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분양시장이 초여름 뙤약볕처럼 뜨겁다. 건설사들은 인기 있는 택지지구나 재개발·재건축 아파트 뿐 아니라 땅을 확보해두고도 시장 형편 때문에 묵혀뒀던 물량까지 시장에 쏟아내고 있다. 수요자들은 옥석가리기에 여념이 없다. 돈 될만한 아파트는 경쟁률이 '수백대 1'에 달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미분양 물량도 나오고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요즘 분양시장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분양시장 '특수'는 아파트를 지어 파는 건설사들만 누리는 전유물이 아니다.
택지를 만들어 파는 시행사, 모델하우스에서 방문객을 맞는 분양대행사와 전문 상담사 및 도우미, 분양권 매매를 알선하는 이른바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 등 다양한 전후방 산업이 함께 수혜를 보고 있다. 분양시장 흥행의 '낙수효과(落水效果, trickle down effect)'로 관련 업계 종사자들도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이다.
▲ 위례 우남역 푸르지오 모델하우스를 찾은 관람객들이 단지 모형을 둘러싸고 분양 도우미의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 대우건설) |
◇ 디벨로퍼 부활..LH도 실적 '쭉쭉'
건설사들의 분양사업 러시를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아파트를 지을 부지를 조성하는 시행사들이다. 택지를 마련해 두고도 장기간 이를 처분하지 못해 끙끙 앓던 설움을 요즘 들어 단박에 털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시행사 디에스디삼호(DSD삼호)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청담씨앤디와 함께 지난 달 초 만기를 맞은 1800여억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연장에 성공했다. 이를 사업 연결자금(브리지론)으로 삼아 2007년께부터 준비했던 3000여가구의 경기도 광주 태전5·6지구사업을 8년만에 벌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업성이 확보되지 않아 이자 내기도 벅찼던 부지였지만 수도권 '분양 완판' 행렬이 이어지면서 분양이 가능해졌다. 2007년 경기도 일산 식사지구(일산자이), 2013년 김포 풍무지구(김포풍무 푸르지오·센트레빌) 등지에서 대규모 주택사업을 벌였던 이 시행사는 태전지구를 발판 삼아 용인, 광주, 김포, 고양 등에서 1만가구 가량의 물량을 내놓을 계획이다.
▲ 인천 영종지구 전경(사진: LH) |
공공택지를 개발해 건설사에 공급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분양 열기에 반색하고 있다. 건설사들이 너도나도 아파트 지을 땅을 찾아 나서면서 수도권 비인기지구 땅들이 속속 팔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인천 영종하늘도시(영종지구)다. 부동산 경기 침체에 기존에 땅을 산 건설사들조차 '환불'을 요청할 정도였지만 요즘엔 확 달라졌다. 지난달에는 2007년 이후 8년만에 공동주택용지(A43블록, 60~85㎡ 658가구)가 수의계약방식으로 팔린 뒤 연내 10개의 공동주택 용지를 매각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지난 3월 경기 의정부 민락2지구 공동주택용지 B-11블록은 173대 1의 추첨경쟁 끝에 낙찰됐고, 같은 달 경쟁 입찰을 실시한 경기 고양 삼송지구 주상복합용지는 예정가 741억원보다 164억원 높은 905억원에 팔렸다.
이런 토지매각 호조에 힘입어 LH는 올들어 7조5176억원의 토지 및 주택 대금 회수실적을 보이고 있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12.2% 늘어난 금액이다.
◇ 분양상담사·도우미도 '몸값' 급등
분양 현장이 많아지다보니 분양대행사들도 물을 만났다. 주택시장 경기가 나빠진 2000년대 후반부터 5~6년 동안 미분양 단지를 전전하던 분양대행사들은 매주 10~20개씩 모델하우스가 문을 여는 요즘을 '최고의 시즌'이라고 부른다.
