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약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공약을 내세우면서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탈모치료제는 모두 비급여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치료제 가격이 약 10~30% 저렴해지고 관련 시장은 확대할 전망이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거세다. 건강보험 재정은 한정된 만큼 중증도와 필수의료 여부에 따라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암이나 희귀질환 환자조차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외면한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비판도 이어진다.
'1000만 탈모인' 노린 탈모치료제 공약
이 후보가 탈모치료제 공약을 처음 언급한 건 지난달 2일 열린 청년선거대책위원회의 '리스너 프로젝트'였다. 그는 "탈모체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소확행 공약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후에도 탈모는 '신체 완전성'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며 공약화를 약속했다.
파장은 컸다. 특히 2030 탈모 진료 환자로부터 큰 환호를 받았다. 국내 탈모인은 약 100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2030 탈모 진료 환자는 10만명 정도다. 이 후보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이재명은 뽑는 게 아니라 심는 것' 영상은 조회수 11만뷰를 넘어섰다. 해당 유튜브를 패러디한 밈영상도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달 14일 "탈모인이 겪는 불안, 대인기피, 관계 단절 등은 삶의 질과 직결되고 일상에서 차별적 시선과도 마주해야 하기에 결코 대인적 문제로 치부될 수 없다"며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공약으로 확정했다.
"건보 적용 시 시장 커질 것"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탈모치료제는 모두 비급여 대상이다. 탈모는 노화·유전으로 인한 탈모와 병적 탈모로 구분한다. 병적 탈모는 지루성 피부염에 의한 탈모와 스트레스성 원형탈모 등이 해당한다. 현재 국내에선 병적탈모만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미용 목적의 탈모는 물론 호르몬이나 유전으로 인한 탈모 역시 건강보험 대상이 아니다.
제약업계는 이 후보의 공약을 환영하는 눈치다. 탈모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되면 관련 시장이 커질 것으로 기대해서다. 업계 관계자는 "탈모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은 탈모치료제를 판매하는 제약사나 병원, 소비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며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약값이 싸지고 탈모치료제를 찾는 사람도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탈모치료제는 크게 △피나스테리드 △두타스테리드 성분의 약으로 나뉜다. 두 성분의 오리지널 의약품은 각각 머크(MSD) '프로페시아'와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아보다트'다. 국내 탈모치료제 시장 점유율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의 복제의약품(제네릭)도 경쟁 중이다. 피나스테리드 성분 제네릭엔 JW신약의 '모나드', 한미약품의 '피나테드' 등이 있다. 두타스테리드 성분 제네릭은 JW신약의 '네오다트' 한독테바의 '자이가드', 한미약품의 '두테드'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오리지널 의약품과 제네릭 의약품의 가격 차이는 크지 않은 편이다.
업계에선 탈모치료제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으면 가격이 10~30%가량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예를 들어 1정당 1500원짜리 의약품을 복용하는 환자의 경우 한 달 약값이 4만5000원에서 1만3500원(30% 가정)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본인부담금이 낮아지면 수요도 증가하고 이에 따라 국내 탈모치료제 시장도 커질 것이란 분석이다.
탈모약 건보 적용, 현실성은?
문제는 건강보험 재원이 한정돼있다는 점이다. 건강보험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생긴다. 생명에 위협을 받는 암이나 희귀질환 환자조차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질병의 위중도와 필수의료 여부에 따라 우선순위를 따지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 후보가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에 필요하다고 추산 재원은 연간 1000억원이다.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의 보험 급여 지출이 79조5000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큰 부담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 건강보험 재정은 문재인 케어를 시작하면서 지난 2018년 적자로 돌아섰다. 2018년 1778억원, 2019년 2조8243억원, 2020년 3531억원으로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건강보험 적립금 역시 2020년 17조4181억원이다. 오는 2024년이면 고갈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2020년 기준 백혈병, 췌장암 등 중증·고액진료비 상위 30위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82.1%로, 이 중 17.9%가 비급여 대상이다. 실제로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 '졸겐스마'와 혈액암 치료제 '킴리아' 등은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했으나 보험급여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가격이 지나치게 높게 설정됐다는 이유에서다. 탈모치료제보단 고가 항암제 등 의약품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탈모치료제 건강보험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건강보험 적용은 다른 질환과의 형평성, 재정 확보, 우선순위 등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SNS를 통해 해당 공약을 "건강보험제도를 망칠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탈모치료제 공약을 두고 '모(毛)퓰리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건강보험의 제도적 특성은 위중한 환자의 약값 부담을 덜어준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는 것"이라며 "고가라는 이유로 의약품이 개발됐는데도 치료제를 받지 못하는 환자가 있는 현실에서 미용 목적의 탈모약을 먼저 논의하는 것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