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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차' K9, '영앤리치'도 타고 싶을까?

  • 2021.06.30(수) 13:17

[차알못 시승기]
중후한 디자인-묵직한 주행감-최첨단 기술
애매한 수요층 포지셔닝…'K'에 묶인 한계

기아의 플래그십 세단 '더 뉴 K9'을 지난 28일 시승했다. 플래그십은 선두에서 함대를 이끄는 군함이란 뜻으로 소비재 업계에선 최고급 기종을 뜻한다. 이날 시승한 모델(3.3 터보 가솔린 마스터즈베스트셀렉션2)의 가격은 9000만원에 가깝다. 제품 가격이 비싸단 것은 고객의 기대치가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까다로운 잣대로 눈을 부릅뜨고 K9을 들여다봤다.

기아 K9 / 사진 = 회사 제공

K9의 외관은 비싼 가격에 비하면 소박해 보였다. 플래그십 세단의 중심을 잡고 있는 대형 라디에이터 그릴이 눈에 띄는 정도였다. 이번 모델은 2018년 출시한 2세대 K9의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차종이다. 부분변경을 할 때 디자인 면에서 기존 모델과 다른 느낌을 줘야 한다는 강박증이 느껴지지 않아 오히려 좋았다. 오래 타도 질리지 않을 중후함이었다.

단순한 디자인의 힘은 내부 공간으로 이어졌다. 시트 가죽은 퀼팅(누빔)으로 처리됐고 진짜 목제(리얼 우드) 소재가 대시보드에 적용됐다. 스위스 시계 브랜드 '모리스 라크로와(Maurice Lacroix)'의 아날로그 시계가 중후한 실내 디자인의 중심을 잡고 있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시동을 거니 묵직한 플래그십 세단이 미끄러졌다. 묵직했지만 둔하진 않았다. 하체가 탄탄한 운동선수 같은 안정감이었다.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 G80보다 묵직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시승을 끝내고 중량을 비교해보니 K9이 G80보다 180kg가량 더 무거웠다.

고속도로로 차를 올려 액셀을 밟자 고개가 살짝 뒤로 젖혀졌다. 차체가 생각보다 쉽게 튕겨 나가서다. 배기량 3342cc의 터보 가솔린 엔진이 만들어낸 순간 가속력이었다. 액셀을 깊게 밟았다고 엔진에서 더 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고속주행에서도 실내 정숙성이 유지되는 것이다. 3.3 터보 가솔린 엔진이 역동적인 운전의 재미를 준다는 회사 측의 설명에 수긍이 갔다.

서울을 벗어나자 소나기가 쏟아졌는데 빗길에서 K9의 주행감은 더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빗줄기에 따라 와이퍼의 움직이는 속도를 조절하는 오토 와이퍼 기능도 다른 차종보다 똑똑해 보였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K9은 플래그십 세단답게 현재 적용할 수 있는 모든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이 적용됐다.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 고속도로 주행 보조2(HDA2), 다중 충돌방지 자동 제동 시스템(MCB) 등이다. 

특히 세계 최초로 도입된 전방 예측 변속 시스템(PGS)이 눈에 띈다. 내비게이션과 전방 레이더, 카메라 신호 등을 활용해 앞으로 전개될 속도를 예측해 변속기를 자동으로 조작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 덕분에 감시 카메라, 톨게이트 등 앞에서 속도를 부드럽게 줄일 수 있었다. 이 기술은 연비 개선에도 도움을 준다. K9의 공식 연비는 8.1~9km/ℓ 수준이다. 

/ 사진 = 기아 제공

2시간가량 K9를 시승해보니 주행감, 성능, 디자인 등 대부분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 차가 8000만원 대의 가치를 전달해줄까'라는 질문엔 쉽게 답하기 어려웠다. K9이 최고경영자(CEO)가 타는 '법인차'라는 한계를 벗어났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왜일까. K9의 수요층 포지셔닝이 애매해 보였다. 기아는 최근 준대형 세단 K7의 체급을 K8으로 한 단계 올렸다. 그룹사의 제네시스는 현대차에서 독립하는 데 성공하며 고급차 시장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제네시스와는 동떨어져 있고, K8과의 거리는 더 좁아진 것이다. 플래그십 세단 K9의 브랜드가 K시리즈에 묶여 한계를 보이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후한 '사장님 차'로는 충분하다. 하지만 '영앤리치(Young&Rich, 젊은 자산가)'도 타고 싶은 플래그십 세단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는 필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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