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 등을 만들고 판매하는 현대엘리베이터가 최근 두 건의 자사주 관련 공시를 올렸어요.
▷관련공시: 현대엘리베이터 10월 30일 주요사항보고서(자기주식취득신탁계약해지결정)
▷관련공시: 현대엘리베이터 10월 30일 [연장결정]주요사항보고서(자기주식취득신탁계약체결결정)
자사주 취득 방법은 회사가 직접 취득하는 방법과 증권사와 계약을 맺고 간접적으로 취득하는 방법이 있는데 현대엘리베이터의 이번 공시는 간접취득에 해당해요. 두건의 공시 중 하나는 신탁계약 해지결정, 다른 하나는 신탁계약기간을 연장했다는 내용인데요.
일부는 해지하고 일부는 연장하면서 전체적인 자사주 취득규모를 줄인 셈이죠. 두 건의 공시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살펴볼게요.
5월부터 시작된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
현대엘리베이터는 올해 들어 꾸준히 신탁계약 방식을 통해 자사주를 적극 취득해왔는데요.
지난 5월 현대엘리베이터는 직접 취득했던 자사주(172만2806주)를 모두 소각하고, 1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을 한국투자증권과 체결했어요.
이후 7월과 9월에 추가로 두 건의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을 체결했어요. 7월에는 한국투자증권과 300억원 규모, 9월에는 미래에셋증권과 500억원 규모로 신탁계약을 맺은 것이죠. 회사는 연이은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을 두고 '주주환원 및 주가안정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를 꼽았는데요.
주주가치 제고 목적과 함께 현대엘리베이터만의 특수한 지분구조 상황도 따져봐야 하는데요. 올해 3월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은 회사의 2대주주인 쉰들러홀딩스(이하 쉰들러)가 지난 2014년 제기한 주주대표소송과 관련, 올해 3월 대법원으로부터 1700억원의 배상금을 회사에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죠. 이로 인해 현 회장은 보유중인 현대엘리베이터와 계열사 현대무벡스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야 했어요.
주식담보대출 때는 담보유지비율을 지켜야 반대매매(금융사가 담보유지비율이 떨어지면 담보로 잡은 주식을 일괄 처분하는 행위) 위험을 피할 수 있는데요.
따라서 현대엘리베이터가 안정적인 지배지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가가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받쳐줘야만 하는 상황도 있는 것이죠. ▷관련기사: [공시줍줍]현대엘리베이터의 이유있는 주주가치제고 정책(feat.현정은)
자사주 취득계약 절반 연장, 절반 해지
주가 안정의 필요성 때문에 꾸준히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을 해온 현대엘리베이터. 그런데 지난 10월 30일 올린 공시는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 일부를 해지한다는 내용이에요.
공시를 보면 1000억원의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 중 500억원은 내년 5월 7일까지 연장하기로 했어요. 기존 계약기간은 11월 7일까지였는데 다시 6개월 연장한 거죠.
나머지 500억원은 계약기간 만료에 따라 해지를 결정했어요. 결과적으로 현대엘리베이터의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 규모는 기존 1800억원(1000억원+500억원+300억원)에서 1300억원으로 줄어든 것이죠.
또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 10일 자사주 116만주를 우리사주조합에 처분한다는 공시를 올렸어요. 우리사주 활성화를 통해 노사협력 증진을 도모한다는 목적인데요.
우리사주조합에 넘긴 자사주 물량은 당장 시장에 매물로 나오지 않을 수 있지만 언젠가는 매도가능물량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역시 회사가 자사주 보유 규모를 줄인 조치라고 볼 수 있어요.
그렇다면 회사는 기존보다 적은 규모로 신탁계약을 운영해도 된다는 판단을 한 건데요. 왜 이런 판단을 한 건지 그 근거를 파악해보려면 앞서 현대엘리베이터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한 쪽은 '주가하락', 다른 한 쪽은 '주가부양'
올해 3월 대법원의 주주대표소송 배상판결 이후 현대엘리베이터에선 흥미로운 공시가 연달아 올라왔는데요. 앞서 살펴보았듯 5월에는 현대엘리베이터가 자사주 소각과 1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을 공시했죠. 자사주 소각과 취득은 모두 회사 측의 주가부양 의지를 담고 있는 공시이죠.
