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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삼성' 세운 이건희, 지다

  • 2020.10.25(일) 16:22

1942.1.9 ~ 2020.10.25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별세

이건희 일러스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김용민 기자

"선친은 사업 성공의 요체로 운(運), 근(根), 둔(鈍)의 세 가지를 꼽으셨다. 여기에 내 나름의 해석을 보탠다면 운이란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데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운의 이면에는 남모를 고뇌와 노력이 숨어있다. 근이란 고객의 신뢰를 얻어내기 위한 끈기와 집녑을 의미하고, 둔은 잔꾀를 부리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이건희 지음, 동아일보사, 1997년

한국 기업 삼성을 '세계의 삼성'으로 키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오전 영면에 들었다. 향년 78세(1942~2020).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이사장이 있다.

이 회장은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6년 반 가까이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투병 기간 자가호흡은 했지만 인지능력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은 이날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권과 경제계의 대대적인 조문 행렬이 예상된다. 명실상부 '경제대통령'이었던 그다.

이 회장은 1942년 1월 대구에서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손위로 고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고 이맹희 전 CJ그룹 명예회장, 고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 이숙희 씨, 이순희 씨, 이덕희 씨가 있고 손아래에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있다.

이 회장은 그의 선친인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1987년 11월 별세하자 그 다음달 삼성그룹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그의 나이 45세였다. 애초 장남이 후계자로 내정돼 있었지만 장·차남이 당시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 그룹 비리에 대한 탄원 등으로 후계 구도에서 멀어지며 3남인 그가 결국 후계자로 낙점됐다.

2013년 10월4일 오후, 이건희 삼성 회장이 35일간의 해외출장을 마치고 서울 김포공항 국제선 입국장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부를 대물림한 창업 2세대 경영자였다. 하지만 물려받은 삼성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게 그의 가장 큰 공(功)이다. 창업주보다 더 후한 평가를 받는 드문 2세대 경영인이다. 그가 에세이집에 쓴 대로,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데 성공했음을 의미하는 '운(運)'을 틔우기 위해 고뇌와 노력을 쏟아부은 그였고, 또 그것을 제대로 성공시켰다. 그 결과물이 지금의 삼성이다.

기업인으로서의 공적은 숫자로 나타난다. 취임한 1987년 10조원이 채 못되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2018년 기준 386조원을 넘기면서 39배 늘어났다. 같은 기간 그룹 자산은 10조원에서 878조3000억원으로 약 88배, 그룹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 커졌다. 또 취임 당시 10만명이던 삼성의 임직원 수는 52만명으로, 계열사는 상장사 16개를 포함해 59개로 증가했다.

삼성이라는 이름도 그가 회장에 오를 당시에는 개발도상국의 여러 재벌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 정상 수준의 이름값을 인정받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전문업체인 인터브랜드가 꼽은 '2020년 최고 글로벌 브랜드'에서 삼성전자는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에 이은 5위에 올랐다. 브랜드 가치만 623억달러(약 71조원)로 측정됐다.

뼛속까지 사업가였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라는 말로 상징되는 1993년 '신경영 선언'이 지금의 삼성을 있게 한 분수령이었다. 당시 이 회장은 세탁기 뚜껑이 불량인데도 작업자가 이를 태연히 칼로 깎아 조립하는 장면을 사내방송으로 보고 불같이 화를 냈고, 결국 세계 수위로 도약하는 전기를 만들어 냈다.

삼성전자를 세계 기업으로 키운 것도 그다. 반도체 사업은 선친이 처음 시작했지만 이 회장이 그룹 회장을 맡으면서 세계 수위권에 올렸다. 2001년 4기가 D램, 2007년 64기가비트(Gb) 낸드플래시, 2010년 30나노급 4기가 D램 등의 개발이 모두 세계 최초였다. 현재 삼성전자는 D램 등 메모리반도체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TV 등 20개 품목을 시장 점유율 세계 1위에 올려두고 있다.

가장 성공한 기업인이지만 아픔도 적잖았다. 형제 중 장남인 이맹희 회장, 차녀인 이숙희 여사(구자학 아워홈 회장 부인) 등과는 상속 문제로 법정 다툼까지 겪었다. 또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아야 했으며,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되자 2008년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을 발표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2014년 1월9일 오후, 73세 생일을 맞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과 함께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신년 사장단 만찬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이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재계·체육계 건의로 사면된 이 회장은 2010년 3월 삼성전자 회장으로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그 뒤로는 조직 재정비를 하는 한편,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 재배구조 개편작업 등에 대한 계획을 정리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병상에 들기 넉달 전인 2014년 1월, 그는 자신의 73번째 생일을 맞아 사장단과 신년만찬을 했다.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부인 홍라희 전 관장과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손을 잡고 밝게 웃으며 플래시를 받았다. 그게 마지막 공개석상이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은 "병상에서 일어나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만을 기다렸는데, 이렇게 황망히 떠나시니 슬픔과 충격을 주체할 길이 없다"며 이 회장을 추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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