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성장 둔화는 예견된 현상이다. 개혁개방 이후 주력해온 제조와 수출 중심의 성장전략은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끌어 냈지만 환경오염과 과잉설비 등 적잖은 성장의 그늘을 만들어냈다. 시진핑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국 경제정책의 목표는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안정적 성장으로 바뀌었다. 중국은 성장률 둔화를 '뉴노멀(New Normal)' 혹은 '신창타이(新常態)'로 포장했다.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정상상태라는 의미다.
문제는 둔화의 속도다. 정부가 의도하는 '질서있는 후퇴'가 아니라 경착륙이란 얘기가 나올 만큼 빠르게, 덜컹거리며 하강하고 있다. 제조와 수출에서의 성장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는 소비시장 육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내수를 키우고, 서비스 산업을 육성해 경기둔화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두 자녀 정책과 신도시화 정책은 안팎으로 주목받는 내수경기 활성화 대책으로 꼽힌다. 중국이 세계의 소비시장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정책들이 국내외 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그만큼 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계속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도 중국의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신시장 개척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식음료와 화장품, 의류 등 소비재 업체들은 중국 내 중산층 확대와 '가성비'를 중시하는 신(新) 소비 트렌드에 맞춰 사업구조 재편에 뛰어들었다.
◇ 소비패턴 변한다..중고가 브랜드로 중산층 공략
중국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샤오캉(小康)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2020년 국내총생산(GDP)을 2010년의 두배로 늘리겠다는 구체적인 수치도 제시한 상태다. 계획이 현실화되면 중국의 1인당 GDP는 2020년 1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소득수준의 향상은 소비패턴의 변화를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된다. 생존을 위한 의식주 중심의 소비에서 벗어나 생활을 즐기고, 건강과 문화, 여가 활동에 돈을 지출하는 트렌드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중국인들의 소비패턴 변화는 기존 중고가 브랜드로 중국내 틈새시장을 파고들었던 국내 기업들에게 다시 한번 성장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농심과 아모레퍼시픽은 고급화된 신제품을 들고 소비자들 사이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농심은 1~3위안(元)짜리 라면이 대부분이었던 인스턴트 라면시장에서 5위안의 높은 가격에 제품을 판매해 성공을 이끌어낸 사례다. 프리미엄 브랜드 '라네즈'를 필두로 중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아모레퍼시픽은 중국에서의 매출에 힘입어 지난해 글로벌 매출 1조2573억원을 달성했다.
▲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현지에서 한류열풍을 일으킨 송혜교를 모델로 고급화 전략을 구사해 성공을 일궈냈다. (사진=아모레퍼시픽) |
◇ '가성비' 중시..소비자 심리를 읽어라
중국에서 의류 사업으로 성공신화를 써내려간 이랜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로 이미지를 굳혀왔지만 최근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중산층의 소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트렌드에 맞춘 사업전략을 펴고 있다. 이들이 주목한 트렌드는 중산층의 '가성비' 중시 패턴이다.
이랜드는 지난달 중국 상하이 창닝지구에 팍슨-뉴코아몰 1호점을 내며 중국내 유통사업에 첫 발을 내밀었다. 이랜드가 유통사업을 시작하면서 백화점 대신 아울렛을 택한 이유는 중국 중산층의 소비가 불경기로 인해 더욱 실용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랜드 관계자는 "고가의 제품을 다루는 백화점은 이제 하락세에 접어들었으며 아울렛과 쇼핑센터가 새로운 소비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아울렛 출점을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가격대비 성능을 의미하는 '가성비'를 찾는 중산층 고객이 많아지면서 중국 상하이 창닝지구에 문을 연 팍슨-뉴코아몰은 흥행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이랜드] |
◇ 두자녀 정책이 불러올 변화
'두 자녀 정책'도 중국 내수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킬 변수로 주목된다. 지난 10월 말 중국 정부는 '한 자녀 정책'을 35년만에 폐지하고 중국 내 모든 부부가 2명의 자녀를 가질 수 있도록 했다. 두자녀 정책으로 중국에서 한해 태어나는 신생아는 100만~200만명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오는 2018년 예측되는 신생아 숫자만 2000만명이다.
