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 삼성전자·SK하이닉스·LG디스플레이·원익IPS·주성엔지니어링 등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모임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반도체·디스플레이업계의 고충을 직접 듣고 투자확대와 일자리 창출, 상생협력을 당부하려고 마련한 자리다. 반도체·디스플레이업계는 정부 방침에 호응해 앞으로 7년간 약 52조원을 국내에 투자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 지난 18일 서울 켄싱턴호텔에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주재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업계 간담회가 열렸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
문제는 엉뚱한데서 불거졌다. 다음날부터 LG디스플레이 주가가 곤두박질하기 시작했다. 18일 3만4000원이던 이 회사 주가는 26일 3만500원으로 10.3% 떨어졌다. 불과 일주일만에 기업가치의 10분의 1이 증발한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8일 모임에서 백 장관은 "국내 기업들이 중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라고 안전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며 "경쟁국으로 기술·인력 유출에도 각별히 신경써달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사드배치 논란으로 껄끄러워진 한중 관계 등을 고려해 정부가 국내 기업의 중국 공장 건설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해석됐다.
현행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은 민간기업이라도 D램과 낸드플래시, OLED 등 국가핵심기술을 수출할 땐 산업부 장관에게 사전 신고하거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곧 해외에 공장을 짓고 싶어도 정부 허락없이는 지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지난 7월 중국 광저우에 8.5세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LG디스플레이에 비상이 걸렸다. 이 회사는 광저우 지방정부와 손잡고 초기 자본금 2조6000억원의 신규 합작법인을 설립키로 했다. LG디스플레이가 70%, 광저우 지방정부가 30%를 댄다. 추가로 필요한 투자금은 LG디스플레이가 중국 국영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각각 중국 시안과 우시 공장에 추가투자를 계획 중이지만 이미 가동 중인 공장을 증설하는 내용이라 신규공장을 세워 진출하려는 LG디스플레이와는 차이가 있다. 더구나 LG디스플레이의 OLED는 정부의 연구개발 자금이 투입된 기술이라 해외에 공장을 지으려면 산업부 장관의 승인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산업부는 지난 7월말 LG디스플레이로부터 승인 요청을 받고도 두달 가량을 묵혀뒀다. 보통 두달, 늦어도 석달이면 승인 결과가 나오는 것에 견주면 유독 굼떴다. 산업기술유출방지법 시행령에 따르면 산업부는 국가핵심기술 수출에 대한 승인 신청을 받으면 그 결과를 45일내 서면으로 알려줘야한다.
실제 산업부는 이달에서야 별도의 소위원회를 꾸린 뒤 그 논의결과를 보고 승인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소위의 활동은 '45일내 서면통보'라는 기간제한에 포함되지 않는다. 정부 의중에 따라 승인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LG디스플레이 주가가 연거푸 하락하는 것도 '정부의 승인 지연→투자 차질→경쟁력 약화'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LG디스플레이의 중국 공장 건설이 무산될 경우 투자금과 원가경쟁력 확보에서 힘이 빠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중국 디스플레이업체들을 따돌리려면 앞선 기술로 하루라도 빨리 시장을 선점하는 게 중요하다"며 "글로벌 제조업체와 가까운 지리적 입지와 현지 지방정부의 지원, 자본시장 접근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인데 자칫 투자 타이밍을 놓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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