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메이드', '인디안', '올리비아로렌'으로 잘 알려진 가두점 패션 기업 세정이 변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최근 밀키트까지 내놓으면서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의 변신에 나섰는데요. 사실 패션 기업의 라이프스타일 영역 도전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LF는 이미 LF몰을 통해 식품은 물론 뷰티·시계 등의 제품까지 판매하고 있죠. 다만 세정은 '자체 개발'한 식품을 여럿 선보이며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세정의 '곁눈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세정은 창업주 박순호 회장의 3녀 박이라 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계속 변화를 시도 중입니다. 박 사장은 임원이 된 직후 복합 생활쇼핑몰 '동춘175'를 론칭했습니다. 온라인 쇼핑몰 '동춘상회'도 선보였죠. 그가 직접 준비한 '디디에 두보'를 론칭은 물론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코코로박스'도 인수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두 번째 주얼리 브랜드 '일리앤'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주력 사업이었던 패션 가두점은 '리뉴얼'이 한창입니다. 패션 통합 유통 플랫폼 '웰메이드'를 신설하며 인디안, 브루노바피 등 다양한 패션 브랜드를 한 곳에 모았습니다. 자회사 세정과미래를 통해 운영하던 캐주얼 브랜드 '니(Nii)'는 매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박 사장이 사장으로 취임한 2019년 이후 더욱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세정은 왜 이렇게 발바삐 움직이고 있을까요. 이유는 분명합니다.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세정은 경남 마산의 작은 옷가게에서 시작된 기업입니다. 주력 브랜드들이 2000년대 들어 빠르게 성장하면서 2011년에는 '1조 클럽'에 가입하기도 헀습니다. 당시 세정은 라이벌 형지와 더불어 중견 패션기업의 대표 주자였습니다.
영광의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2010년대 들어 MZ세대 소비자가 패션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릅니다. 이들은 평범한 가두점 브랜드보다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브랜드를 찾았습니다. 중저가 시장에서는 스트릿 브랜드가 급부상합니다. 세정은 여기서 1차 타격을 입었습니다. 2010년대부터는 패션 시장의 중심이 온라인으로 이동합니다. 오프라인 가두점이 주력 사업이었던 세정에게는 또 하나의 악재였습니다.
결국 세정은 지난 2017년부터 4년 연속 적자를 기록 중입니다. 2018년에는 적자 폭이 1000억원에 달했습니다. 세정은 오프라인 매장과 유통 구조를 대대적으로 손을 봅니다. 덕분에 2019년 영업손실을 51억원까지 줄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가두점 시장이 침체되면서 지난해 세정의 적자 폭은 408억원으로 확대됩니다. 올해는 '동춘175'마저 문을 닫았습니다.
세정에게 신사업은 난관을 뚫을 무기입니다. 디디에 두보는 2015년 150억원이었던 매출이 2019년 470억원까지 증가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주얼리 시장 위축에도 매출을 유지하며 '선방'했죠. 일리앤도 롯데몰 등 오프라인 거점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코코로박스는 세정에 인수된지 2년만에 매출이 300% 성장하며 매출 100억원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온라인 사업은 더욱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동춘상회의 지난해 온라인 매출은 전년 대비 740% 늘었습니다. 내실도 알찹니다. 자체브랜드(PB) 상품이 성장을 견인했습니다. 영국 셰익스피어재단과의 라이센스 리빙 상품인 '셰익스피어 시리즈'가 대표적입니다. 이 상품은 몇 차례 완판을 기록하며 대표 아이템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꽁블셰프'와 협업해 만든 커리 파우더 '꽁블커리'는 SNS를 중심으로 높은 인기를 끌며 넉 달만에 1만개가 넘게 판매됐습니다.
오프라인과의 시너지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동춘상회는 지난 3월부터 3개월간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서 팝업스토어를 운영했습니다. 동시에 라이브커머스로 신제품 론칭을 알렸죠. 많은 오프라인 유통 기업들의 꿈인 'O4O(Online for Offline)'의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또 세정은 이 팝업스토어를 통해 동춘상회에 대한 MZ세대의 인지도까지 끌어올렸습니다. 그 덕에 동춘상회는 올해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세정은 이 대목에서 '변신'을 결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실적으로 세정이 패션 시장에서 단기간 내 반전을 일으키기는 어렵습니다. 메종키츠네·르메르·아웨레가시 등 최근 오프라인 패션 시장에서 각광받는 '신명품'들은 대부분 대기업이 론칭한 브랜드입니다. 중저가 시장에서는 무신사 등 패션 플랫폼의 위세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중견 기성복 브랜드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신규 브랜드를 론칭하는 것은 부담이 큽니다. 패션 시장에서 신규 브랜드가 수익을 내려면 '고급화'나 '차별화'에 성공해야 합니다. 평범하고 익숙한 '가성비 상품'을 주로 만들어 온 세정이 당장 성과를 내기는 어려운 분야죠. 과감하게 투자해 볼 만큼 재무적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세정은 최근 웰메이드에서 골프 웨어를 선보인 것 외에 패션 시장에서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온라인에 올인하기도 어렵습니다. 세정의 뿌리는 패션 가두점입니다. 이들의 주요 고객은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입니다. 게다가 자체 온라인몰인 '세정몰'의 인지도는 낮습니다. 규모도 작고요. 섣불리 변화를 시도했다가는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결국 세정에게는 성과를 내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및 온라인 사업에 힘을 주는 게 최선입니다. 사업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신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정의 변신은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신사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절대적인 매출 규모는 아직 작습니다. 매출 1조원의 영광을 재현하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세정이 '패션'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의 변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도 분명합니다. 10년 후 세정은 어떤 기업으로 변해 있을까요. 한 번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