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증시를 달궜던 키워드는 단연 '배당'이다. 정부의 배당활성화 정책과 맞물려 배당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아지고 기업들의 배당도 크게 늘어났다. 배당 이슈는 평소 시장에서 주목해 왔지만 정책적 지원이 더해지면서 새롭게 빛을 발한 케이스다. 이와 엇비슷하게 올해 주목받는 이슈가 있다. 바로 액면분할이다. 액면분할 자체는 전혀 새롭지 않지만 정부의 온기 어린 시선이 더해지며 조명받고 있다. 한마디로 액면 쪼개기가 증시를 홀리고 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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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아모레퍼시픽은 10대1의 액면분할을 결정했다. 지난해 주당 200만원을 넘어선 후 300만원까지 고속질주하며 황제주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액면분할에 나선 기업의 시가총액 규모로는 2010년 제일기획 이래 최대다.
특히 연초 한국거래소가 액면분할 촉진을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힌 후 나온 액분 소식에 시장의 관심은 뜨거웠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정책지원과 맞물려 제2, 제3의 아모레퍼시픽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펀더멘털 변화는 없지만..
액면분할은 1주당 액면 금액을 나눠 저액면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국내 주식은 액면가가 정해져 있고 이를 더 잘개 쪼개는 것이다.
액면분할을 하면 주식수가 증가하고, 주당 가격이 낮아지지만 자본금이나 기업가치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이를테면 액면가가 5000원이면서 주당 10만원, 전체 발행주식수가 1억주인 주식을 주당 500원으로 액면분할하면 주가는 1만원으로 낮아지고, 발행주식수는 10억주로 늘지만 기업가치는 10조원이 그대로 유지된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액면분할을 해도 기업 펀더멘털에 전혀 변화가 없기 때문에 굳이 액면분할을 할 필요가 있냐는 반론도 제기한다. 주당 가격이 높기 때문에 투기가 제한되고 소위 '황제주'라 불리며 시장에서 일종의 프리미엄이 부여되는 경우도 많았다.
대개 액면분할에 나서야 하는 기업들의 경우 대기업이 많고 상속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액면분할에 나서기 쉽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달초 대표적인 고액주인 삼성전자는 액면분할이 전혀 계획돼 있지 않다고 못박았다.
◇ 2÷1=3?..액면분할의 마법
그러나 과거와 달리 황제주에 대한 인식은 엇갈린다. 주당 가격이 워낙 비싸다보니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주식이라는 이미지가 역으로 주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황제주의 경우 유동성이 상대적으로 낮을 뿐 아니라 그동안 개인 투자자들은 물론 기관 투자가들로부터도 외면을 받아왔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아모레퍼시픽은 정작 하루 거래량이 상장주식수의 0.2% 안팎에 불과했다. 반면 액면분할을 통해 발행주식수와 주당 가격이 낮아지게 되면 투자자들의 접근이 용이해지면서 거래가 활발해지고 자연스럽게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가 크다.
개인 투자자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유동성이 늘면 자연스럽게 기관들의 관심도 커지게 되고 이들의 매수로 주가가 더 오르게 되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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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이후 시총 100억 이상 액면분할 기업들의 시장대비 수정주가 초과상승률. T는 액면분할 공시일, B는 명의개서정지일, D는 액면분할 후 신주상장일(출처:한국투자증권) |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액면분할은 단순히 주가 상승뿐 아니라 시가총액이 커지면서 유상증자나 자금조달이 용이해지고, 기업투자 확대와 실적 호조로 이어지면서 주가가 오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밖에 기업 이미지 제고와 함께 경영권 방어와 자사주 매입을 훨씬 수월하게 해주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를 반영해 최근 신규상장 기업들은 대기업임에도 불구, 액면가를 낮게 설정해 증시에 진입했고 실제 거래가 활발하고 개인 투자자들의 거래 비중도 평균을 크게 웃돌고 있다.
지난해 기업공개(IPO) 대어로 꼽혔던 삼성SDS와 제일모직의 액면가는 각각 500원과 100원이었다. 이들 주가는 상장 직후 큰 폭으로 상승했고, 여기에는 삼성 계열사 요인과 함께 낮은 액면가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제일모직은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상장 후 석달여만에 코스피200 지수에 특례 편입되기도 했다.
◇ 정부도 주목했다
최근 신규상장 기업들이 액면가를 낮게 가져가고 있지만 기존 상장기업들의 경우 해외에 비해 상장주식 수나 거래량이 적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를 의식한 정부는 국내 기업들의 액면분할을 유도하기 위한 묘책 마련에 나섰다.
액면분할 유도가 거래 증가로 이어지면 정부로서도 증시 부양은 물론 거래대금 증가에 따른 세원 확보를 노릴 수 있다. 거래소 분석에 따르면 국내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가 액면가 5000원에서 500원으로 분할에 나설 경우 거래대금이 늘어나면서 하루 약 1억원의 증권거래세 증대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액면분할 활성화 정책 일환 중 하나가 바로 한국판 다우지수 개발이다. 지난해 11월 금융당국은 주식시장 발전방안으로 한국판 다우지수 도입을 제시했다. 다우지수가 경제 및 산업구조를 대표하는 30개 블루칩으로 구성되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이와 유사한 KTOP30 지수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액면분할을 유도할 수 있다. 미국 다우지수 구성종목은 주가가 100달러에 근접하면 주식분할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우지수는 기업규모뿐 아니라 거래가 활발한 기업들을 골라내기 때문에 기업들의 액면분할로 이어질 수 있다.
거래소는 또 주가가 높으면서 유동성이 낮은 종목을 저액면주로 지정해 액면분할을 촉진하기로 했다. 저 유동성 순위를 실시간 공표하고 중장기적으로 유동성 관련 관리종목 지정기준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저액면주를 선정하되 시장 조성자를 따로 선정해 이들의 대한 호가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증권사들에 대해 증권거래세 면제 등의 다양한 혜택도 부여할 예정이다.
제도 지원과 맞물려 실제 액면분할을 고려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연초 최경수 한국거래소 사장은 상장사 3~5곳이 액면분할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발언한 바 있다.
박소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액면분할 이슈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며 "정부 입장에서도 증시 활성화와 세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기회"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