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이면 두산그룹이 재무구조 개선계획(자구안)을 추진한 지 1년을 맞는다. 두산그룹은 채권단으로부터 3조원을 지원 받는 대가로 뼈를 깎는 자구안을 약속했다. 예상보다 자구안의 규모는 컸고, 이행 속도는 빨랐다. 채권단과 약속한 자구안으로 알려진 '3년 내에 3조원 확보'를 두산그룹이 조기에 이행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두산중공업, 빠르게 2조 확보
24일 업계에 따르면 작년 4월 두산그룹이 채권단에 자구안을 제출한 이후 지주사인 ㈜두산이 확보한 현금은 1조5593억원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두산이 외부에 매각한 두산타워 8000억원, 네오플럭스 711억원, 모트롤 4500억원, 두산솔루스 2382억원 등이다.
㈜두산은 알짜 자산을 팔아 확보한 현금으로 계열사 지원에 나섰다. 두산중공업 유상증자 4352억원, 두산큐벡스 유상증자 367억원 등이다. 나머지 1조원 가량은 ㈜두산의 재무구조 개선과 신사업 투자에 쓰인 것으로 관측된다.
자구안 이행의 주체이자 핵심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은 작년 4월 이후 1조4085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한 것으로 추산된다. 작년 7월 클럽모우CC를 1850억원에 팔았고 작년 12월 유상증자를 통해 1조2235억원을 끌어들였다. ㈜두산이 출자한 4352억원 외에 다른 주주로부터 7910억원을 투자받은 것이다.
여기에 두산중공업은 작년 11월 박정원 두산 회장 등 오너가가 보유한 두산퓨얼셀 주식(1276만3557주)을 증여받았다. 지난 23일 종가로 6235억원에 이르는 주식이다. 작년 4월 이후 두산중공업이 현금 1조4085억원과 주식 6235억원 등 총 2조원이 넘는 자산을 확보한 것이다.
이는 채권단과의 약속을 뛰어넘는 속도다. 작년 4월 채권단으로부터 3조원을 지원받은 두산중공업은 3년 이내에 3조원의 유동성을 확보하겠다는 자구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구안대로라면 1년 만에 두산중공업이 3분의 2가량의 자구안을 이행한 셈이다.
자구안은 올해 중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두산중공업이 보유중인 두산인프라코어 지분 34.97%를 현대중공업지주 컨소시엄에 8500억원에 매각하는 본계약을 체결하면서다. 올해 중에 매각이 마무리되면 두산중공업은 채권단과 약속한 유동성 목표 3조원을 거의 채울 수 있게 된다. 관련기사☞두산인프라코어 16년…통째 넘어가 잘라 팔렸다
◇ 남은 과제
올해 들어선 그룹 내 지배구조와 사업구조를 동시에 개편하는 움직임도 이뤄지고 있다. ㈜두산이 보유한 알짜 자산을 계열사로 이동시키는 작업이다.
최근 ㈜두산은 5442억원 규모 두산퓨얼셀 주식 전량을 두산중공업에 현물출자하기로 결정했다. 두산퓨얼셀 주식과 두산중공업 주식을 맞바꾸는 것이다. 두산중공업은 작년 11월 오너가로부터 증여받은 주식과 함께 이번 현물출자로 두산퓨얼셀 지분 30.3%를 확보하게 됐다. 이와 함께 이번달 초 ㈜두산은 지게차 사업부문(두산머티리얼핸들링솔루션)을 물적 분할하고, 두산머티리얼핸들링솔루션을 두산밥캣에 7500억원에 매각키로 결정했다.
향후 두산인프라코어가 매각되더라도 현재 두산인프라코어가 보유한 두산밥캣은 그룹내에 그대로 남게 되는데, 이 두산밥캣 지분도 두산중공업으로 넘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두산중공업이 두산퓨얼셀, 두산밥캣 등 알짜 자회사를 거느리게 되는 것이다.
꾸물거리지 않고 자구안을 이행한 두산그룹의 마지막 과제는 두산중공업의 영업 정상화다. 지난해 두산중공업의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1541억원으로 2019년보다 85.7% 급감했다. 당기순손실은 8384억원으로 손실폭이 대폭 커졌다. 회사 측은 지난해 실적이 바닥을 찍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정부에서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강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발주가 이어지면 경영여건이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두산퓨얼셀의 수소산업 등과 시너지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