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에 자동차업계 셈법이 복잡해졌다. '보호무역주의'라는 큰 틀을 유지하는 이상 대미 수출 피해는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신흥시장이라는 활로를 모색하자니 중국과의 혈투가 예상된다는 우려다.
7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자동차 관련 공약은 △타국의 미국향 완성차 수출 시 보편적 관세를 10% 이상 부과 △차량당 최대 7500달러를 공제하는 IRA(인플레이션 감축 법안) 전기차 보조금 축소 △전기차 의무화 및 자동차 탄소 배출량 감축정책 폐지 등이다.
상·하원까지 공화당이 우세를 점한다면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은 이행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세부적인 내용 변화가 있을 수는 있으나 큰 틀은 그대로 가져갈 것이란 게 업계의 예상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보편적 관세다.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미국을 가장 큰 판매 시장으로 두고 있다. 현대차·기아·GM한국사업장만 합산해도 연간 미국에서 판매하는 물량이 200만대에 이르는데 절반 이상을 국내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특히 고수익을 가져다주는 고부가 차량 대부분이 국내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어 관세 영향이 즉각적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업계는 트럼프가 관세 10%를 부과할 경우 생산자가 전부 부담한다는 가정 하에 현대차는 2000억원, 기아는 1000억원의 부담이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IRA도 손질될 가능성이 있다. 완전 폐기는 어렵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전기차 혜택은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내년부터 전기차로의 전환 속도가 급격히 느려진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전기차 판매를 위해 미국 조지아주에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건설해 둔 상태다. 단기적인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자동차업계는 우선 미 정부와 접촉해 본다는 계획이다. 우리 기업이 미국에 진출해 고용과 경제 지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 등을 강조한다. 일본·독일 등 주요 대미 흑자국과 협력해 정책 변화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전략도 세웠다.
다만 신흥시장을 활로로 두는 건 서두르지 않을 전망이다. 신흥시장에 공격적으로 뛰어든다면 중국 자동차업체들과 정면으로 맞붙어야 한다. 신흥시장에서는 가격 경쟁력이 최우선이다. 중국 자동차업체들은 1000만원 이하 자동차를 선보일 정도로 판매가를 대폭 낮춘 상황이다. 국내 업체들이 비슷한 가격대로 차를 내놓는다면 손해만 보게 된다는 분석이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국내 자동차업체들이 약간의 손해를 볼 수 있다"면서도 "선거 전 공약과 실제 정책 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관세 부과가 시작되면 국내 수출은 어려워진다"면서 "플랜 B를 세우는 전략이 수반돼야 한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