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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tory]②떨치기 힘든 관치의 유혹

  • 2014.04.17(목) 14:10

기촉법, 자금지원·상거래채권보호등 장점
위헌 소지 내포한 `폭탄`..관치확대 우려도

[Inside Story]①기촉법, 생명연장의 꿈에서 이어집니다.

 

 

경영자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이슈에 가려있지만 워크아웃과 법정관리의 가장 큰 차이는 신규자금 지원과 상거래채권과 관련한 부분입니다.

 

워크아웃은 법정관리보다 구조조정의 파장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위헌 논란이 있고, 관치(官治)의 그늘을 안고 있습니다. 하나씩 따져보겠습니다.

◇ 기촉법, 목마른 기업에 물을... 

워크아웃시 채권금융기관들은 기업에 신규 운영자금을 대줍니다. 하지만 법정관리 중인 기업은 신규자금 지원을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습니다. 쌍용차 사례가 있긴 하지만 기존에 담보설정이 되어 있지 않은 부동산을 제공해 겨우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기촉법상 워크아웃 기업에 제공하는 신규여신은 법정담보권 다음으로 우선 변제받을 권리가 있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기업은 영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신규자금 상환에 우선 사용해야하구요. 금융기관은 불안하긴 하지만 선순위 채권자 지위를 얻기 때문에 돈을 빌려줄 수 있는 겁니다.

 

반면 통합도산법에는 이러한 규정이 미흡하다고 하네요. 통합도산법이 2009년 개정되면서 신규자금의 우선변제권이 도입됐지만 만에 하나 기업이 청산절차로 가면 이러한 권한이 인정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입법미비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통합도산법의 우선변제권을 보완해도 금융기관이 법정관리 기업에 신규자금을 지원할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현행 법정관리 하에선 채권금융기관들의 역할이 크지 않습니다. 주로 의견개진만 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워크아웃에선 자신들이 칼자루를 쥘 수 있지만 법정관리에선 그렇게 할 수 없는거죠. 권한 없이 책임만 지는 일을 달가워할 금융기관이 얼마나 될까요. 금융기관들은 지금처럼 "법정관리 기업에 대한 대출은 제도권 금융기관의 사업영역이 아니다"라며 발을 뺄 가능성이 있습니다.

◇ 협력업체 부도위험 완화 

또하나 워크아웃의 장점은 협력업체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기촉법은 국내 채권금융기관만 적용되기 때문에 협력업체들이 해당기업과 거래한 상거래채권은 정상적인 변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기업 부실의 불똥이 중소기업으로 튀는 걸 어느정도 막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법정관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채무자를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상거래채권자)의 손만 들어주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이 부분 역시 법률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특정기업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다수의 힘없는 약자들을 줄도산으로 내몰 순 없으니까요. 대기업이 워크아웃 대신 법정관리를 신청할 때 비난을 받는 것도 수많은 협력업체를 나몰라라 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회생계획이 확정되지 않고선 중소기업들이 돈을 돌려받을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물론 회생계획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중소기업이 상거래채권을 변제받을 수 있는 예외적 조항(통합도산법 132조)이 있긴 하지만 까다로운 조건과 절차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 기촉법의 치명적 약점, '위헌성' 

신규자금 지원과 상거래채권 보호라는 점에서 워크아웃은 법정관리보다 효율적인 수단입니다. 그렇다면 워크아웃은 문제가 없는 걸까요.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게 위헌성입니다. 2005년에는 법원이 직권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채권금융기관 중 75% 이상이 결의하면 나머지 채권금융기관이 좋든 싫든 이를 따르도록 한 조항이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소송을 제기한 금융기관이 중간에 소취하를 하면서 헌재 판단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기촉법의 위헌성은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과 같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 국내 금융기관만 고통


실제 기촉법을 보면 여러 불평등한 요소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기촉법 적용을 받는 곳은 국내 금융기관뿐입니다. 이들은 워크아웃시 출자전환, 이자감면, 만기연장 등 고통을 떠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이제는 해외에서 돈을 빌려쓰는 기업들도 꽤 많죠. 이들 기업에게 돈을 빌려준 외국금융기관도 고통분담을 하는 게 상식적으로는 맞는데, 외국금융기관(외국계 금융기관 국내지점은 제외)에는 고통분담 의무가 없습니다. 국내 금융기관이 역차별을 받고 있는 거죠.

