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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 대기업 엘리트에서 직구 사장으로

  • 2015.06.09(화) 17:57

직구시장 도전장 낸 임창현 프리미어 오브제 대표

 

"어디시라고요?"
"비즈니스워치입니다.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싶은데요."
"네, 그러시든가요."

스마트폰 너머 그의 심드렁한 대답이 들려왔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지만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면 대개의 취재원은 목소리가 살짝 들뜨거나 경계하는 톤으로 바뀐다. 임창현(47·사진) 대표의 사무적인 말투는 이런 공식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다. 며칠 뒤 수첩을 챙겨 그의 사무실이 자리잡은 서울 홍익대 근처로 향했다. 질문 몇가지를 준비했지만 첫 통화에서처럼 상대의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기사 아이템을 접겠다고 생각했다. '쿵'하면 '짝'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 촉망받던 대기업 인재

아직 검증이 필요한 회사를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건 여러 부담이 따른다. 임 대표의 프리미어 오브제가 딱 그랬다. 프리미어 오브제는 해외 유명 가전제품을 국내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직구(직접구매) 사이트다. 문을 연지 두 달이 안됐다. 튼튼한 회사라고 소개했다가 문을 닫으면 의도하지 않은 피해자가 생길 수 있고, 그렇다고 과거의 회고담을 쓰기에는 업력이 너무 짧았다. "만나보면 도움될 것"이라는 주위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연락을 안했을지 모른다.

"20년 가까이 대기업에 있었습니다."

점심식사를 하며 시작한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임 대표의 이력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는 1993년 LG전자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뗐다. 브랜드 마케팅·해외영업·스마트폰 사업팀장·모바일 전략팀장 등 회사 내에서도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2009년 2월 LG전자와 마이크로소프트(MS)가 스마트폰 개발을 위해 손잡기로 했을 때 물밑 실무협상을 담당했다. 임 대표는 "당시 일주일에 미국을 두 번이나 왔다갔다할 정도로 바빴다"고 했다. 그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 화려했던 순간, 아픈 기억

시간을 돌려보자. 2009년은 LG전자에 명암이 교차하던 때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매출이 50조원을 넘었고 영업이익도 3조원에 육박했다. 휴대폰 판매량 역시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그해 초 삼성과 주로 손을 잡던 MS가 LG전자를 파트너로 택한 것 자체가 글로벌 IT업계에는 굉장한 뉴스였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던 시절은 잠깐이었다. 믿었던 MS가 새로운 운영체제 개발에 고전하면서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전략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듬해 LG전자는 다른 글로벌 휴대폰 제조사들처럼 애플의 공세에 속수무책 무너졌다. 실적은 급격히 나빠졌고 전문경영인은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임 대표도 당시의 험난했던 일이 마음 한켠에 묵직이 남았다. "그 얘기는 그만하자"고 만류하는 그에게 몇차례 더 질문을 던졌다. 글로벌시장을 상대로 사업전략을 짜던 그의 식견을 묻어두기가 아까웠다.

그는 "애플과 구글이 TV와 같은 가전시장까지 잠식하는 점을 눈여겨봐야한다"고 조언했다. 플랫폼이 중요해진 시대에 하드웨어에 집착하다가는 시장변화를 놓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현재 LG뿐 아니라 삼성도 IT생태계 구축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임 대표는 "단기 실적에 연연할수록 회사에는 달이 아닌 손가락 끝을 보려는 경향이 강해진다"며 "이를 경계하고 최소 5년을 내다보고 전사적으로 매달려야 앞으로 닥쳐올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새로운 쇼핑몰을 꿈꾸다

인생의 2막을 시작한 임 대표의 가장 큰 자산은 20여년의 대기업 생활로 얻은 해외 네트워크와 사업수행 경험이다. 때마침 국내에 직구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직구시장 규모는 1조7000억원으로 한해만에 50% 가량 커졌다. 하지만 급격한 시장확대와 함께 소비자들의 불만도 늘었다. 배송지연과 오류, 제품하자는 물론이고 일부 직구 업체는 대금만 받고 잠적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국내 직구시장의 취약점을 공략하기로 했다. 사업성, 법률적 리스크 등을 꼼꼼히 따졌다.

 

그는 "직구업체 중에는 싸게 판다는 명목으로 수입가격을 실제보다 낮게 신고해 관세와 부가세 등의 탈세를 유도하는 곳도 있다"며 "법을 지키면서도 성공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해외 유명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려고 비싼 가격에, 불편까지 감수해야하는 현실을 바꾸고 싶었다"고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제품가격과 관세, 부가세, 설치비 등을 각각 따로 확인할 수 있게 사이트를 개발했다. 제품가격이 얼마인지, 소비자가 내야할 세금은 얼마인지 등을 가르쳐주지 않고 판매가격만 내건 여느 직구 사이트와 차별화했다. 프리미어 오브제의 제품가격은 최저가를 표방한 인터넷 쇼핑몰에 비해 10~15% 저렴하게 책정했다고 한다. 미국과 유럽의 현지 파트너에게 제품을 직접 매입해 가격을 낮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 "한국사업은 전초전" 

무엇보다 신경 쓴 것은 배송이다. 프리미어 오브제는 주문 후 5일(영업일 기준)이면 집에서 주문상품을 받아볼 수 있는 '번개배송'을 운영 중이다. 월요일에 TV를 주문하면 바다 건너에서 출발한 제품이 비행기를 타고 수요일 오전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원활한 제품수급을 위해 미국과 독일에는 현지법인을 세웠다. 이렇게 도착한 제품은 전담 직원이 집까지 직접 배송해 설치해준다. 현재 직원 18명 가운데 5명이 배송과 설치업무를 맡고 있다. 임 대표는 "이 인력을 연말까지 30~40명으로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사업은 전초전에 불과하다"고 했다. 임 대표는 동남아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해외현지법인을 두고 미국과 유럽의 파트너사와 협력관계를 가져가는 것도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사전포석 성격이 짙다. 그는 "어려움을 각오하고 있다"고 했다. 대기업이라는 우산을 버리고 홀로서기에 나선 그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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