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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컬처]영화 '싱글라이더'와 증권사 건전성 지표

  • 2019.05.23(목) 15:57

부실채권으로 고뇌하는 증권 지점장 이야기
NCR 등 건전성 지표 통해 위험 측정 가능해

드라마, 영화, 뮤지컬, 도서, 동영상 콘텐츠 등 문화 속 다양한 경제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콘텐츠 속에 나오는 경제 현상이 현실에도 실제 존재하는지, 어떤 원리가 숨어있는지 궁금하셨죠. 쉽고 재미있게 풀어드리겠습니다. [편집자]

무슨 일이든 사전에 위험을 감지할 수 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인생도, 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머니&컬처]에서는 이병헌 씨 주연의 국내 영화 <싱글라이더(A Single Rider)>를 통해 증권사의 건전성 지표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사람들이 한 증권사 지점으로 몰려와 소리를 지르고 서류를 내팽개칩니다. 의자를 던지는가 하면 고함도 지르고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증권사 지점장인 강재훈(이병헌 분)은 직원들과 함께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바닥만 응시합니다.

TV에서는 증권사가 1조3000억원 규모 부실채권을 발행해 판매한 결과 약 4만 명에 달하는 피해자를 양산했고 그 결과 회장도 기소됐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순간 잠잠해진 증권사 지점. 한 중년 여성이 재훈에게 하소연합니다. "지점장이시잖아요.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아니에요? 도와주세요"

묵묵히 바닥만 바라보던 재훈은 어렵게 입을 뗍니다. "직원들을 대신해 제가 죄송하다는 말씀을…". 그 순간 한 남성이 분을 못 이겨 재훈의 얼굴을 가격합니다. 안경이 바닥에 팽개쳐집니다. 지점은 다시 아수라장으로 변합니다. 재훈은 아무 말 없이 주섬주섬 안경을 주워 고쳐 쓸 뿐입니다.

본사 임원들은 서로 책임을 전가하기 바쁩니다. 재훈은 주변 친인척까지 동원해 판매 실적을 올렸습니다. 아내는 아이 교육 차 2년 째 호주에 살고 있는 상황. 기댈 곳 없는 그는 무작정 호주 행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장시간 비행 끝에 호주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노크해 보지만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아무도 없을 리 없는데. 인기척을 따라 베란다 쪽으로 걸어 들어간 재훈은 뜻밖의 광경을 목격합니다. 아내가 한 백인 남성과 가까이 앉아 대마를 나눠 피우며 깔깔 웃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호주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만 믿어 온 본인이 한심해졌습니다. 직장도 가족도 모두 잃었다는 생각에 괴롭기만 합니다. 아내와 아이 앞에 나설 엄두조차 나지 않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관객들은 감정이입과 함께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증권사가 부실채권을 발행하지 않았다면 호주로 오는 일은 없었을 텐데. 증권사가 발행한 채권이 부도 위험에 떨어지더라도 사전에 위험성을 진단할 수 있었더라면 무작정 고객들을 동원해 실적을 올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럼 모두가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지 않았을까.

"너무 좋은 것에는 항상 거짓이 있는 법이에요. 나도 내가 하는 일에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어요. 부실채권을 고객들한테 팔고서 그 덕에 승진도 하고. 애하고 애 엄마 여기에 보내고. 결국 그 거래 덕분에 내 재산도 고객도 다 잃고. 친구도 가족도 잃어버린 것 같고, 결국 나 자신도 잃어버리고…."
영화 <싱글라이더> 스틸컷 / 출처=네이버

부실화된 채권을 다른 기업이 발행하고 이를 증권사가 팔았다면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증권사가 자사의 신용도를 바탕으로 발행한 채권이 부도가 났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다행히 현실에서는 증권사가 채권을 발행하면 부실 여부를 점검할 수 있는 수단이 여럿 마련돼 있습니다. 영업용순자본비율(NCR, Net operating Capital Ratio)이 대표적입니다. 증권사 파산을 예방하고 파산이 일어나도 고객 재산이 변제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차원에서 국내에 1997년 4월 도입됐습니다.

이후 증권사 사업 분야가 단순 주식매매중개에서 기업금융(IB) 등으로 꾸준히 확대되면서 처음 설계된 NCR 지표가 현실 요소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따랐고,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모델 개선 작업이 이뤄져 왔습니다.

현 NCR은 영업용순자본을 총위험액으로 나눠 산출합니다. 영업용순자본은 자산에서 부채를 제외한 순재산액에서 현금화 곤란 자산을 빼고 보완자본을 더해 산출합니다. 후순위채권·상환우선주·대손충당금 등 당장 상환의무가 없는 자산 군이 보완자본에 해당합니다.

쉽게 풀어내자면 발행 채권이 부실하다고 판명됐을 때 채권자가 받은 손해액을 배상할 수 있도록 일정 수준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라는 주문입니다. 증권사는 NCR을 매달 산출해 금융감독원에 보고해야 합니다. NCR이 150% 미만일 경우 금감원장에게 즉시 보고돼 행정 지도를 받게 됩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전체 증권사 평균 NCR은 545.1%입니다. 전년 대비 37.6%포인트 감소했지만, 예년 수준과 견주면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위험 학습 효과가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입니다.

과거처럼 증권사가 도산할 일은 거의 없겠지만 최근 공격적인 투자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증권사 채권 투자 전 NCR 등 건전성 지표 확인은 필수입니다. 실제 증권사들도 NCR 비율에 신경을 쓰고 열심히 관리를 합니다.

영화 속 재훈과 투자자들이 NCR 등 건전성 지표를 참고해 상품의 위험을 파악했더라면 파국을 막을 수 있었을까요. 이와 별개로 영화는 막바지에 이르러 감동적 메시지를 선사하기는 합니다. 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영화 '싱글라이더'는 초대형 투자은행(IB)들이 출범한 2017년 11월보다 약 9개월 앞서 개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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