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프리미엄 로봇 청소기가 연초부터 우리나라의 문을 잇따라 두드리고 있다. 이전에도 중국 가전들이 국내에 출시됐지만 특히 올해들어 더욱 전략적으로 파고드는 모습이다.
이는 한국 시장의 프리미엄 가전 수요가 입증된 데다가 이를 구매할 수 있는 경제력까지 확보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최근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 가속화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로봇 청소기를 시작으로 다른 중국 가전들이 본격적으로 국내 시장에 상륙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여전히 깊히 뇌리에 박혀 있는 중국 기업에 대한 '꼬리표'를 때는 게 관건으로 지목된다.

샤오미, 로보락 이어 에코벡스도 한국 전초기지로
중국 로봇 기업 에코백스는 이달부터 프리미엄 로봇 청소기 '디봇 X8 프로 옴니'를 우리나라에서 판매한다고 밝혔다. 이 제품은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2025에 출시된 상품으로 최근 중국 본토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주목할 점은 에코벡스가 '디봇 X8 프로 옴니'를 전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국내에서 처음 출시했다는 점이다.
에코벡스 뿐만 아니라 로봇 청소기를 출시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은 최근 우리나라 시장에 더욱 적극적이다. 지난달 샤오미는 한국 법인을 설립과 동시에 한국 시장을 공략할 제품으로 스마트폰과 TV, 로봇 청소기를 앞세웠다. 대표적인 로봇청소기 기업인 로보락 역시 조만간 신제품을 국내에 출시할 예정이다.
왜 로봇청소기, 한국일까?
중국 기업들이 로봇 청소기를 앞세워 한국을 공략하는 이유로는 한국의 주거 문화가 꼽힌다.
최근 '프리미엄' 급 로봇청소기들은 건식과 습식, 즉 기존의 진공 청소기의 역할인 흡입에 더해 물걸레 질이라는 청소 수단까지 함께 수행한다. 물걸레질의 경우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 문화권이 아닐 경우 의미가 없는 기능이다.
데이비드 첸 CEO 역시 지난 5일 간담회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진공청소뿐만 아니라 걸레질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알았다"라며 "그래서 습식과 건식을 결합한 방식을 내놨다"고 설명했다.
에코벡스 뿐만 아니라 업계에서도 물걸레질이 가능한 프리미엄 로봇 청소기의 경우 대한민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의 수요가 높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 시장 상황 역시 '물걸레질'이 필요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욱 전략적 요충지로 자리잡았다는 분석도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 판매되는 대부분의 가전이 '스마트 가전'일 정도로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 가전에 대한 경험이 높다. 수요가 보장돼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더해 이러한 가전들의 높은 몸 값을 댈 수 있는 경제력도 갖췄다. 이번에 에코벡스가 내놓는 '디봇 X8 프로 옴니'의 가격은 139만원으로 고가다. 이에 앞서 샤오미가 출시한 로봇 청소기 'X20 MAX'의 가격은 74만9000원이다. 조만간 로보락이 내놓을 'S9 MaxV Ultra'은 190만원 이상에 판매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물론 이웃 국가인 일본 역시 스마트 가전에 대한 수요가 있는 데다가,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몇 안되는 경제력을 갖춘 국가다. 오히려 시장의 규모는 더욱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우선 택한 이유는 세계 정세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중국과의 무역 전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일본은 미국의 우방국인데다가 강력하게 미국을 지지하는 형국이라 중국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리기 여의치 않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 역시 미국의 우방국이지만 일본에 비해 중국에 우호적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 미국의 방침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같은 국제 정세를 살펴봤을 때 중국 가전 기업들이 우리나라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청소기는 시작일뿐?…다른 가전은
업계에서는 로봇 청소기를 시작으로 다양한 가전 제품들이 우리나라 시장에 올해를 기점으로 본격 상륙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가전을 판매할 만한 국가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우리나라의 전략적 위치가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청소기 다음은 TV가 될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하이센스, 마이디어, TCL 등 북미 등에서 중저가 TV로 입지를 다진 기업들이 미국과의 무역 분쟁 심화 시 성장 동력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중국산 가전이 승전고를 울릴 지는 미지수다. 중국 기업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이 아직은 높아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제품 사용 시 개인 정보가 유출 될 수 있다는 불신이 뿌리깊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가격과 품질 역시 중요한 요건이지만, 이러한 불신을 해소하지 못하고는 한국에서 좋은 소식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라고 봤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에는 삼성과 LG라는 글로벌 가전 기업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들을 제치기에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