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지난 3분기에 영업이익 흑자를 지켜낸 것은 이번에도 화물 덕이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전세계 하늘길이 끊긴 상황 속에서 화물은 여객의 빈자리를 채우며 2개 분기 연속 흑자를 이끌었다. 전세계 항공업계가 조 단위 적자를 내는 가운데 대한항공의 위기 대처능력이 한 번 더 입증된 것이다.
하지만 높아진 시장의 눈높이는 맞추지 못했다. 세계 항공사들이 돈 되는 화물 사업에 몰리면서 화물 운임이 떨어졌고, 이익 규모는 쪼그라들었다. 변수도 있었다. 호텔을 운영하는 미국 자회사에서 3000억원이 넘는 손상차손(비용)이 발생한 탓에 대한항공은 대규모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관건은 장기화되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대한항공이 언제까지 버틸수 있느냐다. 증권업계에선 올해 4분기 화물이 계절적 성수기를 맞으면서 대한항공이 인력 구조조정없이도 코로나19 위기를 버틸 체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화물 운임 따라 떨어진 영업이익
대한항공은 지난 3분기 별도재무제표 기준 영업이익이 76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94% 감소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1조5508억원으로 53% 줄었다. 직전분기와 비교해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8.3%, 94.9% 감소했다.
'숫자'만 보면 형편없어 보이지만 '여건'을 보면 선방한 실적이다.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업계가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 속에서도 대한항공은 두 분기 연속 흑자를 유지했다. 여객의 빈자리를 화물로 채우며 재빠르게 위기에 대응한 덕분이다.
실제로 지난 3분기 여객부문 매출은 2729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87% 급감했다. 반면 화물부문 매출은 1조163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59% 증가했다. 화물 매출이 여객보다 4배 가까이 많은 기형적인 구조로 코로나19 위기를 버티고 있는 셈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코로나19 위기에 전세계 주요 항공사들이 조 단위 적자를 내는 가운데 대한항공은 두 분기 연속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2분기와 같은 '어닝 서프라이즈'는 없었다. 직전 분기 대한항공은 대규모 적자를 낼 것이란 전망을 뒤엎고 오히려 1485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며 전년동기 대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이 같은 호실적에 시장의 기대치는 높아졌지만 이번 분기에 '깜짝 실적'은 나오지 않았다.
시장 기대치를 맞추지 못한 것은 하반기 들어 화물 운임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항공화물의 운임은 직전분기보다 21.9% 떨어졌다. 전세계 항공사들이 화물 운송 사업에 뛰어들면서다. 여기에 지난 3분기 연료비는 2286억원으로 직전분기보다 32.8% 늘며 비용 부담이 커졌다.
◇ 미국 호텔 부실화 여파에 3695억 순손실
'구멍'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생겼다. 대한항공이 지분 100%를 보유한 미국 호텔 자회사 HIC(한진인터내셔널)에서 3000억원의 손상차손이 발생했다. 손상차손은 자산의 가치가 하락한 만큼을 비용(손실)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HIC가 미국에서 운영중인 컨벤션 호텔 '윌셔그랜드센터'가 코로나19 탓에 실적이 악화되면서 자산가치가 뚝 떨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대한항공은 지난 3분기 당기순손실 3695억원을 냈다.
대한항공은 지난 9월 유동성 위기에 몰린 HIC에 9억5000만달러(1조1215억원)를 빌려주기도 했다. HIC가 호텔 건설 과정에서 빌린 대출금 9억달러의 리파이낸싱(재융자)에 실패하면서 대한항공이 직접 돈을 빌려줬다. 대한항공은 현재 HIC 지분 매각을 추진중인데, 제값을 받고 팔 수 있을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관심은 대한항공이 길어지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다. 당장 오는 4분기 전망은 밝다. 계절적 성수기로 화물 운임이 반등할 것으로 기대돼서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오는 4분기 화물 실적 증가로 영업이익 1064억원을 전망한다"며 "인력·기재 구조조정 없이 코로나 국면에서 버틸 체력을 확보했다"고 분석했다.
황여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대한항공은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 화물부문 호조로 코로나19의 종식이 예상되는 2022년까지 버틸 체력을 가졌다"며 "하지만 부채비율은 736.8%로 여전히 취약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