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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티격태격 금융위·금감원…그 끝은?

  • 2018.11.19(월) 11:28

예산 심사 두고 금융위·금감원 갈등
"예산으로 군기잡기" vs "감사원 지적 반영일 뿐"
'최종구·윤석헌 갈등이 배경' 분석도

"금융위원회가 동생 배려안하는 형이라면 금융감독원은 형 말 안듣는 동생이다."

한 금융당국자가 사석에서 한 말이다. 금융위는 법에 따라 금감원을 지도·감독해야 하지만 금감원은 감독 업무 성격상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상황을 비유한 것이다. 1988년 '금융위·금감원 체제'가 시작한 이후 형제가 티격태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는 너무 심하다."

최근 만난 금감원 직원의 하소연이다. 금감원은 현재 금융위로부터 예산안을 심사받고 있는데 금융위의 심사가 여느 때보다 깐깐하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이 자체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맸는데도 금융위가 예산을 더 깎으려고 하면서다. 금감원이 제출한 내년 예산은 3630억원으로 올해(3625억원)와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삭감이다. 인력도 현재의 1970명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은 늘어나는데 예산과 인력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금융위는 예산을 더 깎으려고 든다"며 "3급 이상 상위직급자를 현재 45%에서 35%로 감축하는 계획안을 냈는데 금융위는 30%까지 줄이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내년부터 금감원에 공공기관 수준의 엄격한 예산관리 '잣대'를 적용하면서 "금감원이 놀랐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금감원은 공공기관이 아닌 '반민반관'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데 국회 등에서 금감원을 공공기관 수준으로 운영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상위직급자 축소에 대한 명분도 있다. 지난해 감사원은 금감원의 상위직급자가 과도하다며 감축을 요구했다. 금융위에 대해선 금감원의 방만운영에 대해 제대로 통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회 등에서 금감원도 공공기관과 비슷한 수준에서 예산을 관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공공기관 수준의 금감원 예산지침을 만들다보니 금감원이 깜짝 놀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기관과 똑같은 수준으로 강화하면 금감원이 더 놀랄 수도 있어 (수위를)고민하고 있다"며 "다만 금감원은 예산소위 민간위원이 있어 금융위가 단독으로 금감원 예산을 ‘칼질’ 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왼쪽)이 작년 금융행정혁신위원장 시절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함께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금융위 제공]


이번 예산심사를 두고 금감원의 불만이 커지는 이유는 그간 두 기관의 관계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두 기관의 수장은 미묘한 신경전을 벌여왔는데 금융위가 예산 심사를 빌미로 '군기 잡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달 24일 금융위 전체회의에서 금감원의 회계감리를 받는 기업이 조사과정에 변호사를 입회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했다. 이 자리에서 윤석헌 금감원장이 변호사 입회를 허용하면 조사가 더 어려워진다고 반대하자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원장님은 교수 시절에도 이렇게 주장하셨겠습니까"라고 응수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이에 대해 금융위가 '해명자료'를 내지 않으면서 '설전'은 기정사실로 되고 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회계감리 기업의 변호사 입회권은 이미 합의가 됐고 전체적인 흐름으로 봐도 옳은 방향이다. 금감원의 이기주의로 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최 위원장이 그 자리에서 굳이 그 말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목소리도 있다. '다른 분들이 모두 동의하고 있으니 윤 원장 의견은 기록으로만 남기겠다'고 하면 끝날 일"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최 위원장은 관료, 윤 원장은 학자 출신이다. 최 위원장은 재무부 때부터 공직 외길을 걸어 금융위원장에 올랐고 윤 원장은 대학교수 시절 '금융위 해체'를 주장한 소신파 학자다. 작년말 윤 원장이 금융위 민간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을 때도 최 위원장과 근로자추천이사제 등을 두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올해 5월 윤 원장이 금감원장에 취임한 이후 예상대로 두 사람의 손발은 맞지 않았다. 지난 5월 금감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 특별감리 결과 통보조치를 언론에 알린 것을 두고 최 위원장은 "금감원이 전례없이 (언론에) 알렸고, 시장에 충격과 혼란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국회에선 "실세 금감원장이 와서 금융위원장의 영이 하나도 안선다는 우려가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당시 두 사람은 협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신경전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지난달 금감원이 '금융기관 내부통제 혁신 태스크포스(TF)'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도 갈등이 있었다. 내부통제 혁신 결과 대부분이 금융위의 고유 업무인 법 개정 등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금감원이 사전 조율없이 성급하게 결과를 발표했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금감원에 현재 운영중인 TF 전수조사에 나섰다. 거칠게 표현하면 금융위 몰래 금감원이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까보자는 얘기다.

발표 시점도 묘했다. 윤 원장은 '내부통제 혁신 TF'를 지난달 17일 오전 11시에 발표했다. 이날 오전 10시 최 위원장은 동산금융 활성화를 위한 은행장 간담회를 진행했다. 같은날 비슷한 시간대에 두 수장의 행사가 겹친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금융회사로 보면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같은날 같은 시각에 서로 다른 행사를 동시에 진행한 상황"이라며 "일반 금융회사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최근 청와대가 김동연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동시에 교체했다. '경제투톱'을 동시에 경질한 것은 경제정책 노선을 둔 두 사람의 갈등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경제투톱'은 언론에 갈등설이 제기될 때마다 소문이라고 일축하고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안타깝게도 그 길의 끝에서 만나지 못하고 헤어졌다. 금융당국 수장간 갈등의 골이 깊어져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형제의 싸움이 도를 넘으면 부모가 개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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