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가 지난달 상장 보험사 최초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했다. 그간 삼성화재는 최대주주인 삼성생명과의 지배구조 문제로 자사주 매입 및 소각에 대해 다소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으나, 이번 밸류업 방안에는 자사주 비중 축소 계획이 담겼다.
삼성화재가 자사주를 소각하면 삼성생명의 지분율이 높아져 자회사로 편입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 만큼 삼성생명의 행보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는 지난달 31일 공시를 통해 보험사 최초로 밸류업 계획을 공개했다. 삼성화재는 지급여력(K-ICS·킥스) 비율과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밸류업 핵심지표로 선정했다. 킥스 비율은 220% 수준으로 관리목표를 설정하고 지속가능한 ROE 목표는 11~13%로 설정해 안정적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자사주 비중 5% 미만…이유는
삼성화재 밸류업 계획 중 눈에 띄는 부분은 오는 2028년까지 주주환원율을 50% 수준으로 확대하고 자사주 비중을 5% 미만으로 축소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삼성화재의 자사주 비중은 15.9%인데, 2028년에는 이를 5% 아래로 끌어내리겠다는 구상이다.
삼성화재가 자사주 소각 계획을 세운 것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이 배경으로 꼽힌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24일 '상장법인 자기주식 제도 개선을 위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의결하고 같은달 31일부터 시행했다. 개정 자본시장법 시행령에는 5% 이상 자사주를 보유한 상장사는 자사주 보유 현황·목적과 향후 처리계획을 적시한 보고서를 작성해 이사회 승인을 받아 공시해야 하는 등 규제가 강해지면서 삼성화재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4년간 균등소각을 가정하면 삼성화재는 매년 발행주식 총수의 2.5~3.0% 수준(보통주 136만주)을 소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소각규모와 시점 등 상세 실행 계획은 시장 상황 등에 따라 추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삼성화재가 자사주 소각 규모를 밝히면서 따라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화재 지분의 향방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삼성화재가 자사주를 소각하는 과정에서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의 지분율이 15%를 넘어서면 자회사로 편입해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보험업법에 따르면 보험사는 타 회사 발행주식의 15% 이상을 소유할 수 없다. 15%를 넘기면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자회사로 편입시켜야 한다. 자회사 편입 시 지분율에 따라 삼성생명 연결재무제표에 포함된다. 삼성화재가 자사주를 5%까지 소각하면 삼성생명의 지분율은 14.98%에서 16.93%로 상승하게 된다.
자회사 편입 시 삼성화재 실적이 지분율 만큼 삼성생명 실적에도 반영되면 삼성생명의 배당 규모가 커진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와 직접적으로 지분이 얽힌 삼성생명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해 초 연간 실적 컨퍼런스콜(IR) 당시 김준하 삼성화재 부사장(CFO)은 "자사주 소각의 경우 보험법상 삼성생명 자회사로 편입되는 이슈가 있어서 밸류업과는 또 다른 상황"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자회사 편입 or 지분 매각' 삼성생명 행보 주목
삼성생명 행보에 따라 삼성화재 밸류업에 대한 평가도 엇갈릴 전망이다. 우선 삼성생명이 삼성화재를 자회사로 편입할 경우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기대감이 동반될 수 있다.
안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자회사 편입은 삼성생명 연결재무제표 작성 및 이에 따른 실적과 주주환원 규모의 대폭 확대로 이어진다"면서 "삼성생명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44%에 달하고 자기주식도 10% 가량 보유 중인 점을 고려하면 (삼성화재를 자회사로 편입하는 것이) 유인이 더 큰 선택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생명으로의 자회사 편입 여부가 걸려있는 만큼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금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자회사 편입을 막기 위해 보유한 지분을 처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유한 삼성화재 지분을 소각이 아닌 시장에 처분 시 삼성화재 주가 상승에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
김도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화재가 삼성생명의) 자회사 편입 시 주식 소각 방해 요인이 소멸되므로 자사주의 신규 취득 및 소각의 여력이 확보된다"면서도 "삼성화재는 (자사주 소각보다는) 당분간 배당 중심의 주주환원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밝혔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유 자사주 소각의 배경이 법 개정에 의한 것을 고려하면 (삼성생명이) 자회사 편입을 원치 않을 경우 지분율을 15% 미만으로 유지하기 위해 삼성화재의 소각 일정에 맞춰 최대주주(삼성생명)가 보유 지분을 일부 매각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판단된다"며 "이 경우 매년 136만주의 소각에 대해 0.4%대 지분이 처분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삼성화재는 증권사 대상 콘퍼런스 콜에서 이번 밸류업 공시가 독립적으로 시행된 것임을 강조했다. 삼성생명의 경우 아직 밸류업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이달 20일 IR에서 자사 밸류업 방안과 함께 삼성화재 보유 주식에 대해 언급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화재의 지난해 2분기 IR에서 김준하 부사장은 "지난번 설명회 때 (자사주 매입·소각 시) 삼성생명 자회사 편입 이슈를 말씀드렸다"라며 "올해 초와 상황이 바뀐 부분은 전체적으로 생명이 가지고 있는 화재 주식, 화재가 보유한 자사주 또는 이런 부분들은 화재 지배구조 안정성 측면에서 지분들을 계속 유지하고 필요 시 확대까지 검토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밸류업 방안을 현재 검토 중에 있으며,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달 20일 예정인 2024년 실적발표 시 시장과 소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