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飛上 K5]①디자인 터닝포인트!

  • 2015.07.20(월) 16:49

2010년 1세대 'K5'로 중형차 시장에 돌풍
피터슈라이어 효과 톡톡..기아차 성장의 시작

기아차가 야심작을 선보였다. 지난 2010년 돌풍을 일으켰던 중형 세단 K5의 2세대 모델이다. 신형 K5에는 기아차의 모든 기술력과 디자인 철학이 함축돼 있다. 그런 만큼 기대가 크다. 최근 고전하고 있는 기아차로서는 신형 K5에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형 K5는 하반기 기아차의 성장을 이끌어야 할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지난 2010년 기아차 K5의 탄생에서부터 2세대 신형 K5의 출시까지의 과정과 그에 담긴 스토리, 향후 신형 K5의 역할 등을 짚어본다.[편집자]


기아차에게 'K5'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현대차그룹에 합병된 이후 옵티마, 로체 등 잇따라 중형세단을 선보였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RV 이미지가 강했던 탓에 기아차의 세단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국민 중형세단인 현대차의 쏘나타의 아성을 넘어서기에는 여러모로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기아차는 지난 2010년 'K5'를 선보이면서 그동안 소비자들이 가졌던 기아차의 세단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K5'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K5'의 성공은 현재 기아차의 'K시리즈'를 완성하는 기폭제가 됐다. 'K5'는 과거와의 단절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터닝포인트'였다.

◇ '피터 슈라이어'가 왔다

지난 2005년 기아차 사장에 오른 정의선 사장(현 현대차 부회장)은 고민에 휩싸였다. 실적은 계속 내리막 길이었다. 이렇다 할 히트 모델도 없었다. 성과를 내야하는 정 사장의 입장에서는 기아차의 현실이 막막하기만 했다. 기아차는 승합차 봉고와 소형 세단 프라이드 이후 히트작을 내놓지 못했다. 기아차의 시작이 트럭이었던 탓에 RV 이미지가 강했다.

정 사장은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기아차의 정체된 분위기를 쇄신하지 않는 한 지금의 부진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정 사장의 생각이었다. 그는 기아차의 약점부터 손 대기 시작했다. 바로 '디자인'이다. 그때까지 기아차는 기술 중심의 기업이었다. 그런만큼 디자인은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높아만 가는 소비자들의 눈을 따라갈 수 없었다.

 

▲ 정의선 당시 기아차 사장은 정체돼 있던 기아차에 활력을 불어넣기로 결정한다. 그 시작은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 중 한명인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하는 것이었다. 삼고초려 끝에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한 기아차는 그의 영입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디자인 기아'를 실현시키기 시작했다. 기아차에게 있어 피터 슈라이어의 합류는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정 사장의 기아차 체질개선 프로젝트는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디자인'을 최우선 순위에 두기로 했다. 그래야만 트렌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정 사장은 큰 결심을 한다.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인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 영입에 나섰다. '디자인 기아'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그가 절실했다.

피어 슈라이어는 아우디 TT, A4, A6 등을 디자인하며 아우디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폭스바겐에서는 5세대 골프와 제타, 파사트, 뉴 비틀의 디자인을 총괄했다. 그야말로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거물급 인사였다. 당시 업계에서는 정 사장과 기아차의 시도에 대해 코웃음을 쳤다.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가 기아차와 같은 이름 없는 업체로 옮길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지난 2006년 정 사장의 삼고초려 끝에 피터 슈라이어는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의 연구원들과 연구소 시설들을 둘러보고 계약서에 사인했다. 피터 슈라이어는 "나는 모험이 하고 싶었다. 벤츠, BMW, 아우디는 이미 성장한 회시지만 기아는 브랜드도 생소했다. 그래서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 '디자인 기아'가 시작되다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한 정의선 사장은 자신감을 얻었다. 정 사장은 본격적으로 기아차 개조 작업에 들어갔다. 그 시작이 '디자인 기아'다. 기술에 편중돼 있는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기술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의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디지안에 관한 한 피터 슈라이어에게 전권을 일임했다.

피터 슈라이어는 밋밋한 기아차의 디자인에 자신의 색깔일 입히기로 했다. 대표적인 것이 현재까지 기아차의 패밀리 룩을 구성하고 있는 '호랑이 코'다. 피터 슈라이어의 '호랑이 코'는 우연히 탄생됐다. 디자이너들과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의 모양에 대해 논의하던 중 동물을 형상화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피터 슈라이어는 이를 전격 수용했다. 그 대상은 호랑이였다.

