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이 정부 정책 코드 맞추기에 나섰다. 취임사로 원자력발전(원전) 수주 지원을 강조했던 윤희성 수출입은행 행장에 이어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도 취임 100일 간담회에서 반도체에 3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강조하는 원전과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금융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국책은행 존재감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산업은행 본점 부산이전 등 현안이 워낙 크다는 점이 변수로 꼽힌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취임 100일 간담회에서 △초격차 기술산업 지원 확대 △경제안보 대응 강화 △산업구조 대전환 지원 △시장안전판 역할 강화 등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특히 강 회장은 '한국경제 재도약'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하며 향후 5개 내외 산업을 선정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1호 프로젝트로는 반도체 산업을 선정해 펩리스와 파운더리 10조원,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육성 10조원, 메모리 반도체 10조원 등 5년간 30조원의 금융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강석훈 회장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드는 게 산업은행 역할로 초격차 기술이 확보된 곳은 적극 지원하겠다는 것"이라며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는 대기업과 산업은행, 민간펀드 등이 참여해 반도체 산업 설비투자 촉진과 연구개발 등을 지원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 7월말 취임한 윤희성 수출입은행장은 취임사를 통해 신속하고 적극적인 금융 지원으로 정부 정책을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중 하나로 에너지‧안보 이슈를 꼽으며 원전과 방산업 수주 지원을 공언했다. ▷관련기사: 윤 정부 '코드' 맞춘 윤희성 수은 행장 "원전·방산 수주지원"(7월27일)
윤희성 행장은 "정부의 원전 수출산업화 정책에 부응해 신규원전 수주와 원전생태계 복원을 위한 정책금융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며 "원전‧방산이 해외건설과 플랜트 등 전통 수주산업에 이어 제2의 전략 수주산업이 되도록 수은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와 원전은 윤석열 정부가 110대 국정과제로 담은 육성 산업 분야다. 원전 관련해선 2030년까지 10기 수출을 목표로 수주 활동을 전개한다는 구상이다. 이 과정에선 원전‧방산‧경협 등 지원패키지 제공이 가능하도록 정부부처와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해 금융기관도 참여한다는 내용이다.
반도체의 경우 경제안보‧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첨단산업으로 보고 초격차 확보와 초격차 창출을 목표로 한다. 투자지원 확대와 인프라 구축 지원 등으로 2027년에는 반도체 수출액을 1700억달러까지 성장시켜 지난해 대비 30% 이상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강석훈 회장과 윤희성 행장 계획대로 정부 육성산업에 국책은행이 금융지원에 적극 나서면 이전보다 존재감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그동안 산업은행 등은 기업 구조조정과 벤처기업 육성 등에 주력했는데, 상대적으로 성과를 통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쉽지 않았던 까닭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국책은행은 정부 정책에 맞춰 방향을 바꾸고 시중은행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게 사실"이라며 "실질적인 성과를 내려면 금융지원이 중요한 만큼 국책은행 역할이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걸림돌도 존재한다. 산업은행 본점 부산이전 등 정치적 현안이 대표적이다. 강석훈 회장이 부산이전에 대해 국정과제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노조와의 대립이 격화될 조짐이다.
현 정부 들어선 산업은행이 부각되고 있지만 과거 국책은행 모두 지방이전 대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출입은행과 기업은행 등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산은 노조 관계자는 "지방이전을 둘러싼 대립이 계속되면서 직원들 내부적으로 업무가 원활히 이뤄지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며 "반도체 30조원 지원 추진도 현재로선 쉽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