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방카슈랑스(은행에서 파는 보험) 25%룰'을 향후 2년간 50%까지 완화할 조짐에 비(非)금융지주 계열 중소형 생명보험사들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브랜드파워와 자본력을 갖춘 대형 보험사들의 공격적인 시장 지배력 확대에 안 그래도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방카슈랑스 규제마저 풀리면 생존 환경이 더 척박해질 거란 호소다.
25%룰은 은행마다 연간 신규 보험 판매액에서 특정 보험사의 비중이 25%를 넘을 수 없게하는 규칙으로 2003년 도입됐다. 대형 보험사나 금융지주 계열 보험사가 방카슈랑스 시장을 독점하는 것을 막고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주기 위함이다.
지난 4월 삼성화재가 방카슈랑스 철수 결정내린 게 금융당국이 25%룰 개정을 검토하는 시발점이 됐다. 현재 방카 시장에 진출해 있는 4개 손보사(현대해상·DB손해보험·KB손해보험·NH농협손해보험) 중 1곳만 더 중단해도 은행이 원천적으로 25%룰을 지킬 수 없는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해당사자인 생보업계 목소리는 배제됐다.
새 회계제도(IFRS17)상 저축성보험은 부채로 잡히는 데다, 손보사들은 실손보험 등 보장성보험을 방카슈랑스에서 판매할 수 없는 탓에 사업 유지 필요성이 떨어진다. 25%룰을 푼다고 손보사들이 방카슈랑스를 다시 찾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얘기다. 손보사 입법불비를 해소할 근본 대책이 아니다.
생보사는 입장이 다르다. 유동성 확보 및 운용자산 확대 차원에서 반드시 챙겨야 하는 사업이다. 20곳 이상이 방카슈랑스에 참여하고 있어 특정 생보사가 25%를 초과할 일이 거의 없다. 애초에 방카슈랑스는 상품설명이 까다로운 손해보험보다 예·적금 성격인 저축성보험을 팔기 용이해 생보사 점유율이 높은 채널이다. 지난해 생보사 초회보험료 중 62.7%가 방카슈랑스에서 나왔을 만큼 의존도가 높다.
이런 상황에서 손·생보를 가리지 않고 규제가 완화되면 피해를 보는 건 비은행계열, 그중에서도 중소형 생보사다. 금융지주 계열 생보사나 여력이 있는 대형 생보사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게 시간문제라서다. 금융지주 계열 생보사들도 "우리 회사에 유리하다"고 언급할 정도다.
중소형 생보사들은 이미 버거운 대형 법인보험대리점(GA)보다 몇백배 규모가 큰 은행에 우호적인 조치들이 계속 나오면 보험산업이 결국 은행에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은행만 더욱 비대해지고 결국 업종 간 불균형만 심화할 거란 걱정이다. 다소 극단적인 주장이지만 그만큼 절박한 심정을 털어 놓은 것이다.
20여년간 이어진 방카슈랑스 25% 룰을 손 볼 시점이 됐다는 당국 취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누구를 위한 제도개선인지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 소비자 선택권 확대라는 대의 뒤에 회사간 유불리가 극명히 갈리고 있다. 보험산업은 방카슈랑스 첫 도입 때보다 더 커졌고 훨씬 복잡해졌다. 지금보다 넓은 시선에서 충분히 검토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