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을 위한 로드맵이 발표된 후 증권업계도 득실 따지기가 한창이다. 정부가 앞으로도 대형 증권사 위주의 새판 짜기에 나설 것임은 더욱 분명해졌지만, 덩치크기에 따라 주어지는 당근들이 실제 자기자본 확충 유인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의견이 분분한 모습이다.

◇ 리스크 지는 만큼 수익성 확보될지 봐야
초대형 IB 육성방안은 자기자본을 3조, 4조, 8조원 등으로 늘려갈 때마다 신규업무를 단계적으로 허용한다. 결국 당장은 각각의 신규업무들의 매력이 증권사들이 어느정도 리스크를 떠안고서라도 과감히 몸집 불리기에 나설지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셈이다.
정부는 10조원 이상의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목표로 자기자본이 4조원을 넘어서면 발행어음과 외국환업무를 허용하고, 8조원을 넘으면 종합투자계좌(IMA)와 부동산담보신탁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처럼 기존에 없던 획기적인 IB 서비스가 제공되면서 대형 증권사들로서는 군침을 흘릴만하지만 자기자본 확충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개별 증권사 입장에서는 인센티브 효과를 좀더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이 좀더 우세하다.
강승건 대신증권 연구원은 "정부 정책이 증권사들의 자발적 증자나 M&A 등의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증권사들의 노력과 함께 충분한 수익성 확보가 동반돼야 현실화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 종합투자계좌, CMA 매력과 엇비슷
자기자본이 8조원이상일 경우 주어지는 종합투자계좌와 부동산담보신탁의 경우 굳이 무리해서 8조원이상을 넘긴 후 혜택을 거머쥘 만한지에 대해 의문이 크다.
8조원 규모는 당장은 지난해 12월 대우증권을 인수하며 자기자본이 6조7000억원에 달하는 미래에셋증권 정도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미래에셋증권과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궁극적으로 초대형 IB를 지향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종합투자계좌와 부동산 담보신탁의 혜택 자체를 염두에 두고 자본확충에 적극적으로 나설 만큼의 매력은 부족하다는 평가다.
종합투자계좌의 경우 당초 종합자산관리계좌(CMA)의 예금자보호가 기대됐던 것에 비해서는 약화되면서 실망감을 안겼다. 박혜진 교보증권 연구원은 "종합투자계좌는 증권사가 은행 수신업무를 영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굳이 증자와 인수합병(M&A)에 따른 자기자본이익률(ROE) 희석을 감수할 정도의 인센티브가 충분한지는 의문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서보익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종합투자계좌의 경우 양적한도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강점이 있지만 기존의 CMA나 환매조건부채권(RP) 등과 수익률이나 안정성이 유사해 무리한 자본확충을 유인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오히려 이번에 배제된 법인지급결제가 추후 8조원 이상의 증권사에 대해서만 추가로 허용될 경우 일부 유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기업금융 재원 조달의 안정성 측면에서 종합투자계좌의 예금자보호가 적용되지 않은 부분이 아쉬웠다"며 "중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은행과의 과감한 업무 장벽 파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발행어음·외국환업무 등 시급성 제한
4조원을 넘게되면 허용되는 발행어음도 자체적인 매력이 크지 않을 수 있다. 이미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만기 1년 이내의 어음발행은 전단채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기자본이 각각 3조4000억원과 3조2000억원인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등 신용등급이 높은 대형증권사들의 경우 2%초반의 저금리로 채권발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실효성 자체가 크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레버리지 비율 또한 자기자본이 4조원이 넘는 증권사에 대해서는 레버리지 비율 규제가 발행어음에 한해 완화되긴 하지만, 기업신용공여 한도는 자기자본의 100%를 적용받게 돼 조달비용을 낮출 수는 있어도 한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강승건 대신증권 연구원은 "4조원까지 자기자본 확대 가능성이 있는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신규사업 확보의 시급성이 낮아 자기자본 확대 노력이 단기간안에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