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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금융결산]①앞은 '완화' 뒤는 '강화'

  • 2023.12.28(목) 08:33

'금산분리' 외쳤지만 좌충우돌 속 흐지부지
특화은행 설립도, 새 시중은행 추가도 지지부진
대형 금융사고 빈발 속 지배구조 규제는 강화

금융회사들은 '설렘'으로 2023년을 시작했다. 금융당국이 금융사들의 외형 성장을 지원하겠다며 대대적인 규제 완화를 예고해서다. 하지만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지금 돌아보면 오히려 금융 규제는 강화됐다.

금융당국이 추진하던 금융규제 완화는 방향만 제시됐을 뿐 시행되지 못했다. 오히려 금융사들은 지배구조와 관련한 규정이 세심하게 다듬어진 탓에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신기루 된 금산분리 규제 완화

올해 초 금융당국은 큰 폭의 규제완화를 예고했다. 은행을 필두로 금융회사들이 이자장사에 치중해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그랬다. 금융산업을 선진화하려면 새로운 먹거리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금융당국은 금융회사들의 비금융업 진출을 열기로 했다. 이른바 '금산분리 규제 완화'다. 금융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금융 데이터를 이종 산업과 융합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취지였다. 이는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취임 일성이기도 했다. ▷관련기사 : 금융 '외형 키우기' 지원…지배구조는 '더 꼼꼼히'(1월30일)

그러나 연초의 계획과 달리 금융당국이 과감하게 추진하던 금산분리는 신기루처럼 자취를 감췄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피력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은행 한 대관업무 담당자는 "기존에 비금융 업종 사업자들은 자본규모가 큰 금융회사가 새롭게 시장에 진입할 경우 시장이 교란될 것이라는 의견을 국회나 관련 당국에 적극적으로 전하고 있다"며 "지금도 막대한 이익을 내는 금융사에 굳이 먹거리를 더 만들어 줄 필요가 있느냐는 식이다 보니 진척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금융회사들이 더욱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도록 업권 내 장벽을 허무는 규제 완화 방침도 '내부 싸움'에 진도를 빼지 못했다. 은행의 투자일임업과 비은행 금융회사의 지급결제 업무 허용이 대표적이다. ▷관련기사: 은행 경쟁촉진, 지급결제·투자일임 허용은 없었다(7월14일)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은행의 투자일임업 허용과 방카슈랑스 규제 완화 목소리는 연중 계속됐지만 은행, 보험사, 증권사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지지부진했다"며 "비은행 금융회사의 지급결제 업무의 경우 금융시스템 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유보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고편은 상영됐는데…본편 없는 '뉴 플레이어'

금융당국은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 촉진과 일부 업종의 과점체제 해소를 위해 새로운 플레이어들의 등장도 예고했다. 지급결제전문은행, 중소기업대출 전문은행 등 특화은행을 설립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연초 기업금융에 특화됐던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면서 특화은행의 리스크를 엄밀히 따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화은행의 경우 사업 포트폴리오가 한 분야에 쏠려있다 보니 작은 위기에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금융업의 특성 상 전체 금융시스템의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관련기사: 특화은행 도입 '급브레이크', 금융권 '설왕설래' (4월4일)

금융당국은 6번째 시중은행의 등장도 예고했다. 은행들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시중은행' 인가 절차를 바꿨고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이 이에 도전한 것이다. ▷관련기사: "연내 전환 신청" 대구은행, 시중은행 자극제 될까(7월5일)

대구은행은 7월 관련 규제 완화가 예고된 직후 시중은행 전환 인가 방침을 밝혔지만 아직까지 정식 '신청'은 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추진할 동력을 하반기 들어 잃고 있어서다. 

대구은행의 모기업인 DGB금융지주 회장의 임기가 내년 3월까지로 얼마 남지 않아 새로운 수장을 뽑는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DGB금융지주 입장에서는 새로운 수장을 뽑아야 하는 만큼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의 우선순위를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대구은행에서 대규모 불법 계좌 개설 혐의가 포착된 점도 시중은행 간판을 단 '대구은행'의 등장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해당 사건과 관련된 금융당국의 징계가 확정되면 새로운 사업 진출이 어려워진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왼쪽)/사진=금융위원회 제공

'풀기'보다 '죄기'가 더 강해진 이유

이번 윤석열 정부 금융당국이 가장 눈여겨보고 있는 것은 금융사 지배구조다. 관치금융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당국은 민간 금융사의 지배구조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 경영 투명성이 필요하다는 게 명분이다. ▷관련기사: 이복현 "금융사 지배구조 투명하게" 또 일침(2월6일)

대표적인 것이 최근 금융감독원이 내놓은 은행과 은행계열 지주회사의 CEO 경영승계 절차, 이사회 구성 등의 개선방안이 담긴 '은행·은행지주 지배구조 모범관행(Best Practice)이다. CEO의 선임 과정을 최소 3개월로 늘리고 외부후보에 대한 공정한 기회 제공, 사외이사진의 다양성 확대 등이 내용으로 담겼다. ▷관련기사: 금감원 "은행지주CEO 승계 3개월전 개시…외부후보 동등기회"(12월12일)

해당 모범관행은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마련됐으며 강제성이 없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권은 사실상 지배구조와 관련한 규제를 강화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다만 이 같은 규제 강화를 금융사들이 자초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번 정부 들어 금융당국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혁신을 통한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했지만 횡령사고, 금융투자상품 불완전 판매 등이 잇달아 터졌다. 

이와 관련 올해 경남은행에서는 3000억원 가량의 횡령사고가 발생했다. 아울러 최근에는 은행에서 약 20조원 가까이 판매됐던 홍콩 H지수 연계 상품(ELS)과 관련해 대규모 원금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당국은 ELS 판매 과정에서도 대규모 불완전판매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있다. ▷관련기사 : 흔들리는 홍콩 ELS…전전긍긍 은행들(11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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