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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造船)의 몰락]③절실한 때 그들은 없었다

  • 2017.01.15(일) 15:38

업계 주도 고강도 구조조정‥정부는 뒷짐만
현실과 괴리된 대책 남발‥경쟁력 강화 절실

한국의 조선산업이 무너지고 있다. '세계 최고 조선 강국'의 타이틀을 내놓은 지는 한참 지났다. 경쟁 상대로조차 보지 않았던 중국에 밀렸다. 최근에는 우리가 제쳤던 일본에게도 뒤쳐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 탓이 크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선박 발주가 줄었다. 어설프게 손을 댔던 해양플랜트는 독(毒)이 됐다. 최고라는 자만심이 화(禍)를 불렀다. 지금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다. 한국 조선업의 원인과 현황, 정부의 구조조정 방향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


한국의 조선산업은 한창 구조조정 중이다. 이미 각 업체별 계획이 발표됐고 정부의 구조조정에 대한 큰 틀도 제시됐다. 업체들은 사활을 걸고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정부 방안의 핵심은 우선 업체들에게 자체적으로 구조조정을 맡기겠다는 생각이다. 정부는 큰 그림만 그려주고 그 틀 안에서 지원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정책 방향에 대해 업체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국, 일본과 같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라지는 않지만 적어도 무언가 명확하고 세밀한 지원책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두루뭉술한 대책만 내놨을 뿐 조선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 방안은 제시하지 못했다.

◇ 뜬구름만 잡았다


정부는 작년 10월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내놨다. 조선 산업의 부실을 털고 과감하게 정부가 지원에 나서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수년간 업황 부진에 신음하던 조선 산업에 정부가 직접 나서겠다고 밝힌 것에 큰 의의가 있었다는 평가다. 정작 당사자인 조선업계에서는 실망스럽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좀 더 명확하고 세밀한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했다.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기존에 이미 나왔던 내용들의 재탕이었다. 특히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에 대해 업계 자율에 맡긴다는 정부의 기본 방침에 대해서는 '해도 너무 한다'는 반응이었다.

업계가 기대한 것은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다. 한국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조선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와 수술을 원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출혈도 일정 부분 감내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동안 각 업체별로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것도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정부가 대책을 추진하기 용이하도록 조건을 만들어두자는 생각도 있었다.

▲ 정부는 작년 10월 조선·해운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직접 조선업과 해운업 구조조정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고 나섰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 정부의 구조조정에 안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정부는 한국의 조선 산업에 대해 제 3자적 시각을 유지했다.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 직접 '메스'를 드는 것이 아니라 업계가 '집도의'가 되고 정부는 그 뒤에서 수술을 지켜보는 역할만 하겠다고 나선 셈이 됐다. 정부는 업계의 컨설팅 결과를 구조조정 방안의 가이드 라인으로 삼았다. 업계의 의견을 듣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정부는 결국 이도저도 아닌 결과만 발표했다.

정부가 업계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수리 전문 조선소를 신설하겠다고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업계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손을 대지 않은 부분을 정부가 하겠다고 나섰다. 업계가 간절히 원했던 플랜트 설계 전문 회사 설립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대책만 담겼다. 업계가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다.

대형 조선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나몰라라 나서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면서도 "대책 내용에 대해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이건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단순히 숫자만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현장이, 현실이 얼마나 심각하고 어려운 상황인지는 파악해보고 대책을 고민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 뼈를 깎다

사실상 뜬구름만 잡은 정부의 대책 발표에 업계는 한숨만 내쉬고 있다. 변한 것은 없다. 지금껏 진행해왔던 구조조정을 계속 진행하는 것 이외에는 뚜렷한 대책도 없는 상황이다.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으로 기대했던 정부가 사실상 뒷짐을 지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획된 자체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는 수밖에 없다.

올해도 조선업체들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작년 6000명이 업계를 떠난데 이어 올해도 4000명 가량이 구조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체별로 진행하고 있는 각종 구조조정에도 더욱 속도를 낸다는 생각이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1조원 규모의 자구안 이행을 계획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작년 총 2조원 규모의 자구안을 이행했다. 현재 매물로 내놓은 하이투자증권 매각을 완료하고 현대아반시스, 풍력SPC 지분, 유휴 부동산 매각 등에 나설 예정이다. 아울러 오는 4월부터 사업부문 분사를 단행, 인력 감축에도 나선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올해 6000억원 규모의 자구안 이행에 나설 계획이다. 판교 R&D 센터와 거제삼성호텔 등을 매각한다. 또 내년까지 5000명의 인력을 구조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이사부터 과장까지 각각 임금의 100%에서 15% 가량을 반납키로 한 상태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1조5000역원 규모의 구조조정을 실시한다. 각종 부동산 매각 등을 통해 5000억원 가량의 유동성을 확보할 계획이다. 아울러 본사 인력도 작년 말 1만1200명 수준에서 올해 연말까지 8500명으로 줄일 예정이다.

◇ 긴 안목의 지원 절실

현재 각 업체별로 진행 중인 구조조정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나치게 강하게 압박하게 되면 조선 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인력 유출이다.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오랜 기간 업계에서 경력을 쌓은 전문 인력들이 대거 이탈하는 현상에 대한 우려다.

조선업은 산업 특성상 인력의 기술 수준이 중요하다. 한국의 조선산업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도 설비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인력 양성 덕분이었다. 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수십년간 업력을 쌓은 인력들이 일본이나 중국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 한국의 조선산업 경쟁력은 더욱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내 조선업체에서 구조조정 당한 인력들이 중국으로 건너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는 중국의 경우 한국에 비해 기술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큰 맹점이다. 따라서 만일 한국의 고급 인력들이 중국으로 대거 이동하게 되면 중국과의 격차가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고강도 구조조정이 진행되지 않으면 한국의 조선산업의 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업계가 가지고 있는 딜레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업계가 진행할 수 있는 최대한의 구조조정을 단행하되 정부가 인력 유출을 막을 방법을 마련해주길 바라고 있다. 아울러 각종 세제 혜택 등 제도적으로 구조조정의 충격을 완화해주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나서달라는 것은 기업이 하지 못하는 부분을 정책적으로 뒷받침 해달라는 것"이라면서 "정부가 좀 더 긴 안목으로 단기적인 효과를 내는 일시적인 지원보다는 궁극적으로 한국의 조선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마스터 플랜을 제시해주는 것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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