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조선(造船)의 몰락]①적은 내부에 있었다

  • 2017.01.11(수) 08:35

'조선 강국' 지위 반납‥생존까지 걱정
경기 침체·무분별한 투자가 재앙 불러

한국의 조선산업이 무너지고 있다. '세계 최고 조선 강국'의 타이틀을 내놓은 지는 한참 지났다. 경쟁 상대로조차 보지 않았던 중국에 밀렸다. 최근에는 우리가 제쳤던 일본에게도 뒤쳐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 탓이 크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선박 발주가 줄었다. 어설프게 손을 댔던 해양플랜트는 독(毒)이 됐다. 최고라는 자만심이 화(禍)를 불렀다. 지금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다. 한국 조선업의 원인과 현황, 정부의 구조조정 방향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


조선 산업은 한국 경제의 큰 버팀목이었다. 세계 최고의 건조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조선업계를 제패했다. 매년 이익은 크게 증가했다. 선주사들은 앞다퉈 한국 조선업체들에게 배를 맡겼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호박이 넝쿨째 들어왔다. 한국의 조선 산업은 그렇게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상황이 변했다. 선박 발주가 급감했다. 기간도 길었다. 위기의식에 휩싸인 한국 조선업체들은 해양플랜트에 뛰어들었다. 고가(高價)인 만큼 이익이 많이 날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호황기때 마구잡이로 벌여놓은 사업들은 모두 부메랑이 됐다. 안일함과 자만심이 불러온 참사였다.

◇ 한때는 '1등'이었다


한국 조선 산업이 글로벌 톱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다. 당시 세계 최고의 조선 강국은 일본이었다. 70년대 일본의 글로벌 조선 시장 점유율은 55%에 달했다. 독보적인 건조 기술과 생산 능력으로 글로벌 조선 업계를 평정했다. '조선(造船)=일본'이라는 등식이 각인됐던 때다.

하지만 일본의 조선 산업은 오일쇼크 이후 급격하게 무너졌다. 추락하는 조선 산업을 구조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구조조정에 나섰다. 80년대 들어 일본은 두 차례의 정부주도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생산 시설 및 능력을 대폭 줄였다. 한국은 이 틈을 노렸다. 마침 노사분규가 안정화되던 시기였다. 일본과 반대로 생산 시설과 능력을 늘렸다.

▲ 단위:억원.

때마침 조선 호황기가 다가왔다. 선박에 대한 수요는 많은데 배를 지을 곳이 부족했다. 한국의 조선 산업은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급성장했다.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 조선 강국'이 됐다. 조선 강국으로 올라선 한국은 파죽지세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는 대항마가 없을 정도였다.

실적이 이를 증명한다. 국내 조선 빅3의 연간 영업이익은 서서히 증가해 2010년에는 조선 빅3 모두 1조원을 돌파했다. 조선업 특성상 2010년 영업이익은 2007년에서 2008년 사이에 수주한 물량들이 실적에 반영된 것들이다. 영업이익 그래프가 계속 우상향했다는 것은 그만큼 2000년대 초중반에 수주 물량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조선산업이 강점을 보인 것은 주로 상선 부문이다. 그 중에서도 컨테이너선 등이 주력이었다. 여기에 LNG 등 고부가가치 선박에 대한 기술을 갖추면서 한국 조선업은 승승장구했다. 물론 당시에도 중국 등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손쉬운 벌크선 위주라 신경쓰지 않았다. 존재감 없던 일본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 날개 없는 추락의 이유

영원한 것은 없었다. 한국의 조선 산업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2009년부터 중국이 조금씩 치고올라오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에도 수주잔량 등에서는 여전히 한국이 우위였다. 중국은 한국이 세계 1위 자리에 도취돼 있을 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서서히 한국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마침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때였다. 조선업은 대표적인 경기 민감 업종이다. 리먼 사태는 2008년에 일어났지만 당장 그 당시 실적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선박은 수주 이후 2~3년 뒤에 인도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실적에 반영되는 것은 훗날이다. 이 때문에 국내 조선 빅3의 실적은 그때만해도 견조했다. 그러나 이것은 함정이었다.