A분양대행사의 경우 올해 서울 동대문구와 경기 화성·김포, 인천 청라 등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 물량까지 아파트 분양 실무를 맡았다. 작년까지 주로 미분양을 다루던 B대행사도 올해는 위례신도시 등 수도권 신규 분양현장 2~3곳의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한 분양대행사 대표는 "올해 사업물량이 몰릴 것을 예상해 연초에 직원을 2배 규모로 늘렸지만 여전히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문만 열면 '완판'하는 게 요즘 분양시장이다보니 건설사들과의 계약조건이 썩 좋지만은 않다"고 귀띔했다.
▲ 일산 '킨텍스 꿈에그린' 모델하우스에서 분양상담사들이 내방객들에게 상품을 안내하고 있다.(사진: 한화건설) |
모델하우스에 직접 투입되는 분양상담사도 대목을 누리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프로젝트 단위로 분양대행사와 계약하는 프리랜서로 일한다.
한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분양상담사의 하루 보수가 14만원정도 였지만 요즘에는 16만~17만원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분양상담사들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2~3개월 계약해 300만~400만원의 월급을 받는 계약 방식을 선호했지만 최근에는 청약·계약 실적에 따라 성공보수를 받는 인센티브 방식을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
모델하우스 유니트 안에서 주택상품을 설명 하는 '도우미'를 두고는 '스카우트 전쟁'이 일어날 정도다. 외모나 말솜씨가 좋은 'A급' 인력들은 모델하우스 개관 직후 사나흘만 일하고 다른 현장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흔하다. 개관 직후 주말 사흘이 방문객이 가장 많은 중요한 시기여서 일당을 더 챙길 수 있어서다.
◇ '떴다방' 꿈틀..시중은행도 활기
모델하우스 밖에서는 이동식 중개업소, 이른바 '떴다방' 업자들이 제철을 만났다. 이들 중개업자들은 매매시장 침체 시기 업소를 둔 본거지를 떠나 유망 청약지 분양권 매매거래에 나선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작년 위례신도시를 거쳐 동탄2신도시, 광명역세권지구, 세종시 등 웃돈이 붙을 만한 곳을 쓸고 다니고 있다.
1순위 경쟁이 치열한 곳일수록 분양가에 웃돈이 많이 붙는 것은 물론 떴다방 업자들도 더 많아진다. 하지만 이 떴다방들은 과열된 분위기를 이용해 프리미엄을 부풀리거나 불법 전매를 부추기는 경우도 잦기 때문에 수요자들이 유의해야 한다.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떴다방 업자 가운데는 양도세를 적게 부담하도록 해주겠다며 '다운계약서를 쓰자'는 경우가 있다"며 "불법전매가 적발될 경우 매도자, 매수자, 공인중개사까지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내야 하는 걸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 경기도 화성 동탄 린스트라우스 더 센트럴 견본주택 외부에서 이른바 '떴다방' 업자들이 관람객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다.(사진: 우미건설) |
모델하우스 주변에 위치한 시중은행 지점들에도 분양시장 열기는 전해진다. 시행사는 분양 전 중도금 집단대출을 맡길 은행을 선정하는데 이를 따내기 위한 경쟁 역시 치열하다.
서울 송파구의 하나은행 한 지점 관계자는 "중도금 집단대출은 분양대금의 60% 정도 규모로, 1000가구짜리 분양 단지라면 3000억~4000억원 가량의 여신이 안정적으로 발생한다"며 "또 계약금과 공사대금 수탁업무까지 한번에 맡아 여수신을 동시에 확대하는 효과가 있다"고 유치 경쟁의 배경을 설명했다.
집단대출은 유치 경쟁이 워낙 뜨겁다 보니 금리 인하 경쟁이 붙어 마진이 크지는 않다. 하지만 신규고객 유치 효과도 적지 않아 대단지나 흥행이 뛰어난 단지는 은행들이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분양 열풍에 청약통장을 만들러 은행을 찾는 발길이 늘어난 것도 부대효과다. 서울 영등포구 우리은행 한 지점 관계자는 "청약 열풍이 불면서 어린 자녀에게 청약통장을 만들어 주려는 내방객이 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