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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아직 추운 대구…그래도 함께 희망을 쏜다

  • 2020.06.23(화) 09:00

코로나19 확산으로 한파 몰아친 대구 지역경제
5월부터 조금씩 회복세…"하지만 여전히 어렵다"
전국 최고 수준 방역의식…코로나19 퇴치 '앞장'

유동 인구가 넘쳐나던 지역인데 시시각각 사람이 줄더니 결국 거리가 텅텅 비었다. 그 후 거리에선 급하게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가 내는 사이렌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 영화의 도입부 같은 장면이지만 이는 영화가 아닌 현실이다. 지난 2월 말부터 4월까지 코로나19가 휩쓴 대구 시민들이 떠올린 기억이다. 

코로나19가 몰아친 당시와 비교하면 상황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대구는 여전히 추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다만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처럼 '방역'의 중요성이라는 큰 교훈을 남겼다. 실제로 대구 시민들은 최고 수준의 방역의식을 보여줬다.

지난 2월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하자 정부가 서울역 방역작업에 나서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한파 몰아친 대구의 봄   

지난 2월 18일 대구에서 31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대구‧경북 지역에선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3월 중순까지 전국 코로나19 확진자의 90%가 대구‧경북에서 나왔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대구‧경북지역 경제도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완성차 산업 전반이 흔들리자 완성차 부품업계로 고스란히 충격파가 전해졌고, 지역경제도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거리에 나서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줄면서 소상공인들은 '벌이'가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도권 기온이 올해 최고 수준으로 올랐던 6월 중순, 기자는 대구를 찾았다. 예상했던 적막감은 없었지만 상흔의 느낌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32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임에도 알 수 없는 스산함이 스쳤다.

지난 4월 벚꽃이 만개한 대구 시내. 하지만 거리를 걷는 인파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사진=독자 제공

주변 소상공인들은 지난 봄에 '한파가 몰아쳤다'라고 회상했다.

대구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지숙(가명‧58세) 씨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시기"라며 "거리에는 사람이 없고 그러다 보니 주변 자영업자들 모두 힘들었지만 토로할 데가 없었다. 모두가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년간 함께 일하던 종업원들을 해고해야 했고, 그나마 손님이 올 확률이 높은 점심과 저녁 일부 시간에 영업을 계속하긴 했지만 다니는 사람이 없으니 장사가 될 리 만무했다"면서 "우리 가게는 저녁 손님이 특히 많았는데 당시 하루에 많아야 두 테이블 정도만 받았다"라고 전했다.

실제 한국은행 대구경북영업본부에 따르면 지난 3월 이 지역 대형소매점의 판매 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4%나 줄었다. 고용 역시 지난해와 비교해 11만 2000명이나 감소했다. 

대구‧경북지역의 기반 산업인 완성차와 자동차 부품업계도 한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자동차 부품 협력업체를 운영하는 조길현(가명‧52세) 씨는 "작년부터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코로나19가 직격탄을 날렸다"면서 "주요 완성차 기업들이 해외 공장과 부‧‧울‧경 지역 공장 문을 일시적으로 닫으면서 그 여파가 고스란히 부품업체로 넘어왔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완성차 공장이 며칠 문을 닫으면 협력사들은 훨씬 더 큰 손실을 본다"면서 "아직까지도 그 여파가 남아있다"라고 덧붙였다.

3월 자동차 수출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에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이 자동차부품업계와 간담회를 열고 에로사항을 듣고 있는 모습. 대구·경북 지역을 떠받히는 주 산업군은 완성차와 자동차 부품업계로 코로나19 한파가 몰려갔지만 공장 가동률은 여전히 50% 밑이라는 게 대구 자동차부품업계 종사자의 설명이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한파 몰아친 봄은 갔지만 추운 여름

헌신적인 의료진과 대구 시민들의 높아진 경각심 덕분에 대구‧경북지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크게 줄었다. 여기에다 정부가 추가경정예산 일부를 대구‧경북지역에 집중 할당했고, 정부 재난지원금이 더해지면서 지역 경기도 활기를 되찾고 있다. 