▲ 선박 발주 감소에 따른 일감 부족 현상을 메우기 위해 국내 조선업체들은 해양플랜트 수주에 나섰다. 기술도, 경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선박 건조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무분별하게 수주전에 뛰어들었고 이는 결국 한국 조선 산업에 큰 재앙을 가져왔다.

실적 그래프에서도 나타나듯 조선 빅3의 실적은 2011년을 기점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리먼 사태 이후 3년이 지난 시점이다. 3년전에 수주한 물량이 인도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먼 사태로 발주가 줄고 수주가 급감하는 현상이 드디어 나타나기 시작한 셈이다. 한국 조선업체들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미 중국은 자국 물량을 바탕으로 한국을 제친 상황이었다.

우습게 봤던 중국에게 추월당한 한국은 마지막 자존심을 내세웠다. 양(量)에서는 중국이 앞설지 몰라도 질(質)적인 측면에서는 한국이 한참 앞선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 결과물이 해양플랜트 대규모 수주다. 해양플랜트는 당시 발주가 끊긴 조선 시장에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고부가가치 제품인 만큼 수익률도 높을 것으로 판단했다. 조선 빅3는 상선 발주 감소를 해소하기 위해 무작정 해양플랜트에 뛰어들었다.

한동안 끊겼던 수주 소식이 다시 전해졌다. 액수도 조(兆) 단위였다. 한국의 조선산업은 들떴다. 중국의 추월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아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해양플랜트에 대한 기술도, 경험도 없었던 국내 조선 빅3는 실제 건조 과정에서 비싼 수업료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해양 플랜트 산업에 대한 몰이해는 한국 조선산업에 대재앙을 몰고 왔다.

◇ 경기 침체 탓만은 아니다


한국 조선산업 몰락의 원인으로 흔히들 글로벌 경기 침체를 꼽는다. 맞는 이야기다. 경기 민감업종인 만큼 리먼 사태 이후 이어진 글로벌 경기 침체는 조선 산업 전반을 무너뜨린 원인이다. 경기가 위축되면 국가간 물동량 이동이 줄어든다. 물동량 이동의 수단이었던 선박의 수요도 감소한다. 이미 발주해둔 선박은 제때 인도돼도 할 일이 없다. 공급 과잉의 시작이다.

하지만 한국 조선 산업의 몰락 원인이 글로벌 경기 침체에만 있다고 보는 것은 단편적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 와중에도 정부와 업계가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면 충분히 버텨낼 수 있다. 과거 우리가 제쳤던 일본이 최근 다시 부상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 조선업 호황기 시절 조선 빅3는 너나할것 없이 풍력발전 등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진출했다. 명확한 분석과 전망 없이 뛰어들었던 사업에서 조선 빅3는 결국 쓴 맛만 보고 물러섰다. 조선업의 성공이 가져다 준 자신감은 어느새 자만심과 안일함이 됐고 이것이 국내 조선 산업을 좀먹은 원인 중 하나라고 보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면 국내 조선업체들은 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을까. 경기 침체라는 외적인 요인 외에 내부적인 요인도 있다. 불명확한 전망에 근거한 무리한 투자가 원인이다. 과거 조선업 호황기 시절 국내 조선업체들이 잇따라 투자했던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사업들이 대표적이다. 업체들은 당시 하나같이 미래 먹거리 확보 차원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었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참담하다.

국내 조선업체들이 이렇게 무분별하게 나선 데에는 조선업에서의 성공이 밑바탕이 됐다. 세계 최고라는 자신감에 휩싸여 구조가 유사하다고 판단한 신사업에 무작정 뛰어든 결과다. 최근의 상황은 당시 국내 조선업체들이 가졌던 자신감이 결국 자만심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업황 부진이 지속되자 업체들은 과거 장밋빛 전망을 내세우며 뛰어들었던 사업들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에 나섰다. 수익은 커녕 빈손으로 물러났다. 한 대형 조선업체 관계자는 "당시 우리 업계는 최고라는 자아도취에 빠져있었다"며 "제대로된 분석과 판단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마치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손만 대면 모두 성공할 것으로 믿었다. 지금와서 보면 참 어리석었다"고 토로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