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문제야 세이 썸띵~'
이 노랫말(지코의 '아무노래'中)이 절로 나오는 업계가 있습니다. 바로 '세대 간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 발표를 기다리는 리모델링 업계의 얘기인데요.
세대 간 내력벽 철거는 안전성 문제 등을 이유로 금지하고 있는데요. 업계에선 내력벽 철거가 사업성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인 만큼 지속적으로 '허용'을 요구해 왔습니다. 그래서 정부도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는데요. 벌써 2년째 입을 꾹 닫고 있어 업계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최근 1기 신도시 등에서 아파트 리모델링 훈풍이 불기 시작해 '규제 완화'가 간절해지고 있거든요. 내력벽 철거, 대체 뭐가 문제인걸까요.
(feat.벽이라고 다 같은벽이 아냐)
건축물에 들어가는 벽은 크게 내력벽과 비내력벽으로 나뉩니다. 내력벽은 아파트 하중을 지탱하는 벽으로 벽 자체가 기둥 역할을 하고요. 비내력벽은 공간을 나누는 등의 용도로 쓰입니다.
공공주택 리모델링 시 내력벽이나 비내력벽 모두 철거가 가능한데요. '세대 간' 내력벽은 철거가 안 됩니다. 세대 간 내력벽은 세대 내 내력벽보다 더 두껍고 하중도 더 많이 지탱하기 때문에 철거하는 과정에서 건물 붕괴 등의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거든요.
이 규제가 리모델링 아파트의 상품성을 높이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리모델링을 통해 아파트를 증축할 때 세대 간 내력벽을 철거하지 못하면 좌우 확장이 불가능하거든요. 이렇게 되면 '베이'(Bay)를 늘리기 어렵습니다.
베이(Bay)는 전면 발코니를 기준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간을 말하는데요. 전면 발코니에 접해 있는 방(거실 포함)의 갯수가 몇 개인지로 구분하면 쉽습니다. 아파트 전면 발코니에 거실과 방 1개가 접해있다면 2베이, 거실과 방 2개가 접해있다면 3베이입니다.
옛날 아파트들은 이른바 '동굴형'이라고 말하는 2베이 구조가 많은데요. 요즘 신축 아파들은 주로 3베이, 4베이 평면을 내놓습니다. 베이가 많을수록 채광이 잘 되고 전면 발코니 확장을 통해 실사용 면적을 늘릴 수 있어 입주민들의 선호도가 높거든요.
리모델링의 경우 2베이 3세대를 3베이 2세대로 변경하는 식으로 공사를 할 수 있는데요. 세대 사이에 내력벽이 있으니 철거하지 않는 이상 신축 아파트와 같은 수준으로 베이를 늘리는 등 상품성을 높이긴 힘든 상태입니다.
(feat.벌써 2년째 밀리는 발표)
이런 문제로 리모델링 업계는 정부에 세대 간 내력벽 철거 허용을 요구해왔습니다. 안전에 문제가 없는 범위 내에서요.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2016년 1월엔 아파트를 리모델링할 때 안전진단 평가등급(B등급 이상)을 유지하는 범위에서 세대 간 내력벽 '일부 철거'를 허용하는 내용의 주택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기도 했는데요.
이후 안전성 시비가 불거지면서 2016년 8월 재검토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내력벽 철거로 말뚝 기초에 무게가 가중돼 안전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일부 주장이 제기됐거든요.
정부는 2018년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리모델링을 위한 세대 간 내력벽 철거 안전성 연구 용역'을 맡기고 2019년 3월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결과가 나오면 국토부가 관련업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고요.
그리고 지난해 8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국토부에 해당 연구 보고서를 제출했는데요. 보고서는 '일부 철거가 가능하다'는 요지로 작성됐다고 전해집니다. 리모델링 업계가 국토부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이유죠.
(feat.올해 발표계획? 미정!)
그런데 국토부가 당최 발표를 안 합니다. 벌써 2년째 말이죠.
올해도 발표 계획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국토부 관계자는 "아직 검토중이기도 하고 코로나19 때문에 자문회의 개최도 어렵다"며 "올해 발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리모델링 업계는 애가 탑니다. 최근 1기 신도시 등 곳곳에서 리모델링 훈풍이 불고 있는데 규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죠.
지난달 경기 성남시가 분당구 정자동 한솔마을5단지에 대한 리모델링 사업 계획을 승인했는데요. 분당·평촌·산본·일산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아파트 중 첫 사례인 만큼 리모델링 업계가 전반적으로 들뜬 분위기입니다. 관련기사☞[리모델링 뜬다]분당 등 1기 신도시, 리모델링 '훈풍'
그러나 내력벽 철거와 함께 리모델링 사업의 수익성을 높이는 핵심 기술로 꼽히는 '수직 증축'도 여전히 막혀 있어 리모델링 사업 활성화까지는 갈 길이 멀어보입니다.
수직 증축은 지난 2013년부터 허용됐지만 안전진단, 구조안전성 검사 등이 까다로워 아직 준공 사례가 없습니다. 한솔마을5단지도 수직 증축을 추진하다가 사업이 지연되자 결국 수평증축으로 방향을 바꾸고나서야 속도가 붙은 거고요. 관련기사☞[리모델링 뜬다]재건축 대신 리모델링? 주택 공급 대안될까
국토부는 이런 시장의 분위기를 모른체하며 내력벽 철거 연구용역 결과를 미루고 있는 것인데요. 아파트 리모델링의 사업성이 높아지면 재건축처럼 집값 상승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규제를 유지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보내고 있습니다.
이동훈 한국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은 "리모델링은 재건축과 달리 재입주율이 상당히 높다"며 "오래된 아파트를 수선해서 계속 살려는 수요가 대부분으로 투자보다 주거의 기능이 훨씬 강하기 때문에 집값 상승과 연관짓는 건 지나친 우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리모델링을 활성화하려면 세대간 내력벽 철거, 수직 증축 등의 규제를 완화해 리모델링 아파트의 상품성을 높이고 사업 확장성을 키워줘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