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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워치]그린뉴딜, 20년 전력 산업 구조 바꿀까

  • 2021.02.01(월) 08:00

탈석탄·탄소중립 목소리 높아져…정부, 신재생에너지 발전 목표 상향
현행법 '발전은 발전사만'…한전에 신재생에너지 겸업 허용 법안 발의
정부는 반대 뜻 꺾어…발전 자회사·민간 발전업계 우려는 여전

전기(電氣)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전기가 큰 이슈입니다. 전기가 모자라나요? 아닙니다. 전기를 만드는 방식을 바꾸자는 논의가 활발합니다. 

그동안 화석연료인 석탄을 태워 전기를 만들다 보니 희생된 환경을 이제는 보호해야 한다는 기조가 전 세계적인 공감대를 얻고 있습니다. 원자력 에너지도 퇴출하자는 목소리가 높죠. 핵폐기물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은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막 임기를 시작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출근 첫날 처음 한 일이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약속인 파리 기후변화협약에 복귀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우리 정부도 고민이 많습니다. 석탄화력발전의 의존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석탄화력발전은 발전 과정에서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 물질인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 등 다양한 오염물질을 배출합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2020에너지통계연보'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현재 13개 부지에 총 61기(3만 540.7MW)의 석탄화력발전기가 운전 중입니다. 총발전량에서 석탄화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9년 기준 51.0%입니다. 한국의 석탄화력발전량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다고 합니다. 눈총이 따갑습니다.

# "석탄 그만 태우고 빛과 바람 누려보자"

결국 발전 방식을 환경오염이 적은 방법으로 바꾸는 것이 과제입니다.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는 것이 관건입니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국내 총발전량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5.62%였습니다. 이 수치는 지난 2015년 6.61%에서 2018년에는 8.88%까지 올라갔지만, 전체 전력소비량 증가 속도가 너무 빨랐습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증가속도가 따라가지 못해 결국 원전 등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수치가 다시 내려갔습니다.

이런 현상은 정부도 고민 하는 부분입니다. 그동안 정부는 지속적으로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량을 늘리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특히 지난해 관련 정책을 대폭 강화합니다. 지난해 7월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국가 발전 전략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습니다. 주요 정책 중 저탄소 녹색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그린뉴딜'의 핵심은 석탄화력발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자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100% 신재생에너지 발전사회를 이루는 게 목표입니다.

정부는 이를 위해 2019년 기준 12.7GW(기가와트) 규모인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오는 2022년 26.3GW, 2025년에는 42.7GW까지 단계적으로 높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 생태계 육성을 위한 대규모 연구개발(R&D)과 설비 보급에 오는 2025년까지 11조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입니다. 

자, 이제 목표가 정해졌습니다. 추진할 차례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걸 누가 할까요?

# 한전, 건물주였다가 배달부였다가

생각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한전입니다. 매달 날아오는 전기 요금 고지서에 인쇄된 '한국전력공사'라는 여섯 글자. 전기하면 한전 아닙니까. 한전이 발전방식을 개선하면 될 일이겠네요.

그런데 사실 안 된다네요. 한전은 전기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고 합니다. 한전은 가정과 사업장까지 전기를 보내주는 업무만 하는 곳입니다.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는 따로 있습니다. 

2000년대 이전 한전은 발전을 포함한 전기사업 전 분야를 도맡아 하던 독점회사였습니다. 하지만 독점구조를 해체하기 위한 민영화가 추진되면서 발전 자회사들만 따로 분리되는 수술을 겪게 됩니다. 

그 결과 한전은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남동발전,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 등 6개의 발전 자회사를 두게 됐습니다. 한전은 발전자회사로부터 전기를 사서 각 가정과 사업장에 배달해주는 배달 기사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건물주가 입점업체 음식을 배달해주는 모양새네요.

그래도 한전이 발전소의 지분을 들고 있는 지주회사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현행법에 따라 한전이 발전 자회사의 전기 생산 방식을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면 될 듯합니다. 

# 한전, 발전 사업 겸업 4전5기

하지만 한전의 생각은 다릅니다. 한전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직접' 하고 싶어 합니다. 현재 한전은 전기사업법에 따라 발전 사업을 직접 하는 것이 금지됐습니다. 하지만 법을 고쳐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발전 사업만큼은 허용해 달라는 게 한전의 요구입니다.

국회에서도 그동안 한전의 요구에 부응해왔습니다. 지난 2015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노영민 의원(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이 한전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허용안을 담은 전기사업법을 발의한 이후 2016년 홍익표 의원(더불어민주당)과 2017년 손금주(당시 국민의당) 의원 등이 같은 내용의 법안 입법을 꾸준히 시도했습니다.

지난해 7월 21대 국회에서도 송갑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시장형 공기업이 대통령령으로 정한 재생발전사업을 하는 경우 두 종류 이상의 전기 사업을 허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현재 시장형 공기업 중 전기사업자는 한전과 한전의 발전 자회사 6곳, 그리고 한국지역난방공사와 한국가스공사 등 총 9곳이 있습니다. 이 중 한전을 제외한 8개 기업은 발전사업자로 허가돼있어 이미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가능합니다. 결국 개정안은 한전에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을 허용해주자는 내용입니다.

