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내년도 예산안을 비롯해 국회서 논의 중이던 정책들은 모두 중단됐다. 정부가 추진할 예정이었던 세법 개정, 의료·국민연금 개혁안 등도 국회와 민심을 설득하기 어려워졌다.
국회는 정기국회가 종료되는 10일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앞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가 가결한 예산안은 이미 처리 시한(11월30일)을 넘긴 상태다. 하지만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대통령 탄핵안 불발 등이 이어지며 국회 논의는 더욱 격랑에 빠질 전망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탄핵안 폐기후 경제부처 공동 성명서 형태로 "경제문제만큼은 여야 관계없이 조속히 처리해 줄 것을 간곡히 호소드린다"고 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내년도 예산 추가 삭감을 예고했다.
내년도 예산 어떻게 되나…초유의 '준예산' vs 추가 감액?
앞서 정부는 677조4000억원 규모의 예산안을 제시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예결위에서 예비비 2조4000억원, 대통령실·검찰 등 특수활동비 760억원을 포함한 4조1000억원을 감액한 예산안을 단독 의결했다.
예결위에서 예산안이 야당 단독으로 처리된 건 헌정사상 처음이다. 여야 및 정부가 팽팽하게 대치하던 상황이었지만 계엄 사태 후 더 이상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정부로선 감액안을 거부할 명분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지난 7일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후 예산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었지만 탄핵안이 국민의 힘 표결 불참으로 폐기되면서 이 역시 불투명해졌다. 오히려 추가 삭감을 예고한 상태다.
민주당은 탄핵안 통과 없이는 예산안 협의도 없다는 방침이다. 만에 하나 연말까지 국회가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더라도 모든 행정이 마비되는 건 아니다. 헌법에 따라 정부는 예산안이 의결될 때까지 전년도 예산에 준하는 '준예산'을 집행할 수 있다. 지금까지 준예산이 편성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준예산 아래에서는 신규 지출이 불가능하며 최소한의 국가기능을 유지하는 수준에서만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선례가 없었던 만큼 곳곳에서 불편을 겪으리란 우려가 나온다.
민생정책, 정기국회서 논의 가능할까
여야가 이미 합의한 민생 법안도 멈춘 상태다. 금융권에선 △예금자보호법 개정안(보호 한도 1억원으로 상향) △대부업법 개정안(자기자본 요건 1억원으로 상향) 등이 국회 본회의 통과만을 앞두고 있다.
예산안과 함께 처리 예정이던 세법 개정도 중단됐다. 현재 여야는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와 '배당소득 분리 과세' 등을 두고 견해차를 보인다. 정부가 지난 7월 상속세 최고세율을 현행 50%에서 40%로 낮추고, 밸류업 기업에 투자한 주주의 배당소득세를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야당은 '부자 감세'라며 반대하고 있다. 내년 시행되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도 시급하다.
산업계의 염원이었던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과 반도체 특별법 등도 대기 중이다. 전력망 특별법은 대규모 전력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전력망 인허가 절차를 앞당기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반도체 특별법은 관련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주 52시간 근무제를 제외할 수 있도록 한다.
나라 곳곳서 파열음, 4대 개혁도 불투명
예산안과 더불어 내년도 경제정책방향 역시 연기될 전망이다. 기재부는 매년 12월 중하순에 다음해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는데, 2025년 경제정책방향은 내년 1월에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의 경제정책 방향을 확인하고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인데 비상계엄 이후 기존 정책 기조에 보완·변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추진하던 의료·연금·교육·노동 등 4대 개혁 역시 좌초될 위기다. 특히 의료 개혁의 경우 윤 대통령이 계엄령에 '의료인을 처단하겠다'고 선언하며 그나마 진행 중이던 논의를 틀어막은 상황이다.
대한병원협회는 지난 5일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 특별위원회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의개특위는 이달 실손·비급여 제도 개선 방안을 담은 실행 방안을 공개할 계획이었다. 병협이 참여를 중단하면서 연내 발표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국민연금 개혁도 앞이 캄캄하다. 앞서 발표된 정부안은 연금액을 삭감하는 자동조정장치와 나이가 많을수록 보험료를 빨리 올리는 내용이 포함돼 불만이 큰 상황이다. 국민의 신뢰와 협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정부가 신임을 잃으며 사실상 추진 동력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