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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정부 씨, 아예 금리도 정해 주시죠?

  • 2013.08.23(금) 15:19

카드사 대출금리 낮추려는 과도한 규제 논란
고객이 제대로 비교할 수 있도록 하면 될 문제
경영전략 무력화•금리 자유화 역행 소지도

대한민국은 금리를 자율적으로 정하는 사회다. 1993년 11월 11일부터 각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금리를 정하는 금리자유화 정책을 시행했다. 그렇다고 정부가 마냥 손을 놓는 것은 아니다. 순수한 의미의 자율경쟁이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이 금융시스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면 규제를 한다. 자유방임의 금리 자유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난 22일 금융위원회를 비롯해 안정행정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산림청, 금융감독원 등 관계 부처는 ‘여신전문금융회사 및 상호금융조합 금리체계 합리화 추진’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서민들의 제2금융권 금융 문턱이 높다는 지적이 일자 정부가 나서 금리체계 합리화 방안을 만든 것이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서민들의 불편을 해결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정부의 책임이다. 하지만 과도한 정부의 개입으로 금융회사의 자율적인 경영까지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대출금리 수준을 내리고 싶은 정부가 자율화된 금리체계를 문제 삼아 금융회사들의 금리를 사실상 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6월 2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콘래드 호텔에서 취임 후 상견례를 겸해 신용카드사 CEO들과 간담회를 했다. 최 원장은 이 자리에서 서민금융 활성화 차원에서 리볼빙·카드론·현금서비스 등 대출금리를 정상적으로 운영해달라고 당부했다.]


◇ 비교 공시 강화 방향은 맞다, 그러나…

이용자 입장에서 어느 금융회사가 나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그래서 정확한 비교공시는 꼭 필요하다. 그래서 정부가 제시한 비교 공시 강화 방안은 대체로 방향을 잘 잡았다. 그러나 금융회사의 원가구성 항목과 배분요소를 일일이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코치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보통 원가는 가격이다. 금융에서 가격은 금리다.

정부는 먼저 금융회사가 ‘자체 기준’으로 금리를 산정하는 것을 ‘자의적이고 불합리하다’고 평가했다. 금융회사가 스스로 금리 기준을 정하는 것이 문제인가? 그것이 금리 자유화 아닌가? 금융회사가 금리를 정하지 않으면 누가 정하는 것인가?

정부는 이어 2개 회사의 원가 구성 항목을 보니 원가구성 항목 및 배분요소가 달라 금리체계의 일관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서로 다른 경쟁 회사의 원가 구성은 똑같아야 하는가? 만약 경쟁 회사의 원가 구성이 같다면 두 회사의 금리 차이는 발생할 수 있는가?

정부는 또 업무 프로세스가 유사한 카드대출과 리볼빙 간에 업무원가 차이가 4%포인트나 났고(C사), 금리를 우선 설정하고 마진(이윤)을 사후적으로 조정함에 따라 일부 신용등급 회원에게는 오히려 역마진이 발생했다(D사)는 현상을 소개했다. 업무 프로세스가 유사하면 원가 차이는 없어야 하나? 일부 신용등급 회원에게는 역마진이 나면 안 되나?

◇ 같은 금융상품의 금리는 다 같아야 하나?

결론적으로 정부는 금융상품의 가격인 금리가 회사별로 달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정부는 물론 부인할 것이다. 각 회사는 인건비 등을 경쟁사보다 줄여 금리 차이를 낼 수 있고, 그렇게 해서 고객에게 다가가면 된다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앞서 정부가 지적한 사항들은 사실 경영권에 해당하는 것이다. 회사들은 보통 원가 구성과 원가를 조정해 회사의 영업력을 끌어올린다. 판매 상품 10개를 가지고 있는 어떤 회사가 균등하게 10개 상품에 공을 들이는 것은 아니다. 경영 전략상 어떤 상품은 주력하고 어떤 상품은 갖춰 놓긴 하지만 등한시한다. 그게 경영 전략이다.

가격 결정 요인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마트의 많은 상품의 가격이 경쟁 마트와 모두 같지 않은 이유다. 어떤 상품은 더 싸고 반대로 더 비싼 상품도 있다. 고객은 항상 가격이 싼 상품을 사기 원해 여러 마트를 돌아다닐까? 아니다. 2개 상품을 모두 살 때 돌려주는 캐시백이나 포인트를 고려해 큰 차이가 없다면 경쟁 마트로 다시 가는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그냥 사는 게 더 합리적일 수 있다.

그래서 주력하는 상품은 일부 역마진을 감수하더라도 판매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신경을 덜 쓰는 상품은 가격 경쟁력을 일부러 낮추기도 한다. 회사마다 전략이 다르므로 고객은 잘 비교해서 나에게 가장 유리한 회사를 찾는 것이다. 그것이 같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회사들에 경쟁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 모범규준 운용은 자율이라며 내규에 반영해라

이런 전제로 정부는 대출금리 모범규준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대출금리는 기본원가에 목표 이익률(마진), 조정금리 등을 반영해 산정하라고 지시했다. 기본원가 구성 내용은 친절하게도 깨알같이 정해줬다. 신용원가는 예상부도율과 부도 시 손실률, 업무원가는 인건비와 임차비, 조달원가는 자금조달 수단별 금리, 자본원가는 신용위험자본율과 자기자본비용이 기준이다(모범규준 제6~9조).

그런데 모범규준에서 보면 이 네 가지 원가 산정 설명에서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합리적’이라는 단어다. ‘신용원가는 …… 등을 감안해 합리적으로 산정한다’는 식이다. ‘합리적’이라는 것은 일면 당연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정부가 각종 법이나 규정에서 사용하는 ‘…… 등’과 같은 것이다.

마진(목표이익률)에 대한 규정도 있다. 신용카드업자는 목표이익률을 과도하게 설정하지 아니한다(제10조). 경영환경 등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신규 대출(만기 연장, 대환 포함)에 대한 목표이익률을 과도하게 인상하지 않도록 한다(제13조). 한마디로 기업인 금융회사에 마진을 내지 않았으면 한다는 얘기다. 마진이 줄면 이익도 당연히 준다.

이런 정책은 정부로서도 부담이다. 정부는 금리 자유화의 원칙에 부합하도록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대출금리 모범규준을 운용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자율’이지만 사실은 거짓말이다. 여신전문금융회사는 오는 11월까지 각 회사의 내규에 이 대출금리 모범규준을 반영해야 한다. 내규에 반영되면 감독 당국의 검사 때 제재의 근거가 된다.

창조적인 경제를 하고 싶다면 이런 것은 안 된다. 기업의 경영 전략을 해치는 이런 시도는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영 전략을 잘못 세워 회사가 망하면 그것은 그 회사의 경영진과 주주의 몫이다. 금융회사의 위기는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어 관치가 일부 용인되기는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기도 아니다.

서민들에게 싸게 대출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에 맞는 정책을 정당하게 쓰면 된다. 잘못했으면 제재하고 유도하려면 인센티브를 주면 된다. 금융회사의 팔을 억지로 비틀어 가이드라인(모범규준)이라는 이름으로 규제하는데 정력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은행과 카드사들은 올해 상반기에 이미 큰 폭으로 이익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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