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아놓은 재고 어떡해?'
월드컵을 계기로 소비회복의 불씨를 살리려던 유통업계가 한국 축구 대표팀의 부진으로 낙심하고 있다.
처음부터 월드컵 효과에 큰 기대를 걸지 않은 곳은 충격이 덜하지만, 월드컵을 소비침체의 반전 기회로 삼으려던 곳은 잔뜩 준비한 상품이 팔리지 않을까 전전긍긍이다. 땡처리와 다름없는 행사를 통해 급한 불 끄기에 나선 곳도 등장했다.
◇ 월드컵특수 실종
롯데마트는 이번주 목요일(26일)부터 1주일간 '땡스 위크(Thanks week)’ 행사를 열고 주요 생필품 1000여개를 최대 반값에 판매한다고 24일 밝혔다.
‘땡스 위크’는 원래 연말 재고정리 등의 목적으로 진행했으나 올해는 한여름을 앞둔 6월에 실시하기로 했다. 롯데마트는 이 행사 뒤 곧바로 '통큰 세일'에 들어갈 예정이다. 종전보다 행사규모를 2~3배 키우고, 행사기간도 기존 1주일에서 올해는 2주로 늘리기로 했다.
롯데마트가 연말에나 실시하던 행사를 반년 앞당기고, 연이어 '통큰 세일'이라는 대형행사를 준비한 것은 월드컵을 계기로 침체된 소비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목적이 컸다. 특히 올해는 동계올림픽(2월)과 월드컵(6월), 인천아시안게임(9월) 등 대형 스포츠 행사가 잇따라 열려 매출증대 효과가 클 것으로 봤다.
하지만 지난 4월 세월호 참사로 이러한 계획이 어긋난데 이어 월드컵에서도 한국 대표팀의 16강 진출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그간의 기대는 걱정으로 바뀌고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지난 23일 알제리전 패배로 월드컵 특수가 조기에 끝날 수 있어 걱정스럽다"고 했다. 롯데마트의 지난 1~5월 매출은 전년대비 2.8% 줄었다. 이달에는 약간의 회복세를 나타냈으나 한국 대표팀의 부진 이후 더는 매출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다.
▲ 롯데마트는 오는 26일부터 1주일간 전국 점포에서 생필품 1000여개를 최대 절반값에 선보이는 '땡스 위크' 행사를 진행한다. |
다른 대형마트도 맥이 풀린 모습이다.
한국과 러시아전이 무승부로 끝났을 때만 해도 250여개 품목을 최대 50% 할인했던 이마트는 알제리전 패배로 더는 이런 행사를 열기 어렵게 됐다. 벨기에와 경기가 남아있지만 한국팀이 승리하더라도 16강 진출이 좌절될 수 있어 종전과 똑같은 이벤트를 진행하는 게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한다.
이마트 관계자는 "알제리전에서 비기기만 했어도 50% 할인행사를 열었겠지만 결과가 안좋았다"며 "지금으로선 다음 행사를 열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홈플러스도 한국 대표팀의 첫 골을 기념해 최대 30% 할인행사를 했지만 그외 눈에 띄는 마케팅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부터 이틀간 5만원 이상 구매한 고객에게 붉은악마 응원셔츠를 증정하는 게 전부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세월호 영향이 있는데다 월드컵도 새벽에 열려 처음부터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고 말했다.
◇ 급기야 '창고대방출'
편의점도 응원전이 열린 곳 인근 점포의 매출이 반짝 상승했을 뿐 기대치를 충족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CU 관계자는 "응원특수로 몇몇 점포 매출이 뛰었지만 전반적으로 기대했던 만큼의 매출은 안나왔다"고 말했다. 홈쇼핑도 한국 대표팀 경기를 전후해 새벽 방송이 호조를 보였지만 그 외 방송에선 예년과 다름없는 수준의 매출에 그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월드컵 특수가 사라진 자리는 '땡처리'와 '창고대방출'이 남았다.
롯데슈퍼는 내일(25일)부터 오는 30일까지 '상반기 총결산 창고대방출' 행사를 진행한다. 월드컵 때까지 팔리지 않고 남아있던 생필품 500여개를 정상가격의 최대 70%까지 할인 판매한다. 지난해는 연말에 진행한 행사였으나 올해는 재고소진이 눈 앞의 과제가 되면서 6개월을 앞당겨 실시했다.
롯데슈퍼 관계자는 "한국 대표팀 경기 하루 전 매출이 많이 오르는데, 이번 알제리 전은 공교롭게도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의 휴무일과 겹쳤다"며 "이래저래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이 관계자는 "재고를 계속 안고 갈 수 없어 고심 끝에 떨이판매를 하기로 한 것"이라며 "재고지만 제품 자체는 하자가 없는 만큼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하면 소비자들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