 구성원이 감내해야 한다. 홍 회장이 매각 이전에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홍 회장이 진정성을 보이길 바란다. 제3자 매각을 부르짖기에 앞서 조직과 문화를 바꿔야 한다. 매각도 자신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어야 한다. 남양유업은 국내 유업계의 대표 기업이다. 임직원, 대리점주, 낙농가가 남양유업만 바라보고 있다. 남양유업의 매각은 이들을 위한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그것만이 100년 기업 남양유업이 얼마 남지 않은 명예나마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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