실제 한국신용데이터는 5월 첫 주를 기준으로 대구지역 소상공인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95% 수준을 회복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최영호 하나은행 대구영업본부 대표는 "주변 식당가들이 4월 중순부터 조금씩 문을 열기 시작했고, 5월 재난지원금 지급에 이어 6월부터 대구에서 확진자가 안 나오는 날이 늘면서 주변 경제가 점차 회복하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코로나시대 금융의 길]'나이팅게일'이 된 은행원들

6월 오전 대구 동구시장 초입.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동구시장을 찾는 방문객이 여전히 예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주변 상인들의 설명이다. /사진=이경남 기자 lkn@

하지만 대구 시민들은 하나같이 아직 위기는 진행형이라고 말한다. 전국에서 가장 덥기로 유명한 대구지만 코로나19의 상처가 워낙 깊었던 탓에 지역경기는 여전히 찬바람이 불고 있다는 얘기다.

대구 한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지점장 김재선(36세) 씨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줄어든 데다 정부 재난지원금 효과 등으로 매장을 찾는 고객이 점차 늘고 있다"면서 "2~4월과 비교해 5월 들어선 매출도 점차 회복하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도 "2~4월이 너무 힘들었던 만큼 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 수는 작년 말보다 1~2명 적은 수준으로 계속 유지해야 할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김지숙 씨 역시 "점심, 저녁 장사는 손님 숫자가 예년 수준을 회복했고, 주말엔 동성로 일대에 젊은 친구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하는 등 2~4월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라면서도 "하지만 해고했던 직원을 다시 복직시킬 만한 정도는 아니며,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조길현 씨는 "우리 같은 협력업체는 결국 대기업이 얼마나 회복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여전히 좋지 않은 상황임은 분명하다"면서 "2~4월이 워낙 안 좋아서 상황이 조금 나아진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예년 수준을 회복한 건 아니며, 앞으로도 어려운 시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당장 달성공단의 공장가동률이 예전 수준까지 오르지 못하면서 공장의 절반도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제조기업들은 하반기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인 6월 평일 오전 출근길 대구 지하철 1호선의 모습. 대구 시민들은 코로나19 사태를 겪은 이후에도 철저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다. /사진=이경남 기자 lkn@

◇ 코로나19가 남긴 것

코로나19는 대구 시민들에게 위기 국면에선 단 한 사람의 시민도 경각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실제 평일 오전 8시 30분 가장 붐비는 출근 시간대임에도 대구 1호선 지하철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됐다. 빈자리가 있는데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기 위해 한 칸씩 떨어져 앉으면서 남은 자리는 그대로 비워뒀다. 서있는 사람이 훨씬 많은 데도 빈자리는 차지 않았다. 

대구 중앙로역 지하상가에서 만나 박귀순(76세) 씨는 "요즘 날씨가 더워지면서 마스크를 쓰기 어렵다는 대화가 부쩍 늘긴 했는데 그래도 결론은 마스크는 꼭 써야 한다는 쪽으로 모아진다"면서 "지난 봄 너무 힘든 시기를 보낸 탓인지 대구 사람들 모두 경각심을 유지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한파를 겪은 대구 사람들의 필수품은 마스크다. 많은 대구지역 식당들은 마스크의 청결 유지를 위해 식사시간 동안 마스크를 보관할 수 있는 일회용 비닐팩을 나누어주고 있다. /사진=이경남 기자@

식당가도 마찬가지였다. 지역경기가 회복되면서 소위 '맛집'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빼곡히 앉기보다는 거리를 띄워 앉는 문화가 자연스러워졌다. 마스크를 보관할 수 있는 일회용 비닐팩을 제공하는 식당도 생겼다. 

이 식당에서 일하는 관계자는 "마스크는 일상에서 없어선 안될 중요품이고 늘 청결히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주변 상인들이 고객들에게 비닐팩을 제공하기 시작했다"라고 소개했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수도권 주민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최근 수도권 확진자 증가세를 보면 남일 같지가 않다"면서 "일이 터진 뒤에는 수습이 훨씬 더 어려워지는 만큼 수도권은 물론 전국민이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철저한 방역의식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확산되는 가운데 11일 서울 이태원 클럽 주변이 적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구지역 사람들은 남녀노소 경각심을 가지지 않으면 순식간에 확산되는 질병인 만큼 수도권 사람들 역시 경각심을 갖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명근 기자 qwe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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