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푸드빌이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HMR(가정간편식)이다. 그동안 CJ푸드빌은 HMR과는 거리가 멀었다. CJ제일제당이 국내 HMR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거리를 둬왔던 것도 사실이다. 대신 외식 및 커피, 제빵사업 등에 주력해왔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상황이 바뀌었다. 소비자들의 외식 트렌드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저성장이 장기화하면서 소비 여력도 줄었다. CJ푸드빌엔 타격이었다. 특히 야심 차게 추진했던 해외사업의 부진이 뼈아팠다. 국내서 버텨 해외에서 까먹는 구조가 됐다.
그런데 그동안 그나마 버텨줬던 국내 사업들도 빨간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CJ푸드빌이 보유한 다양한 외식 브랜드의 성장 속도가 더뎌졌다. 비슷한 형태의 경쟁 브랜드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탓이다. 여기에 소비자들이 외식보다는 '집밥'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도 CJ푸드빌이 최근 고전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계절밥상'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3년 국내 시장에 가성비를 앞세워 선보인 한식뷔페 브랜드 계절밥상은 출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적절한 가격에 다양한 한식 메뉴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CJ푸드빌 내부에서도 계절밥상의 성공에 깜짝 놀랄 만큼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최근 계절밥상의 인기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한식뷔페 시장 자체가 위축되고 있다. 소비자들이 더는 한식뷔페 매장을 찾지 않아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한식뷔페 브랜드가 매장 줄이기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CJ푸드빌도 예외는 아니다. 출범 이후 지난해 54개로 정점을 찍은 계절밥상의 매장 수는 올해 45개로 줄었다. CJ푸드빌 관계자는 "브랜드가 출범한 지 5년이 되다 보니 계약이 만료되는 매장 수가 많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계절밥상의 매장 수 감소는 단순히 계약만료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결국 소비자들이 찾지 않는 탓에 수익성 담보가 어려워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CJ푸드빌도 고민이 많아졌다. CJ푸드빌의 대표 브랜드 중 하나인 계절밥상의 고전이 달가울 리 없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HMR이다. 한식뷔페 브랜드가 HMR을 선택한 것은 CJ푸드빌이 처음은 아니다. 신세계푸드의 경우 이미 자체 한식뷔페 브랜드인 '올반'을 앞세워 HMR 시장에 진출한 상태다.
과거에는 고객이 매장을 찾도록 집중했다면 이제는 고객을 찾아가는 전략이 최근 외식 브랜드들의 주요 콘셉트다. CJ푸드빌도 이 점에 착안했다. 소비자들이 매장을 찾지 않는다면 계절밥상의 음식을 집에서 즐기도록 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소비자들의 외식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려는 방편이기도 하다.
사실 CJ푸드빌도 HMR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미 같은 그룹 내 CJ제일제당이 HMR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서다. 자칫 간섭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어서다. 이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많은 고민을 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위기 탈출을 위해 HMR을 선택했고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는 평가다.
CJ푸드빌은 고민 끝에 지난 7월 계절밥상 브랜드로 첫 HMR을 선보였다. '맑은 돼지 곰탕'과 '죽순 섭산적 구이'다. 계절밥상 매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메뉴다. 배송은 온라인 신선식품 전문 배송업체인 마켓컬리를 이용했다. CJ제일제당의 HMR이 범용 메뉴 위주라면 CJ푸드빌의 HMR은 계절밥상 매장에서 인기가 있었던 메뉴를 선택해 차별화했다.
CJ푸드빌의 HMR은 생각 외로 반응이 좋았다. 출시 2주일 만에 온라인에서만 4000개 이상 팔렸다. CJ푸드빌은 HMR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것은 물론 자신감도 얻었다. CJ푸드빌은 최근 계절밥상 대표메뉴인 '숙성담은 돼지불고기'와 '청송식 닭불고기'도 HMR로 출시했다. 앞으로 제품 라인업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도 CJ푸드빌의 전략 변화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국내 외식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CJ푸드빌이 전략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시장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CJ푸드빌이 HMR을 선택했다는 것은 국내 외식시장도 더는 과거 콘셉트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HMR이 돌파구가 될지는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