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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보복 1년]④체념한 명동…봄은 언제쯤

  • 2018.04.02(월) 09:56

유커 사라진 자리 동남아가 메웠지만 역부족
"작년 3분기 최악"…핵심상권 밖 임대 수두룩

중국의 사드 보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1년이 지났지만 아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가장 큰 피해자는 국내 유통업체들이다. 특히 중국인 단체관광객에 매출 대부분을 의존했던 면세점과 화장품 업계는 충격이 더 컸다. 중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희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사드 보복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국내 유통업계의 현실과 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편집자]


명동거리에 중국인 단체관광객(유커)들이 사라진 지 오래다.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하던 유커들의 큰 목소리도 이젠 잘 들리지 않는다.

지난달 27일 오후와 29일 오전 이틀에 걸쳐 찾은 명동거리는 유커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사드 사태' 전과 확연히 달랐다. 지난해 말 이후 사드 해빙 기대가 흘러나왔지만 체감하긴 어려웠다. 주요 거리를 메운 관광객은 중국인 위주에서 일본과 동남아인 등으로 다양해졌다. 

쇼핑의 중심지답게 명동 중심가에는 아직 활기가 남아 있지만 조금만 외곽으로 벗어나도 '임대' 안내가 붙은 점포들이 곳곳에 보였다. 특히 주한중국대사관에서 두 블록 떨어진 명동6길에는 임대로 나온 매장이 한 집 걸러 한 집꼴일 정도로 많았다. 

▲ 명동 내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관광객들.사진/방글아 기자

"이제 중국인들만 보고 장사하던 시절은 끝났다고 봐야죠. 유커를 기대하고 들어온 근처 빵집도 바로 어제 문을 닫았어요. 장사는 안 되는데 임대료는 너무 세니까. 사드 이슈가 끝나더라도 예전 같은 시절은 안 올 거예요. 중국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가 더는 메리트가 없어요." 

지난달 29일 오전 명동극장 인근에서 4년째 주방가전을 판매해 온 한 점장의 이야기다. 그는 "최근 주요 고객은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관광객"이라면서 "앞으로도 유커의 복귀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점장에 따르면 최근 늘어난 동남아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제품은 밥솥과 착즙기다. 과거 중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던 품목들이다. 몇 년의 격차를 두고 같은 상품의 주요 고객이 중국에서 동남아 관광객들로 옮겨간 셈이다.

그는 동남아 관광객들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를 토대로 "앞으로 5년 내 동남아 관광객들이 명동의 주요 고객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동남아 지역에서 중산층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후문을 전하면서다.

명동 상인들이 자성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명동은 쇼핑 외 관광 콘텐츠가 없어 상품의 라인업이나 관광 콘텐츠의 질적 개선이 없으면 유커에 이어 동남아 관광객들도 이내 발길을 돌릴 것이라는 자조 섞인 분석을 내놨다. 

▲ 폐점한 명동 상권 매장들.사진/방글아 기자

"작년 6월부터 9월까지는 정말 힘들었어요. 그전엔 한 달 매출이 2억원 정도였다고 하면 그 시기에는 1억2000만원 정도에 그쳤어요. 중국인 사이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 매출이 확 줄면서 전체적으로 어려웠죠. 최악의 시기는 지나간 것 같은데 다시 호시절이 올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역시 지난달 29일 오전 명동역에서 5분 내 거리에 있는 대형 화장품 매장 관리자가 전한 이야기다. 그는 "근방에 관광버스가 서기 때문에 (이 매장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면서도 "20~30명씩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오던 한해 전과 비교할 수준은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관리자는 "인근 호텔 프런트 직원에게 들은 얘긴데 올해 들어 중국인 관광객이 작년 하반기보다 15% 이상 늘긴 했지만 단체관광객은 아니다"면서 "사드 이후 일본인과 동남아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데 유커와 비교하면 매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인근 게스트하우스 직원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 직원은 "개인 단위 중국인 관광객(싼커)은 꾸준히 들어온다. 아직도 가장 많은 투숙객이 중국인"이라면서도 "대부분 혼자고, 저렴한 방에서 자고 쇼핑도 많이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 임대 매물로 나온 명동 상권 매장들./사진=방글아 기자

"신발 팔던 매대를 빼고 분식 집기들 들였어. 나 같은 경우엔 업종을 바꿨지만 문 닫은 사람들도 근방에 수두룩해. 요새 오는 손님은 중국인보다 일본이나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이쪽 사람들인데 예전 중국인들보다는 훨씬 적지." 

지난달 27일 오후 만난 분식집 사장은 신발 가게 경영난에 아예 업종을 바꿨다고 전했다. 명동 상권 매출을 이끌던 유커가 빠지자 자신처럼 문을 닫거나 영업시간을 줄인 가게가 많다는 설명이다.

영세 자영업자는 물론 은행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우리은행은 사드 이후인 지난해 10월부터 명동 환전센터의 일요일 운영을 중단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내점 고객 수가 많이 줄어든 데다 주말 근무를 하는 직원들의 고충도 많아 일요일 영업을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명동 상인들 사이에서는 이번 달부터 유커 진입이 다시 늘어날 것이란 소식이 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1년 간 거센 사드 보복 후폭풍에 지친 상인들 사이에선 유커 복귀에 대한 기대 보다 체념하는 분위기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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