 

▲ 피터 슈라이어는 호랑이 얼굴에서 착안한 일명 '호랑이코' 디자인을 통해 기아차 디자인에 통일성을 부여했다. 이때부터 기아차의 디자인은 '호랑이 코' 디자인을 전 라인업에 적용하며 패밀리룩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피터 슈라이어는 "호랑이의 얼굴을 보면서 코 부분에 시선이 갔고 코를 보니 눈이 라이트로, 귀가 사이드미러로 보였다"며 "그래서 코 부분을 자동차의 중심에 놓고 디자인했다. 그 위에 기아차의 엠블럼을 놓기가 좋았다"고 밝혔다. 호랑이는 한국인들에게는 상징적인 동물이다. 한국의 브랜드인 기아와 한국인에게 친근한 동물인 호랑이를 형상화한 디자인은 일종의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피터 슈라이어의 '호랑이 코'는 지난 2007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키(Kee)'라는 콘셉트카로 첫 선을 보였다. 이는 지난 2008년 로체 이노베이션에 처음으로 적용됐다. 이후 기아차는 세단 모델 뿐만 아니라 SUV 모델에도 '호랑이 코' 디자인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피터 슈라이어의 작품임을 보여주는 일종의 사인과도 같았다.

 

▲ 기아차가 내세운 '디자인 기아'는 기아차가 과거와 이별함과 동시에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을 알리는 슬로건이었다. 실제로 정의선 사장이 주도한 '디자인 기아' 캠페인 이후 기아차는 본격적인 성장에 돌입할 수 있었다.


피터 슈라이어의 디자인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0년 공전의 히트를 쳤던 'K5'다. 피터 슈라이어의 손길이 본격적으로 닿은 작품인 'K5'는 기존 기아차의 디자인과는 전혀 달랐다. 전면은 남성미와 카리스마가 강조됐고 측면은 스포츠카와 같은 역동성이, 후면은 세련되고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디자인 기아'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K5'는 지난 5년간 130여 만대가 판매됐다. 피터 슈라이어의 주도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하는 디자인과 성능을 갖추겠다는 꿈이 실현됐다. 'K5'는 기아차가 디자인에 눈을 뜨기 시작한 시발점이자 세단에서도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 골리앗을 이기다

지난 2010년 6월 말. 기아차 국내영업본부는 환호성을 질렀다. 월별 판매량 가집계 결과, 6월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된 신차 K5가 현대차의 대표 중형 세단 YF쏘나타의 판매량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쏘나타는 '국민 중형차'로 불릴만큼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넘어설 수 없는 벽이었다. 쏘나타는 지난 85년 첫 선을 보인 이래 당시 6세대 모델을 내놨을 정도로 전통의 강자였다.

'K5'의 히트는 마치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과 마찬가지였다. 'K5'의 판매량은 7월과 8월에도 YF쏘나타의 판매량을 제쳤다. 6월부터 3개월간 YF쏘나타를 앞서면서 국내 자동차 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비록 이후에는 YF쏘나타의 판매량을 넘어서지 못하며 '신차 효과'로 그쳤지만 'K5'의 등장은 분명 국내 중형차 시장에 센세이셔널한 일이었다.

기아차 고위 관계자는 "'K5'는 기아 브랜드가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자신감을 모두 보여준 사례였다"며 "당시에는 계약을 해도 차량 출고까지 한달 넘게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였다. 고객들이 대기 기간을 못 기다리고 타 브랜드로 옮겨가는 일도 비일비재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 자료:한국자동차산업협회

'K5'가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디자인 측면에서 YF쏘나타를 눌렀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야심차게 내왔던 6세대 YF쏘나타는 디자인 측면에서 호불호가 명확히 갈렸다. 그동안 유지해왔던 보수적인 디자인 콘셉트에서 벗어나 '플루이딕 스컬프쳐'라는 디자인 콘셉트를 들고 나오면서 지나치게 파격적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반면 'K5'는 공격적이고 개성을 담은 디자인이지만 원칙에 입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피터 슈라이어의 '직선의 단순함'에 입각한 디자인이었다. 구상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는 "불필요한 선을 줄이고 선의 각도나 방향 등을 통일시켜 시각적으로 안정감이 느껴지게 디자인 됐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완성도가 높은 디자인이었다.

'K5' 등장 이후 기아차는 'K라인업'을 완성하기로 하고 차급별 K시리즈를 선보였다. 2007년 준대형 세단인 'K7', 2012년에는 플래그십 세단 'K9'과 준중형 세단 'K3'를 내놨다. 준중형부터 대형까지 'K라인업'을 완성할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K5'였던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K5'는 기아차에게는 전환점이 된 특별한 모델"이라며 "기아차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