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달 3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화' 공약을 발표했다. 코로나19 이후 지속되고 있는 의약품 품귀 현상에 대응하려는 목적이다. 제약업계는 후보들이 제안한 시장 감시체제 강화 외에도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약가 제도 개선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소한 물가상승률 정도는 인상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최근 공개한 정당 정책공약집에서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화 공약을 공통적으로 제시했다. 필수의약품은 중증 질환 치료 등 보건의료상 중요성이 높지만 시장 기능만으로는 안정적인 공급이 어려워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약물이다.
두 후보가 해당 공약을 나란히 내건 이유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 이후 원료의약품 수급 차질이 장기화화면서 필수의약품 공급난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이달 29일 기준 올해 공급 중단이 보고된 의약품은 총 92개에 이른다. 여기에는 필수의약품으로 등록된 △희귀질환 치료제 '팜프리딘' △항생제 '아목시실린' △항암제 '파클리탁셀' 등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에 이재명 후보는 '희귀필수의약품센터', 김문수 후보는 '의약품 수급관리 위원회' 설치를 각각 대안으로 제시했다. 시장 모니터링 시스템(감시 체제) 구축, 공적 비축 등을 통해 품귀 현상에 선제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업계는 약가제도 개선이 선행되지 않는 이상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필수의약품 공급 중단의 주된 원인은 원료 수급 불안정보다 약가인하로 인한 채산성 악화에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현행 약가제도에서 필수의약품의 가격은 고정되거나, 실거래가 재평가 등을 통해 정기적으로 인하된다. 원료비나 인건비가 상승하더라도 약가인상을 받으려면 공급 부족 우려 등의 엄격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사실상 원가 상승분을 곧바로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다.
서울시의사회는 의약품 공급난이 심화된 지난해 10월 발표한 성명문에서 "의약품 품절사태의 근본 원인은 약값을 최소한 물가 상승률 정도는 인상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오히려 약값 인하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약가는 계속 인하하면서 수급은 알아서 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이 문제를 지적했다
실제 보령이 제조하는 필수기초항암제 '이피에스주'와 '에피루비신염산염주'는 지난해 10월 약가인상이 이뤄지기 전까지 매출원가율이 100%를 넘었다.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약가인상 전까지 이들 의약품의 생산이 전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기대 유지돼 왔던 것이다.
필수의약품 공급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수급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원료 자급화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약가가 지속적으로 인하되는 가운데 중국, 인도산과 비교해 비싼 국산 원료를 사용하는 것은 제약사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 결과 자급률은 떨어지고 의존도는 계속 높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예측가능한 약가 제도' 한목소리
약가 제도 개선은 혁신신약 개발을 지원하겠다는 두 후보의 공통된 공약을 실현하는 데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제약사의 매출은 R&D(연구개발) 투자 재원으로 활용되는데 약가가 낮아지면 이를 위한 자금확보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업계가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현재 다수의 약가인하 제도가 중복적으로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제약사 입장에서 약가가 언제, 어떤 기준으로 내릴지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결국 매출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R&D 투자 계획 등을 세우기 힘든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올해 '해외약가 비교 재평가'라는 새로운 약가 인하 정책까지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특정 의약품의 국내 가격이 해외 주요국가의 약가보다 높으면 인하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고령화와 의료비 증가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이유로 이같은 약가 인하 제도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노인 의료비 증가 등에 건강보험 재정은 2026년 적자로 전환되고 2030년 누적 준비금이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업계는 R&D 투자를 위축시킬 정도의 약가인하는 오히려 수입 의약품 의존도를 높이고, 의료비 절감 효과가 큰 신약개발을 지연시켜 장기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에 더 큰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인상이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예측 가능한 약가 정책만은 최소한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약가는 제약사의 R&D 재원이다. 지금처럼 예측 불가능하고 중복적인 약가 인하가 수시로 발생하면 기업의 R&D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며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통합적인 약가 제도 수립과 집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