반면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주주인 쉰들러는 주식 매도 공시를 연이어 내기 시작했어요. 지난 6월 19일 1만7599주를 매도한 후 6월 20일부터 23일까지 매일 적게는 1만여주에서 많게는 3만여주까지 매도를 한 것이죠. 이후 7월, 8월, 9월, 10월에도 계속 매도 행진을 이어갔어요.
그 결과 올해 초 쉰들러의 현대엘리베이터 보유주식은 632만4570주(지분율 15.50%)였지만 10월말 기준 473만5047주(지분율 12.11%)로 줄었어요.
여전히 쉰들러는 최대주주인 현대홀딩스컴퍼니 및 특별관계자(지분율 27.77%)에 이은 2대주주이긴 하지만, 회사 측이 주가 부양의지를 가지고 자사주를 소각·취득하는 상황에서 2대주주는 보유지분 일부를 매도하는 엇갈린 모습을 보인 것이죠.
이러한 쉰들러홀딩스의 매도행진과 관련, 일각에서는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를 떨어트리려고 했다는 분석도 내놔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17일 열린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쉰들러의 지분 매각에 대해 한 사모펀드(PEF)와의 통정매매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어요. 쉰들러가 매도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한 사모펀드가 사간 정황이 발견됐기 때문인데요.
즉 쉰들러가 한 사모펀드와 뒤에서 계약을 맺고 의도적으로 '쪼개기 매도'를 해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를 흔들려 했다는 것이죠. 다만 지난달 27일 열린 정무위 종합감사에 출석한 쉰들러 측은 통정매매 의혹에 대해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공시 규정을 철저히 지켰다고 답했어요.
쉰들러가 주식 일부를 매도한 와중에도 현대엘리베이터는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을 체결하며 지속적인 자사주 매입을 통해 현대엘리베이터 주가 하방압력을 막아온 셈이에요.
쉰들러와의 주가 싸움, 승자는 현 회장?
공교롭게도 10월 이후 쉰들러가 추가로 주식을 매도했다는 공시는 올라오지 않고 있어요.
이 기간 현대엘리베이터의 주가 흐름도 의미가 있는데요. 올해 3월 말까지만해도 2만원대이던 주가는 5월 4일 자사주 소각과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 체결 공시 이후 계속 올라 최근까지도 계속 4만원대 주가를 유지 중이에요.
중간에 쉰들러가 주식을 매도한 시기에 주가가 3만원대로 내려오기도 했지만 13일 기준 주가는 4만8200원으로 올해 초반보다 상당히 올라와 있는 상황이에요. 주가부양을 위한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이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한 셈이죠.
다만 아직 안심할 순 없어요. 2대주주인 쉰들러의 지분이 여전히 공고하고 최대주주인 현대홀딩스컴퍼니를 포함해 현정은 회장 등 특수관계자들의 지분 상당량이 주식담보대출로 잡혀있기 때문인데요.
현대홀딩스컴퍼니(현정은 회장 등 총수일가 지분율 100%) 및 현정은 회장 등 특수관계자들은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977만5139주로 담보대출을 받았어요. 이들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율은 27.77%인데 지분 중 25.51%가 담보로 잡혀있는 상황.
현대홀딩스컴퍼니는 보유한 지분 일부(190만4761주)를 활용해 사모펀드 H&Q가 세운 특수목적법인 메트로폴리탄홀딩스와 교환사채권 발행계약을 맺기도 했어요. 나중에 빌린 돈을 현금으로 갚는 대신 현대홀딩스컴퍼니가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으로 대신 갚을 수 있는 것이죠.
현대홀딩스컴퍼니와 현정은 회장 등 특수관계자들의 담보유지비율은 최소 140~160%예요.
아직까진 주가가 담보비율을 뒷받침 해주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어요. 하지만 주가가 3만원대로 떨어지면 담보유지비율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어요.
현대엘리베이터가 이번에 계약기간을 연장한 500억원의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 외에도 500억원 및 300억원의 신탁계약은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있는데요. 500억원은 내년 3월 21일까지, 300억원은 내년 1월 5일까지예요.
그 사이 현대엘리베이터가 남은 신탁계약도 해지한다면 향후 주가방향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신호탄이 될 수 있겠죠. 다만 혹시라도 주가가 불안정한 흐름을 보인다면 회사는 얼마든지 신탁계약 연장을 통해 자사주를 시장에서 사들일 가능성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