쌍용차가 2009년 초 워크아웃이 아닌 법정관리를 택한 것도 2억유로 상당의 해외전환사채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워크아웃 신청시 쌍용차는 조기상환사유가 발생한 것으로 간주돼 해외전환사채를 즉시 갚도록 돼있었습니다. 국내 금융기관으로선 자신들이 지원할 돈이 해외 금융기관으로 빠져나가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겠죠. 결국 쌍용차는 법정관리로 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직원 2646명이 정리해고됐습니다.

 

당시 쌍용차 해외전환사채 투자자들은 끝까지 회생계획에 반대했는데요. 회사가 파산하면 보상을 받는 파생상품인 CDS(크레딧디폴트스왑) 계약을 체결해놨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 역차별 감내하는 이유

국내 채권금융기관들이 불평등한 대우를 감내하면서까지 기촉법 존치를 주장하는 이유는 뭘까요. 기업이 정상화되면 떼일 뻔한 채권을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쓰러지면 그간 지원한 돈만큼 손실이 되레 커질 수 있는데도 말이죠. 이날 기업구조조정제도 심포지움 한 참석자는 "금융당국에 물어보라"고 하더군요. 사실상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기촉법 상시화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기촉법의 뿌리는 IMF 직전 시행된 부도유예협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진로와 대농, 기아 등 총 25개 업체가 부도유예협약 적용을 받았는데 이 가운데 살아남은 기업은 단 한 곳에 불과했습니다. 이후 협조융자제도와 기업구조조정협약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기촉법을 대할 때 여전히 관치의 기억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채권금융기관의 자율을 표방하지만 그 안에는 금융당국의 의중이 무엇보다 크게 자리잡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 성공사례 이면에는...


그나마 워크아웃은 기촉법이라는 법률적 토대라도 있습니다. 주채무계열 재무구조개선약정, 대기업 신용위험평가, 채권은행협의회운영협약, 채권단자율협약, 대주단협약 등 현재 금융기관들이 활용하는 여러 구조조정 수단은 법이 아닌 감독규정이나 금융기관 사이의 자율협약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들의 차이를 알고 있는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각종 제도가 복잡하고 모호할수록 금융당국의 재량으로 기업의 목숨이 왔다갔다할 개연성이 높아집니다.

 

▲ 금융당국은 기촉법상 워크아웃 말고도 여러 구조조정 수단을 갖고 있다. (그래픽=한규하 기자)

 

물론 워크아웃이 성공적으로 수행된 사례도 많습니다. 하이닉스가 대표적이죠. 당시 하이닉스 살리기에 동참을 꺼렸던 금융기관도 있지만 금융당국의 뜻이 관철되면서 결국 정상화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실패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대우차판매와 쌍용건설은 워크아웃을 추진하다 실패해 법원의 손에 맡겨졌습니다. 웅진그룹은 2012년 4월 주채무계열 재무구조평가에서 정상판정을 받았지만 그해 9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STX그룹도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하고 1년도 안돼 위기를 맞았습니다. 진작에 정리했어야할 기업들을 정치적 고려 때문에 손보지 못하고 차일피일 연명케하다가 돈은 돈대로 들고 손 쓸 때를 놓친 사례도 있을 겁니다.

◇ 연장 탓하는 금융당국

현재의 구조조정에 문제가 있다면 그 원인이 '연장' 탓인지 연장을 다루는 사람의 문제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경제에 위기 아닌 적이 얼마나 됩니까. 금융당국의 말대로 상시적인 위기라면 위헌성을 안고 있는 법률을 그대로 가져가는 건 위험부담이 큽니다. 기촉법의 상시화보다 통합도산법의 보완이 더 적합한 해법일지 모릅니다. 법률적 근거가 미흡한 각종 구조조정 제도로 상시적 위기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그런데도 연장 탓을 하는 금융당국의 의도를 어떻게 해석해야할까요. 혹시 관치의 유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아닐까요.

 

법원도 채권금융기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심포지움에서 한 참석자는 "지방법원 판사들은 정말 한심하다.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면담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하더군요. 전문성을 가진 채권금융기관의 노하우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엔 기업이나 개인회생을 전담하는 파산법원도 없네요. 로스쿨 학생들의 변호사시험 선택과목에는 도산법이 빠져있습니다. 법조계도 준비해야할 것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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