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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돈..귀찮다" 빈병보증금 불안한 출발

  • 2017.01.05(목) 10:47

슈퍼·편의점 10곳 중 4곳 빈 병 회수 거부
소비자만 피해..술값은 오르고 빈병 팔지도 못해
보증금 쌓이면 '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만 이득

일부 편의점·슈퍼 등이 빈 병 회수를 거부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슈퍼 주인 : 한 병당 20원씩 쳐줄 건데 팔 거예요?
기자 : 소주 빈 병은 40원 아닌가요?
슈퍼 주인 : 팔이 아파서 병을 못 옮겨요. 5~10원 남기고 되파는 건데 할 수 없잖아요?


5일 비즈니스워치는 서울 여의도와 마포 지역 편의점과 슈퍼 10곳을 방문해 빈용기보증금(이하 빈병보증금) 환불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10곳 중 4곳이 "보관할 곳이 없다" "산 곳에 가서 바꿔라" "아르바이트라 잘 모른다" 등 이유를 대며 환불을 거부했다.

이중 2군데 슈퍼는 소주 빈병보증금을 20원만 주겠다는 곳도 있었다. 본지 기자가 들고간 '참이슬'(360㎖) 빈 병은 작년에 출시된 제품으로 빈병보증금은 40원(올해 출시된 제품부터 100원)이다. 슈퍼 주인이 '빈병보증금의 절반만 주겠다'고 소비자를 속인 것으로, 불법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 경우 최대 300만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빈병보증금이 환불된 6곳 중 5곳이 대기업이 운영하는 편의점이나 기업형 슈퍼마켓(SSM)이었다. 하지만 빈병보증금 제도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본사에 전화를 걸거나, 환불 방식을 몰라 쩔쩔 헤매는 경우도 많았다.

 

◇ 마트·슈퍼 "돈 안되는 빈 병..귀찮다"


올 1월1일부터 시행된 빈병보증금이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빈 병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소주병은 40원에서 100원으로, 맥주병은 50원에서 130원(인상된 빈병보증금은 올해 생산된 제품부터 적용)으로 각각 빈병보증금을 올렸지만 일부 마트나 슈퍼는 "귀찮다"며 빈 병 수거를 거부하고 있다. 빈병보증금 영향으로 맥주와 소주 판매 가격이 오르면서 빈병보증금 환불 거부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편의점 점주 등 2만7000여명이 가입된 한 인터넷 카페에도 빈병보증금에 대한 불만 섞인 글이 올라와 있다. A씨는 "좁은 매장에서 빈 병을 어떻게 관리하겠느냐"며 "앞으로 팩 소주나 페트병 맥주만 팔까 고민 중"이라고 글을 올렸고, B씨는 "대형마트에서 맥주를 구입하고, 빈 병은 동네 슈퍼로 가져올 것이 뻔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작년 6월 빈 병 취급수수료가 소주병은 16원에서 28원으로, 맥주병은 19원에서 31원으로 각각 올랐지만 빈 병 회수에 따른 번거로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동네슈퍼가 빈 병을 모아 팔아봤자, 도매업자 몫을 제외하고 남는 돈(취급수수료)은 병당 10~11원 수준"이라며 "한 박스를 모아도 240~264원에 불과해 빈 병 취급을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도 빈병보증금 반환에 소극적이다. 현재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전국에 빈 병 무인회수기 103대(53곳)가 설치됐거나, 준비 중이다. 수천 개에 이르는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 중 무인회수기가 설치된 곳은 53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무인회수기 기계값과 설치비는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서 부담하고 있다"며 "대형마트는 무인회수기 운영만 해줘도 되는데, 귀찮아서 그런지 신청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에 설치된 빈 병 무인회수기/이명근 기자 qwe123@ 

 

◇ 소비자 "캔·페트병 제품 사겠다"

 

소비자들도 빈 병을 되팔지, 분리수거할지 고민이다. 서울에 사는 박경숙(가명, 39세)씨는 "보증금도 올랐으니, 일단 집에 모아볼 생각"이라면서도 "나중에 운반할 때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양지원(가명, 44세)씨는 "빈 병을 모으기 부담스럽다"며 "빈병보증금이 올랐으니 이왕이면 병 제품보다 캔 제품을 사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슈퍼 등 회수 거부 등으로 빈병보증금 반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빈병보증금 인상을 이유로 맥주와 소주 등 판매가격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 롯데칠성음료 등이 주류 출고가를 인상한 지 일년도 안돼 또 한번 판매가격이 오르게 된 것이다.

 

반면 빈병보증금 인상 후에도 제도가 정착되지 않으면 환경부 산하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는 최대 '수혜자'가 된다. 현재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가 관리하는 미반환 빈병보증금만 570억원에 이른다.

업계 관계자는 "빈병보증금 인상은 시행 전부터 실효성에 의문이 많이 제기됐다"며 "빈병보증금 인상 뒤에도 회수율이 높아지지 않으면 이득을 보는 곳은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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