완구, 산모용품, 아동복 등 출산·육아 관련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오르고 있다. 중국 부모들이 양육비 지출을 확대하면서 지난 2014년 기준 200조원 규모의 영유아 시장에 매년 30조원 가량의 소비가 새롭게 창출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태어날 '중국 소황제'를 공략하기 위한 현지 투자도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제로투세븐은 지난해 홍콩에 법인을 설립해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고 보령메디앙스는 상하이를 중심으로 온·오프라인에 걸쳐 유통채널을 확대 중이다.
◇ 신도시화..기회의 땅 '서부'
중국 정부가 신도시화 건설에 속도를 내면서 주로 동쪽 연해지역 대도시에 자리를 잡았던 기업들은 서쪽 내륙 공략에 대한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기존에는 동쪽 연안에 1선 도시가 몰려 있었으나, 내륙지방에 2,3선 도시가 발전하면서 소비성장 중심 축도 서쪽으로 점차 이동하는 추세다.
내륙의 2·3선 도시에서 '중부굴기', '서부대개발' 등 중국 정부의 인프라 투자와 저가 노동력을 찾는 공장의 이전이 겹치면서 성장속도가 빨라지고, 고용도 확대되고 있다. 소비가 가능한 중산층 인구가 서부쪽에서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농심은 '해를 따라 서쪽으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내륙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내륙시장을 공략하는 것을 목표로 마케팅을 진행해 지난해 내륙도시 우한((武漢)에서 94%, 청두(成都)에서 79%의 성장을 일궈냈다"고 말했다.
홍창표 코트라 중국지역본부 부본부장은 "중국 소비재 시장은 수요자들의 구매력이 급성장하면서 모든 브랜드가 경쟁하는 가운데 모조품이나 뒷거래까지 횡행하는 독특한 구조"라며 "지역 별로 제각각인 소비 성향을 이해하고 현지 파트너나 온라인 채널에서 유통망을 확보한다면 새로 진출하는 우리 기업에게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비즈니스워치는 오는 24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63빌딩 컨벤션에서 국제경제 세미나를 개최한다. '중국 대전환, 한국경제 해법은'이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이번 세미나는 한중 양국의 석학과 경제·산업·금융 전문가들이 참석해 중국의 경제·산업 구조 변화를 진단하고, 우리의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중국의 성장 둔화와 경착륙 우려, 주가·환율 급변동, 빠르게 성장하는 제조업 경쟁력 등은 한국 경제의 리스크 요인으로 떠올랐고, 올들어 중국 변수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중국 13차5개년 계획(13.5규획)의 첫 해로 시진핑 정부가 ‘공급측 개혁’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구조개혁과 혁신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통 제조업 뿐만 아니라 첨단기술과 자본시장 등 각 분야에서 전환기를 맞은 시진핑 정부가 어떻게 경제·산업 구조를 바꿔나갈 것인지 주목된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 거시경제연구원의 황한취안(黃漢權) 산업경제연구소장이 ‘전환기 맞은 중국, 산업경제 틀이 바뀐다’는 주제발표를 한다. 산업분야의 대표적 중국 전문가인 이문형 산업연구원 베이징지원장은 ‘제조업 경쟁력과 한국기업 대응전략’을, 홍창표 코트라(KOTRA) 중국지역부본부장은 ‘중국 내수시장 진출 방안’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위안화 이슈와 한국 금융의 과제에 대해, 박석중 신한금융투자 차이나데스크 팀장은 차이나머니와 자본시장 영향을 주제로 각각 강연에 나선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응전략을 모색하는 종합토론은 주중한국대사관 경제공사를 지낸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진행한다. 참가를 원하는 사람은 비즈니스워치 홈페이지(www.bizwatch.co.kr)를 통해 사전 신청하면 무료로 참석할 수 있다. ▲ 일시 : 2016년 2월24일(수) 오후 2시~6시 ▲ 장소 : 서울 여의도 63빌딩 컨벤션 2층 그랜드볼룸 ▲ 문의 : 비즈니스워치 국제경제세미나 사무국 (02)783-3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