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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디스플레이의 기억…구글의 유혹, 횡재수냐 덜컥수냐

  • 2017.04.12(수) 19:36

구글, 1조규모 플렉서블 OLED 장기공급 '러브콜'
글로벌 거래선 확보 장점에도 '발 묶일까' 고민

'3분기 영업손실 4920억원'

2011년 10월은 LG디스플레이에 악몽과도 같은 시기였다. LG디스플레이는 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인 5000억원 가까운 영업손실을 발표했다. 실적발표가 이뤄진 날 권영수 당시 사장(현 LG유플러스 부회장)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권 사장은 2007년 취임 후 매분기 실적발표 때 기자들과 만나 간담회를 했는데 이날은 예외였다.

액정표시장치(LCD) 패널가격이 제조원가에도 못미칠 수준으로 떨어진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달러-원 환율마저 급등했기 때문이다. 해외매출비중이 높은 LG디스플레이의 특성상 환율이 상승하면 수혜를 입어야하는데 막대한 손실이 난 것은 애플에게 받은 약 1조원 규모의 선수금 영향이 컸다.


◇ '1조원 대박'의 부메랑 

앞서 LG디스플레이는 2009년 1월과 이듬해 4월과 12월 세차례에 걸쳐 총 8300만달러(2010년말 기준 9453억원)의 선수금을 받고 애플에 아이패드와 아이폰용 LCD 패널을 5년간 납품하기로 했다. 외상으로 제품을 가져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미리 돈을 주겠다는데 납품업체 입장에선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 돈으로 공장을 증설하면 더 많은 매출을 올릴 기회가 생긴다.  

더구나 선수금은 부채로 잡히지만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되는 한마디로 '착한 부채'다. 만약 LG디스플레이가 설비 증설에 필요한 1조원을 외부에서 빌렸다면 매년 이자비용으로만 500억원(당시 5년만기 AA등급 회사채 금리 가정)을 물어야 한다.

문제는 선수금이 외화(달러)였다는 점이다. LG디스플레이가 최악의 분기실적을 기록한 2011년 3분기는 유럽의 재정위기로 달러-원 환율이 한달새 100원 이상 널뛰던 때다. 예를 들어 1달러짜리 외화부채를 갚는데 기존에는 1000원이면 됐다면 환율상승으로 1100원이 되면서 100원만큼 손실(외화환산손실)로 인식해야 했다는 얘기다.

당시엔 회계기준이 지금과 달랐던 점도 LG디스플레이가 5000억원 가까운 영업손실을 기록한 배경이었다. 원래 환율변동에 따른 손익은 영업외 비용으로 처리하는 항목이다. 하지만 국제회계기준 도입 초기라 LG디스플레이는 이 같은 외화환산손실을 판매관리비 등과 동일하게 영업비용으로 처리했다.

지금 같으면 영업외비용으로 처리했을 사안을 영업비용에 포함시키다보니 회계적 착시가 발생한 것이다. 그 결과 LG디스플레이는 2012년 한해동안 무려 1조25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창사 이래 가장 큰 폭의 적자다.

◇ 이번엔 구글의 러브콜

그 때로부터 5년여가 흐른 지금, LG디스플레이가 또다시 '착한 부채'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이번엔 구글이 선수금을 줄테니 차세대 스마트폰에 탑재할 플렉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공급해줄 수 있겠냐고 문의해왔다. 여러 언론에서 "구글이 LG디스플레이에 1조원 규모의 설비투자 의향을 표명했다"고 보도한 바로 그 사안이다.

증권가의 관심은 뜨겁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양사의 OLED 협력이 성사된다면 이는 전략적 제휴관계를 넘어 궁극적인 윈윈전략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플렉서블 OLED는 플라스틱 기판을 사용해 구부리거나 휘게하는 등 다양한 변형이 가능한 장점이 있는 제품이다. 유리기판으로 만드는 LCD와 달리 별도의 광원(光原·백라이트유닛)이 필요 없고 얇고 가벼워 디자인을 중시하는 최근의 스마트폰 흐름에 적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삼성디스플레이가 플렉서블 OLED 시장의 96%를 차지하며 독주하고 있는 가운데 LG디스플레이도 생산라인을 확충하며 시장확대에 대비하고 있다. 구글은 공급물량이 달리는 플렉서블 OLED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고 LG디스플레이에 1조원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의 협력관계가 지속되면 가상현실(VR), 스마트카 등 구글의 전략 신제품 시장에서 LG디스플레이가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확정된 사항은 없다"면서도 "여러 고객사들의 관심이 확대되고 있는 건 맞다"고 말했다.

◇ 머리 싸맨 LG디스플레이

남은 건 LG디스플레이가 구글의 제안을 수락할 지에 모아진다. 1조원이라는 돈을 미리 받는 건 좋지만 그 못지 않게 치러야할 대가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선수금은 미래의 매출을 앞당겨 실현한 것이나 다름없다. 제품이 안팔리는 상황이라면 미리 선수금을 받은 걸 다행으로 여길 수 있지만, 반대로 제품값이 치솟는 국면에선 미리 돈 받은 걸 후회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다른 곳에 팔았다면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애플로부터 1조원을 받을 때와 비교하면 시장금리가 뚝 떨어진 것도 고려사항이다. 만약 현 시점에서 5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한다면 2%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과거엔 비싼 조달비용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그 부담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얘기다.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원가상승 등의 부담을 제품가격에 전가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도 약점으로 거론된다. 업계 관계자는 "구글은 미리 돈을 주되 낮은 마진율로 제품을 공급해달라는 요구를 할 것"이라며 "(LG디스플레이 입장에선) 장기간 발이 묶이는 걸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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