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에어가 작년 8월에 발행한 30년 만기 영구채를 1년도 안돼 조기 상환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주주 변경 등에 따라 금리가 가산되는 스텝업(Step-up) 조항이 적용되기 전 상환해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진에어는 동시에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또다시 증자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이 커졌다. 자본으로 분류되는 영구채 상환으로 자본이 감소하면서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질 위험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현 대주주인 대한항공이 자금을 대줄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한항공은 지난 6월 한진칼이 보유한 진에어 주식을 전량 인수한 바 있다.
연 이자 14%대로 뛰기 전 갚았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진에어는 작년 8월에 발행한 750억원 규모의 영구채를 최근 상환했다. 대주주가 변경(지난 6월 한진칼에서 대한항공으로 대주주 변경)되면 콜옵션(조기상환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조항을 활용해 영구채를 조기 상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에어의 영구채 상환은 3분기에 이뤄졌다. 최근 발표된 반기보고서(1~6월)엔 영구채가 여전히 '기타불입자본' 항목으로 분류돼 있으나 오는 3분기에 나올 분기보고서부터 자본 항목에서 제외될 예정이다.
영구채는 부채 성격이 짙지만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하고 있다. 사실상 만기일이 정해져 있지 않아 원금 상환 의무가 없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진에어가 발행한 영구채도 30년 만기이지만 발행회사(진에어)의 의사에 따라 만기일 연장이 가능하다.
영구채 발행 이전인 지난해 3분기만 해도 진에어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결손금이 누적되면서 자본총계가 마이너스(-)인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다. 이를 벗어나고자 진에어는 영구채를 발행해 자본 수혈에 나섰다. 동시에 1200억 규모의 유상증자까지 나서며 완전자본잠식에서 벗어났다.
다만 영구채는 1년마다 금리가 가산되는 스텝업 조항이 있어 매년 이자 부담이 가중된다는 위험도 존재한다. 채권(부채)을 자본으로 분류하는 대신 매년 높아지는 이자를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진에어가 발행한 영구채의 초기 금리는 6.8%다. 오는 20일부터는 연 14.3%의 금리가 적용될 예정이었다. 발행 1년이 지난 시점에 5%포인트(P) 금리를 가산한다는 조건과 대주주 변경 시 직전 이자율에 금리를 2.5% 포인트 가산한다는 조건이 적용되면서다.
이후에도 매년 2%포인트씩 이자가 가산될 예정이어서 조기 상환을 하지 못할 경우 진에어의 이자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조기 상환으로 진에어는 높은 이자를 부담할 필요가 없어졌다. 자본 확충에 나서는 동시에 조기 상환까지 완료하면서 영구채 특성을 잘 활용했단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와 올해 진에어, 제주항공, 에어부산 등이 영구채 발행을 통해 자본 확충에 나서는 중"이라며 "진에어가 완전자본잠식에 빠졌을 당시 영구채 발행을 통해 재무건전성을 회복했고 이번 조기 상환을 통해 이자 부담에서 벗어난 것을 보면 영구채 특성을 잘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돈 갚았지만 재무구조는 악화… 증자 유력
다만 영구채 상환에도 진에어의 재무건전성은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 역시 영구채가 자본으로 분류된 영향이다. 진에어가 영구채를 상환하게 되면서 자본총계가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발표된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진에어의 올 상반기 자본총계는 1161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750억원 규모의 영구채가 상환되면서 올 3분기 자본총계는 400억원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자본총계가 자본금(522억원)보다 적은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진에어가 3분기에 또다시 적자를 기록하게 되면 자본 잠식의 골은 더 깊어질 수 있다.
진에어는 자본 잠식 상태를 해소하고자 다시 한번 자본 수혈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진에어는 유상증자 추진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사는 자본잠식률이 1년 이상 50%를 넘으면 국토교통부로부터 재무구조 개선 명령을 받는다"며 "이후에도 재무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항공사업자 면허가 취소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만약 진에어가 작년에 이어 다시 한번 유상증자를 추진하게 되면 새롭게 대주주가 된 대한항공이 증자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6월 한진칼이 보유한 진에어 지분 전량(54.91%)을 6048억원에 매입했다. 항공 수직 계열화를 통해 사업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한진칼로부터 진에어 지분을 인수한 이유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통합 LCC를 출범시키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며 "진에어가 제3자 배정증자(대한항공)을 하든 주주배정 증자를 택하든 대한항공이 유상증자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