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이혼소송 상고심을 심리하기로 했습니다.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약 1조400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한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다시 다뤄지게 된 겁니다.
최 회장과 SK그룹 입장선 잠시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건데요. 당초 2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등도 부부공동재산으로 판단, 분할 대상으로 지목한 바 있습니다. 이는 총수 개인사임에도 불구, 거버넌스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의 원인이었습니다.
일각선 최 회장이 천문학적 금액 마련을 위해 주식 담보대출 및 주식 매각 등을 취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오너 리스크'가 언급되기도 했죠.
결국 대법원이 상고심 본격 심리를 진행키로 하면서 '세기의 이혼소송'은 또다른 국면을 맞았습니다. 이에 비즈워치는 법조계 자문을 받아 대법원 심리서 다뤄질 주요 쟁점들을 정리했습니다.
① 재산분할 범위, 어디까지?
가장 주요한 쟁점은 '재산분할 범위'일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최 회장의 ㈜SK(옛 대한텔레콤) 지분이 '특유재산'인지 그 여부가 관건이 될 전망입니다. 상속·증여받은 특유재산은 재산분할 대상서 제외되기 때문입니다.
2심 재판부가 적시한 부부 공동재산 범위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주식입니다. 그중에서도 ㈜SK 지분가치가 월등히 큰 상황입니다. 최 회장은 지주사 ㈜SK의 최대주주입니다. 2심 판결이 나온 지난 5월 말 기준, 지분 17.73%를 보유해 해당 지분 가치만 2조원대에 달했고요. 올해 6월 말 기준으론 17.90%로 지분을 더 늘렸습니다.
노 관장 측은 ㈜SK 지분이 부부 공동재산이라는 입장인 반면, 최 회장 측은 선친으로부터 증여받은 자금으로 인수한 특유재산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법조계 내에서도 관측은 엇갈립니다. 가정법원 판사·법무부 송무심의관 출신 정재민 변호사(법무법인 예문정앤파트너스)는 "재벌의 기업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는 것이 타당한 지가 주요 쟁점일 것"이라며 "특유재산으로 판단할지에 대한 원칙 및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대법원의 몫이고, 만일 파기환송 되면 항소심에서 해당 기준을 구체적 사실에 적용해 직접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대측에선 "통상적으로 재산분할 범위 및 비율 판단 여부는 사실심 재량 영역"이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대법원 판결은 사실심이 아닌 법률심으로 이뤄지니 이 부분을 손대진 않을 것이란 건데요. 다만 국민적 관심이 높고 판결 경정까지 있었던 터라 이례적인 관여를 완전 배제하긴 힘들 것이란 얘기입니다.
가정법원 부장판사 출신 윤지상 변호사(법무법인 존재)는 "이혼소송에서 재산분할 기여도 관련 건은 '사실인정'의 문제여서 고등법원이 판단할 부분"이라면서도 "대법원이 법률심으로 진행되긴 하나 간혹 사실심 영역까지 들여다보는 경우가 있어 판단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② '노태우 비자금' 300억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도 핵심쟁점이 될 전망입니다. 실제 SK에 유입됐는지, 또 그룹 성장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가 관건이 될 텐데요.
앞서 지난해 6월 노 관장 측은 '선경 300억'이라고 적힌 노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의 메모 2장과 약속어음 300억원(1992년 선경건설 명의 발행) 등을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2심 재판부는 최종현 선대 회장 및 SK에 노 전 대통령 돈이 유입됐다고 판단, 1심의 20배가 넘는 1조3808억원을 재산분할로 지급하라고 판결했죠.
최 회장 측은 SK로 300억원이 유입됐다는 주장 자체를 부인해왔습니다. 300억원이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전달됐는지 밝혀진 내용이 없고, 태평양증권 인수엔 내부 비자금이 동원됐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과거 1995년 검찰 수사 당시에도 별다른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도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다만 2심에선 태평양증권 인수에 쓰였다던 SK측 내부 비자금 경로 및 내역이 입증되지 못했었는데요. 양측은 대법원서 추가 증거 등을 놓고 치열히 다툴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일각선 "노 전 대통령 비자금 300억원 실체가 확인되더라도 불법 자금에 해당하므로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나오는데요. 통상 가사 사건에선 불법적 요소를 따져가며 재산분할 여부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대법원에서도 관련 사안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진단이 나옵니다.
가정법원 부장판사 출신 이현곤 변호사(법무법인 새올)는 "불법 정치자금이 SK에 유입됐더라도 이 자체로 가사 소송 재산분할 판단 여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법조계 내부에선 "이례적으로 대법원이 재산분할 대상의 불법성에 대해 새로운 법리를 만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제시됩니다.
윤지상 변호사는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이번 소송을 계기로 대법원이 불법 행위로 인해 재산이 형성된 경우에 관해 새로운 법리를 만들어 법률적으로 한 번 정리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③ 전원합의체 회부·파기환송 시나리오
대법원이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할지도 관심사입니다. 일반적인 이혼소송과 달리 역사적 사실을 비롯해 기업인의 주식이 포함된 재산분할 등 여러 가지 쟁점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해당 사건은 노태악·서경환·신숙희·노경필 대법관이 소속된 1부에 배당, 주심은 서 대법관이 맡고 있는데요. 이들 대법관 4명 사이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거나 대법원장이 직권으로 회부하면 전원합의체에서 사건을 판단하게 됩니다. 이 경우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 전원이 참여하게 됩니다.
반면 재산분할 액수가 크고 기업인의 사건이라 주목도가 높을 뿐, 새로운 법리가 나온 사건이 아니어서 전원합의체의 판단까지 나아가야 할 명분은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윤지상 변호사는 "전원합의체에 회부될 가능성은 비교적 낮아 보인다"며 "가사 사건은 기본적으로 법리가 동일한데, 이 사건은 돈이 많은 이들의 사건이어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을 뿐"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정재민 변호사는 "보통 전원합의체는 기존의 판례를 변경할 때 거치는데 이 사건에선 그럴 부분이 없어 보인다"며 "다만 만일 전원합의체에 회부한다면 모든 국민한테 적용되는 아주 중요한 사안, 예컨대 모호하고 구체적이지 않았던 재산분할 기준 등을 천명하는 경우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대법원 심리 이후 진행될 다양한 시나리오도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본안 심리를 거쳐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판결을 내릴 예정입니다. 이때 파기환송으로 가닥이 잡히면 재판이 다시 치러집니다. 이 경우 SK로선 2심 재산분할액을 얼마나 낮출지가 최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파기환송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대법원이 이혼소송을 파기환송한 경우는 2% 내외로 알려집니다. 이에 대해 이현곤 변호사는 "애초 이 사건은 재산분할을 비롯해 본안 및 판결문 경정 등 쟁점이 많은 사건이라 대법원이 심리불속행으로 끝내기 힘든 사건이었다"며 "심리 속행이 이어졌다고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파기환송과도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