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국은 오랫동안 품어온 꿈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 중국 위안화가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구성통화로 편입되면서다. 위안화는 미국 달러와 유로에 이어 세번째로 구성 비중이 높은, 명실상부한 3대 국제통화로 자리잡았다. 중국의 꿈은 더 높다. 위안화를 미국 달러화에 버금가는 세계 기축통화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향후 위안화 국제화 과정을 감안할 때 큰 흐름이 위안화 강세 쪽에 무게가 실려왔던 이유다.
그러나 당장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중국 경제가 빠른 속도로 하강하자 위안화 약세에 베팅하는 세력이 날로 늘면서 시련을 맞고 있다. 이는 중국 정부가 경제 둔화 속도 조절을 위해 일정부분 유도했던 위안화 평가 절하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1980년대 플라자합의를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기류를 중국이 제대로 뛰어넘지 못할 경우 그동안 꿈꿔왔던 위안화 굴기는 상당부분 후퇴할 수 있다.
◇ 위안화 굴기에 성큼 다가선 중국
IMF는 지난해 11월 중국 위안화의 SDR 편입을 공식 결정했다. 중국은 지난 2010년 SDR 편입을 시도했다 실패했고, 5년만인 두번째 도전에서 성공했다.
이미 중국은 세계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한지 오래다. 지난해 8월말 위안화의 세계 결제 비중은 엔화를 넘어 4위가 됐다. 중국 교역액 중 위안화 결제비중은 30%에 육박하고 중국의 해외직접투자(ODI)와 외국인직접투자(FDI)에서 위안화 결제 비중은 50%가 넘는다.
이처럼 이미 중국의 위안화 수요가 가속화된 상황이었지만 중국의 SDR 편입은 중국 위안화가 기축통화로 제대로 인정을 받으면서 '대국으로 우뚝 서는' 이른바 금융굴기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평가됐다. 위안화 국제화의 확실한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다.
중국 위안화가 국제기구를 통해 기축통화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향후 위안화 수요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세계 경제에서 위상을 더욱 높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윤항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위안화를 SDR에 포함시켰다는 것은 IMF 참가국들이 위안화의 안정성과 신뢰도를 인정한 것과 같다"며 "금융부문에서 민간투자자의 위안화 표시자산에 대한 수요와 사용이 늘어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윤창용 신한금융투자 연구원도 "위안화의 SDR 편입은 국제거래에 있어 지급뿐만 아니라 가치저장 수단, 계산 단위로서의 기능을 정립함을 시사한다"며 "미국 경제가 국제금융시장에서 갖는 금융부문의 영향력을 서서히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당장은 거센 위안화 약세 기류
위안화의 위상 강화는 장기적인 위안화 강세로 연결된다. 위안화에 대한 결제 수요가 늘면서 위안화 자산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꾸준히 늘어나고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고 내 위안화 비중도 더 확대되는 것이 중국이 그리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장기적인 방향성을 떠나 당장은 위안화가 큰 부침을 겪고 있다. 지난해 8월에 이어 올해 초에도 위안화 값이 크게 하락하며 글로벌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경기둔화 우려가 부각되면서 중국 당국은 인위적인 위안화 절하를 택했다. 따라서 본토의 자금 유출이나 부진한 수출 등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부의 추가 부양 가능성을 감안하면 단기적으로는 약세 쪽에 무게가 실린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해 신흥시장에 유출된 자금은 약 7350억달러로 15년만에 최대치이자 2014년의 7배 수준에 달했다. 이들 가운데 90% 이상인 6760억달러가 중국에서 유출됐다.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 역시 위안화를 약세로 이끌 수 있는 요인이다.
위안화 약세는 주요국들의 경쟁적인 통하절하로 이어지고 한국 경제에도 고스란히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 현지기업의 가격경쟁력 강화로 인해 중국으로의 수출이 크게 감소하면서 한국 수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중국 경제에 의존적인 국내 수출구조와 제조업 내 한-중 경쟁관계 심화 등의 한-중 구조를 고려해도 위안화 약세 현상이 지속될 경우 원화가 약세 흐름에서 벗어나기 힘들 가능성이 높다.
◇ 플라자합의 재현?..기로에 선 위안화
주목할 점은 중국의 위안화 약세가 전례없는 위기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헤지펀드계 전설'인 조지 소로스를 비롯, 글로벌 헤지펀드 큰손들은 최근 공개적으로 위안화 약세 베팅에 나서고 있다. 이는 7부 능선을 넘은 위안화 굴기가 거대한 장애물에 부딪힐 수 있음을 의미한다.
조지 소로스 소로스 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은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중국이 경착륙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위안화 약세를 예상했다. 중국도 소로스를 최근 위안화의 급격한 약세를 이끈 환투기 세력의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 소로스는 1990년대 영국 파운드화 공매도 공격에 나서 파운드화 폭락을 이끌었고 수십억달러의 이익을 챙긴 것으로 유명하다.
소로스 외에 과거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를 예측했던 카일 배스 해이맨캐피털매니지먼트 창립자 역시 최근 공개적으로 위안화 매도에 나서는 등 갈수록 세를 불리고 있다.
이들의 위안화 약세 베팅은 1980년대 플라자합의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의 중국처럼 당시 미국의 자리를 넘봤던 일본은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 가치가 크게 절상되면서 부동산 대폭락의 방아쇠를 당겼고 잃어버린 20년으로 빠져들었다. 미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핫머니를 통해 중국 위안화 가치를 끌어내리지는 않겠지만 최근 헤지펀드의 가차없는 공격은 미국에 상당히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주고 있다.
중국에서 자금 유출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현재로서는 중국은 헤지펀드들과 맞서 위안화 가치를 적절히 방어하는 일이 급선무가 됐다. 전에 없던 시험대에 올라선 중국을 시장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예상했던 것보다 위안화 가치 하락이 가파르게 나타날 경우 중국 기업들의 외채 부담이 급증하는 등 위기로 치닫는 것은 물론 위안화 굴기는 먼 꿈으로 다시 되돌려질 수 있다.
비즈니스워치는 2월24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한중 양국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중국 대전환, 한국 경제 해법은'을 주제로, 중국의 경제·산업 정책 변화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심층 분석·전망하는 국제경제 세미나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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