굳이? 당연하게도 한전의 발전 자회사들의 불만이 나옵니다. 그동안 풍력발전 등에 참여해 온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전이 발전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전력망 사업자의 독점을 막는다는 기존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을 반대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또 한전과 같은 대규모 사업자가 들어오면 소부장 업체들로서는 협상력 등이 부족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 국내 시장은 거쳐갈 뿐(믿어주라)

이런 반대 주장에 대해 한전 측은 걱정할 것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 이유로 한전의 최종 목표는 국내 시장의 장악이 아니라 해외시장 진출이라는 점을 꼽고 있습니다

지금도 한전은 세계 곳곳에서 원자력발전이나 석탄화력, 태양광 등의 발전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28개국에서 총 50개 프로젝트(2019년 기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발전업계의 국제적인 추세가 탈석탄, 탄소중립으로 기울다 보니 난항을 겪고 있는 사업장이 많습니다. 

한전이 추진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자와 9, 10 석탄화력발전 사업은 현지 환경단체로부터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했다는 소송이 제기됐습니다. 만약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시행할 경우 사업 연기는 불가피합니다. 베트남의 붕앙-2 석탄화력발전 사업은 아예 현지 법이 바뀌면서 베트남정부의 보증여부가 불투명해졌습니다. 미국의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는 법 개정의 영향으로 붕앙-2 사업의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런 압박은 국제적인 환경기준이 강화되면서 점차 많아질 일입니다. 이에 한전은 신재생에너지 활용 발전을 통해 해외진출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력'이 필요합니다. 국내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해외에서 영업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추가로 한전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민간 업체 참여가 어려운 대형사업에만 참여하겠다며 반대진영의 설득에 나섰습니다. 소규모 발전소가 아니라 최소 발전용량이 40MW를 초과하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만 뛰어들겠다고 하네요. 영화 '독전'에서 배경으로 나온 전남 영광군 백수읍의 풍력발전소 규모가 40MW입니다. 2MW급 발전기 20기가 돌아가는 곳입니다.

# 안됩니다→어렵습니다→검토해볼게요→그러시죠

한전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 허용안에 대한 산업부 의견

2015년 11월9일 산자위
◯산업통상자원부제2차관 문재도
현재 한전은 발전·판매 겸업금지 규정에 의해서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직접 하지는 못하고 발전사업자들이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하면 그것을 구매해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조항을 유지하는 것이 현재 법체계에 맞다고 생각합니다.

2017년 2월14일 산자위
◯산업통상자원부제2차관 우태희
저희는 송구스럽지만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그 이유는 한전이 신․재생에 직접 참여하는 것보다는 한전의 역할은 접속을 더 원활히 하고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는 데 더 기여를 해야지 직접 할 일은 아니고 현재도 SPC 제도를 통해서 참여하는 그런 간접 참여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고 저희는 보고 있습니다.

2017년 2월20일 산자위
◯산업통상자원부제2차관 우태희
한전의 신·재생 발전 허용에 대해서 정부는 반대 입장입니다. 그 이유는 이런 법안은, 물론 신·재생 보급을 위해서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한전의 독과점적 지위를 더 강화시켜 주는 결과를 갖게 하고 또 공정한 경쟁 환경을 저해한다는 그런 입장이고, 한전이 해야 될 일은 계통접속 같은 것에 더 신경을 써야지 신·재생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보고요. 길목 좋은 곳에 먼저 한전이 신·재생을 한다고 그러면 골목상권 문제가 생긴다고 봅니다.

2017년 9월21일 산자위
◯산업통상자원부차관 이인호
여전히 저희가 좀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말씀드리고요. 이 부분은 저희가 지금 검토를 하고 있어서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어떠실까 그런 생각입니다.

한전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허용안이 담긴 전기사업법 개정 시도는 이번이 4번째입니다. 앞선 도전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개정안을 반대하면서 상임위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은 분위기가 다릅니다. 산업부의 입장이 바뀐 것입니다. 지난해 그린뉴딜 선언으로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목표 발전량이 크게 상향되다 보니 한전과 같은 대형사가 뛰어들어 시장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에 산업부도 이제 공감했습니다. 그동안은 개정안이 한전에 특혜를 주는 모양새라서 반대했지만, 이제는 국가적인 목표가 우선이라는 명분이 생겼습니다.

그린뉴딜 추진과 산업부의 입장 변화. 한전도 전기사업법 개정안의 통과 가능성을 높게 본 것으로 파악됩니다. 송 의원의 개정안 발의 직후인 지난해 9월 해상풍력사업단을 발족했습니다. 사업단을 통해 민간이 참여하기 어려운 대규모 해상 풍력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게 한전 측의 설명입니다. 그동안 한전은 특수목적회사(SPC)에 출자해 간접적으로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발을 걸쳐왔습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을 하겠다는 부서를 회사 내에 만든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사실 아직 개정안의 통과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실에서도 산자위 법안소위 통과 가능성은 전보다 커 보이지만 법사위와 본회의 통과 여부는 알 수 없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확실한 건 대한민국 전기 산업에 신재생에너지 발전 강화라는 큰 변화가 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에너지워치가 따라가보겠습니다. 오시죠. 편히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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