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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오비맥주 매각설, 그 씁쓸한 뒷맛

  • 2018.09.13(목) 15:30

점유율 1위 오비맥주 매각설에 업계 '술렁'
사실무근 판명…어려운 주류업계 상황 투영

 
최근 주류업계가 크게 술렁였습니다. 국내 맥주시장 점유율 1위인 오비맥주가 매각된다는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설마'하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오비맥주가 굳이 매물로 나올 이유가 없어서입니다.

매각 이유도 의아했습니다. 모회사의 대형 인수·합병(M&A)에 따른 비용을 메우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오비맥주의 모회사인 AB인베브는 2015년 SAB밀러를 약 121조3800억원에 인수했습니다. 이 자금 상환에 부담을 느껴 오비맥주를 매각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AB인베브가 지난 2014년 오비맥주를 재인수할 당시 투자한 금액은 6조1680억원입니다. 만일 AB인베브가 오비맥주를 매각한다고 가정해도 SAB밀러 인수에 들어간 비용을 상쇄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입니다. 그래서 오비맥주 매각설은 더욱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여기에 오비맥주 인수에 신세계가 관심을 보인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여졌습니다. 매각설에 인수 대상자까지 거론됐으니 소문이 갖춰야 할 구색은 모두 갖춰진 셈입니다. 사실 신세계는 오래전부터 맥주시장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소주의 경우 제주소주를 인수해 이미 '푸른밤'이라는 제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맥주는 달랐습니다. 국내 맥주시장은 오비맥주가 60%가량 차지하고 있고, 하이트진로가 30%대, 롯데주류가 나머지를 가져가는 구도입니다. 그만큼 맥주시장은 공고합니다. 신세계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신세계는 수제맥주 시장을 노렸습니다. 2014년 문을 연 '데블스 도어'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 신세계의 수제맥주 전문점 '데블스 도어'.


신세계는 이후에도 꾸준히 수제맥주 시장 공략해왔습니다. 최근엔 국내 수제맥주 업체 인수를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런저런 이유로 뜻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 신세계가 적자 기업도 아닌 국내 맥주시장 점유율 1위 업체 인수에 나선다는 설은 애당초 어불성설이었습니다. 신세계가 공식적으로 오비맥주 인수설을 '부인'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업계 등에 따르면 오비맥주 매각설은 증권가 등에서 돌아다니는 사설 정보지, 일명 찌라시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합니다. 이를 근거로 소문에 살이 붙었고 맥주시장에 관심이 많은 신세계가 인수에 나선다는 내용까지 더해졌다는 게 업계가 판단하고 있는 오비맥주 매각설의 진행 경로입니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번 오비맥주 매각설이 시사하는 바는 큽니다. 국내 맥주시장 점유율 1위 업체가 매각된다는 소식도 그렇지만 이 소식에 주류업계가 들썩였던 것은 그만큼 국내 맥주시장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방증하기 때문입니다.

국내 맥주시장은 최근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국내 맥주업체들은 그동안 라거(Lager) 맥주만 출시해왔습니다. 이 때문에 국내 맥주시장은 라거의 천국이었고, 소비자들의 입맛도 라거에 길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국내 맥주가 '맛 논란'에 휩싸이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 자료 : 관세청 (단위 : 만달러).


소비자들은 다양한 맛의 맥주를 찾기 시작했고, 트렌드의 변화를 감지한 수입맥주 업체들이 대거 국내에 수입맥주를 선보였습니다. 국내 맥주업체들은 곧바로 전쟁에 돌입했지만 수입맥주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단기간에 점유율을 확대하면서 국내 맥주업체들이 가지고 있던 시장을 잠식했습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맥주 수입액은 전년보다 44.9%나 늘어난 2억6309만달러에 달했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수입맥주의 인기는 국내 맥주업체들엔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한때 70%를 넘나들던 오비맥주의 시장 점유율도 60%대로 떨어졌습니다. 업계에서는 오비맥주가 잃어버린 10%의 시장을 수입맥주가 가져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자 국내 맥주업체들도 살 길 찾기에 나섰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발포주(発泡酒)입니다. 하이트진로는 국내 시장에 처음으로 발포주 '필라이트'를 선보였습니다. 가성비를 앞세워 1만원에 12캔 마케팅이 크게 성공하면서 현재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오비맥주도 최근 발포주 시장 진출을 선언했습니다. 수입맥주의 공세를 막아내기 위해 국내 맥주업체들이 전략을 수정한 겁니다.

국내 맥주업체들을 어렵게 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맥주업체들은 최근 정부에 맥주 종량세 도입을 요청했지만 무산됐습니다. 수입맥주를 견제할 수 있는 대책 중 하나였던 맥주 종량세는 맥주의 용량이나 부피·알코올 농도 등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 국내 주류제품은 종량세가 아닌 종가세를 적용받습니다. 종가세는 제조원가나 수입가 등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입니다. 편의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수입맥주 1만원에 4캔 행사가 가능한 것도 종가세 덕분입니다. 업체들이 수입맥주를 들여올 때 가격을 낮게 신고했기 때문입니다.

국내 맥주업체들로서는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맥주 종량세 도입을 주장해왔습니다. 들여오는 양에 맞춰 세금을 부과해달라는 겁니다. 하지만 정부는 종량세를 도입할 경우 수입맥주 가격 상승에 따른 소비자 반발이 클 수 있고, 다른 주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종량세 도입을 보류했습니다. 국내 맥주업체들로서는 수입맥주에 대항할 무기를 또 잃은 셈입니다.

오비맥주 매각설이 마치 마른 가지에 불이 붙듯 순식간에 확산한 데는 현재 국내 맥주업체들이 처한 이런 어려움이 기저에 깔려있습니다. 업계가 어렵다 보니 점유율 1위 업체 매각설이 신빙성 있게 들린 겁니다. 어쨌든 오비맥주 매각설은 한바탕 소동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소동 뒤에 남은 뒷맛은 왠지 씁쓸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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