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제약‧바이오 업무와 직결된 공직자들이 퇴직 후 제약‧바이오 기업으로 취업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제약‧바이오 기업 입장에서는 업계 이해도가 높은 인사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의약품 허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제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취업심사 승인자 중 보건복지부는 27명 중 22명, 식약처는 27명 중 27명 모두 관련 기관 및 기업으로 재취업했다. 2017년에는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을 거쳐 질본관리본부 본부장을 역임한 공무원이 퇴직 3개월만에 대웅바이오 대표이사로 취업했다.
또 같은 해 3월에는 경기지방식약청장(현 식약처)을 역임한 고위 공무원이 종근당바이오 사외이사로, 10월에는 고위 공무원이 퇴직 2개월 뒤 일동제약으로 취업했다. 과거에도 고위 공직자들이 차바이오텍, 보령제약, 휴온스, 씨젠 등 다수 제약‧바이오 기업으로 취업한 바 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등록 의무대상 공무원은 퇴직일로부터 3년간은 퇴직 전 소속했던 부서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취업제한 기관이나 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 재산 등록 의무 대상은 국가‧지방자치단체의 정무직 공무원, 4급 이상 공무원, 교육감, 법관‧검사, 대령 이상 장교, 공기업의 장, 공직유관단체임원 등이다. 다만 취업심사대상자 대해 공직자윤리위원회 승인을 받은 때에는 가능하다.
이들 대부분은 4급 이상 공무원에 해당돼 공직자윤리위원회 승인을 받고 제약‧바이오 기업으로 취업했다. 그러나 최근 젬백스앤카엘의 췌장암치료제 ‘리아백스’ 허가에 특혜 의혹이 일면서 공직자윤리법의 모호한 재취업심사 기준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젬백스앤카엘은 2013년 ‘리아백스’ 임상 허가 서류를 제출, 다음해 신약 21호로 조건부 허가를 획득했다. 당시 영국에서 진행한 임상3상 결과 유의미한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음에도 조건부 허가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후 지난해 식약처 임상심사위원이 의학적 근거가 미비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리아백스’의 허가취소를 요청했지만 묵살됐다. ‘리아백스’는 지난 8월에서야 조건부허가 기간 내에 제출해야 하는 임상3상 자료 미제출로 품목허가가 취소됐다.
허가 특혜 의혹은 리아백스 허가 2개월 전 식약처 허가심사과장이 젬백스앤카엘 부사장으로 취업했다는 점에서 시작됐다. 허술한 허가자료에도 불구하고 업무상 직접 관련이 있는 식약처 허가심사과장이 재취업해 최종 허가가 완료되면서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대웅제약은 보툴리눔톡신 제제 ‘나보타’ 허가에 일조한 고위공무원의 보은 인사 의혹을 받았다. 현 대웅바이오 대표이사는 나보타 허가 당시 질병관리본부 감염병대응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었다. 질병관리본부가 의약품 허가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는 없지만 업계에 따르면 당시 나보타의 역학조사를 감염병대응센터에서 담당했다는 전언이다. 나보타는 2014년 허가를 받았고 해당 고위 공무원은 2017년 대웅바이오 대표이사로 취임했다가 지난해 퇴사했다.
해당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복지부와 식약처 관련 공직자 채용에 대해 전문영역 특성상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사를 채용하는 것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특히 공직자윤리위원회 승인을 받은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대로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에서 취업이 제한된 사례도 있다. 별정직 고위 공무원이 지난 2017년 종근당으로 재취업하려고 했지만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2017년 3월에 취임했다가 10개월이 지난 2018년 1월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제한 결정으로 사퇴했다. 원 회장은 2015년 7월부터 11월까지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사회보장정보원장을 지냈다. 이후 공직자윤리법에서 2018년 11월부터 자유로운 몸이 되면서 제약바이오협회 회장으로 다시 취임했고 지난해 재선임됐다.
같은 복지부 산하기관이었던 질본 감염병대응센터장은 취업이 허용된 반면 사회보장정보원장은 취업이 제한된 것이다. 특히 젬백스앤카엘은 직접 의약품 허가에 관여한 공무원이었던 만큼 재취업 심사 기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 국정감사에서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은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고위공직자들의 재취업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마련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제약‧바이오 특성상 현직 경험을 보유한 공직자들은 허가심사와 관련한 조언을 얻을 수 있어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된다"라며 "다만 그 기준이 모호해 일관성 있는 취업심사가 요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