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새로운 것이 없다는 점이다. 기존 업계에서 내놨던 내용의 반복이거나 원론적인 수준의 대책에 그쳤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실현 가능성조차 의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정부의 대책에 일말의 기대를 가졌던 업계는 허탈하다는 반응 일색이다.
◇ 바뀐 것이 없다
정부의 이번 대책 발표 전 업계와 시장의 관심사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대우조선해양 처리 문제였고 또 다른 하나는 한진해운 사태 이후 해운산업 재편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책에 이 핵심 사안들은 배제됐거나 기존의 입장을 반복하는 데에 그쳤다.
우선 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서는 정상화 이후 추후에 매각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대우조선해양 매각은 지난 2008년에 무산된 이후꾸준히 제기돼왔던 문제다. 다만 정부가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공식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나선 점이 다르다면 달랐을 뿐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발표하기 전 업계가 진행해온 컨설팅 결과를 참고하겠다고 했다. 조선업계는 수억원을 들여 맥킨지에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에 대한 컨설팅을 맡겼지만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맥킨지의 중간 보고서가 나오자 대우조선해양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맥킨지는 현재의 '조선 빅3' 체제를 '빅2와 1중'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1중'은 대우조선해양을 뜻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 부문을 매각하고 몸집을 줄여 잘 하는 것에 집중해야한다는 것이 맥킨지의 생각이었다. 결국 대우조선해양의 재편을 거론한 셈이다.
이에 대우조선해양은 반발했다. 이 때문에 맥킨지 보고서는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야 했다. 최종적으로 나온 보고서의 결론은 기존 체제 유지였다. '사공'이 많았던 데다 컨설팅 비용을 부담한 업체들의 입김이 하나둘씩 들어가면서 결론은 '산'으로 갔다.
해운산업 대책은 더욱 기가 차다. 현재 국내 해운업계의 가장 큰 관심은 한진해운 사태 이후의 경쟁력 강화다. 국적 선사가 현대상선 밖에 없는 상황에서 향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이 담겨지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가 내놓은 6매짜리 자료에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담겼다. 그나마 맨 마지막 장은 담당자 연락처였다.
◇ 명확했던 한계
심각한 것은 정부의 이런 대책에 대한 업계와 시장의 반응이다. 업계와 시장에서는 애시당초 정부의 대책에 큰 관심도, 기대도 없었다. 이유는 명확하다. 정부가 현재의 조선업과 해운업이 처한 위기에 대해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도, 비전도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 대형 조선업체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어떤 획기적이고 기발한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며 "정부는 늘 뒷짐지고 있다.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대신 잘 못하면 혼날 줄 알아라'라는 스탠스에서 한발짝도 변한 것이 없다. 애초부터 컨설팅 결과를 참고하겠다고 나선 것 부터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조선업체 강화 대책에서 빅3를 유지시킨 것은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손실규모와 7000%에 달하는 부채비율을 감안했을때 대우조선해양은 정리대상이 맞지만 대우조선해양을 둘러싼 각종 역학관계 탓에 원칙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로 대우조선해양의 시중은행을 포함한 익스포저는 22조8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비중은 19조원이다. 따라서 대우조선해양이 정리 수순을 밟게 된다면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은 물론 수출입은행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미 채권단이 출자를 한 마당에 대우조선해양이 정리된다면 이에 대한 여론의 비난도 부담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시작부터 한계가 명확한 정부의 경쟁력 강화 방안이라는 것이 업계의 주된 의견이다. 여기에 컨설팅 보고서에 대한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정부의 대책안은 이미 힘이 빠져버럈다는 분석이다.
◇ 실현 가능성은 의문
이유야 어찌됐건 정부 대책의 큰 줄기 중 하나는 '지원'이다. 각종 금융 지원을 비롯해 규제 완화 등 다양한 지원책을 내놨다. 분명 업계 입장에서는 반길만한 일이지만 실제 반응은 시큰둥하다. 오히려 산업을 잘 이해하지 못한 정부의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의 조선업 경쟁력 강화 방안의 기본 전제는 업계 자율이다. 업체별로 유휴설비 매각, 인력감축, 비핵심 자산 정리 등이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점검하고 부실의 원인이 된 해양플랜트에 대해서는 업체간 저가 수주 경쟁을 막겠다는 생각이다. 결국 업계가 잘 하는지 지켜보겠다는 이야기다.
상황이 심각하다며 정부가 팔을 걷어붙인 지 10개월이 됐지만 눈에 띄는 성과나 변화가 없다는 점도 이번 정부의 발표에 대해 업계가 반응하지 않는 이유이자 근거다.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정부의 대책을 면밀히 살펴보면 정말로 조선업에 대해 알고서 이런 대책들을 마련했는지 의문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것이 신시장 개척을 위한 수리 전문 조선소 신설이다. 현재 국내 조선 빅 3는 수리 조선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다. 수리 조선소는 중국이나 싱가포르가 더욱 발달 돼있다. 항만 물동량이 많은 곳이어서다. 그만큼 수요가 있다. 하지만 국내는 그렇지 않다. 국내 수리 전문 조선소가 한 곳뿐인 이유다.
플랜트 설계 전문회사 설립도 정부가 공을 들인 대목이다. 하지만 이것도 속모르는 소리라는 것이 업계의 반응이다.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다는 얘기다. 플랜트 분야는 오랜시간동안 이어져 온 카르텔이 공고한 분야다. 해양 플랜트 발주시 소수의 설계 전문 회사들이 수주를 독점하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근본적이고 실현가능한 플랜트 설계부문 양성 방안을 보여주길 원한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대책은 업계들이 고민이라고,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내놓은 바람들을 정부가 짜깁기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면서 "이런 짜깁기 대책이 제대로 실현될 것이라고 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아마 대책을 내놓은 정부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