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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줍줍]자사주 쓸어담는 증권사의 빅픽처(feat. 대신·신영·부국)

  • 2020.09.25(금) 10:00

대신증권 연말까지 자사주 300만주 추가 매입 발표
소각없는 자사주 단순매입은 경영권방어 대비 목적도
대신·신영·부국증권 대주주 지분율 낮고 자사주 많아

대신증권이 지난 22일 자사주 300만주를 사들인다고 발표했어요. 발표 전날 종가(1만900원) 기준으로 327억원어치를 사겠다는 것. 실제 매입기간은 9월23일부터 12월22일까지. 회사 측은 '주가안정 및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를 매입한다고 밝혔는데요.

☞관련공시 대신증권 9월 22일 주요사항보고서(자기주식취득 결정)

대신증권은 지금도 자사주 1188만6491주(23.4%, 보통주 기준)를 가지고 있어서 이번 계획대로 자사주 300만주를 더 사들이면 총 1488만6491주를 보유하게 돼요. 이는 대신증권 전체 발행주식(5077만3400주)의 29.3%에 해당해요. (보통주 외에 우선주도 3600만주 가운데 16.8%인 603만주를 자사주로 보유 중)

대신증권은 작년에도 자사주 370만주를 매입하는 등 차곡차곡 자사주를 모으고 있어요. 상장회사가 자사주를 사들인다는 건 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을 회사 돈 써서 흡수한다는 의미.

회사가 흡수하는 물량만큼 주식시장에서 유통되는 물량이 줄어드니깐 희소성이 커지고, 그러면 주가안정에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자사주 매입은 흔히 주가 호재성 재료로 불리고, 자사주를 매입하는 회사들도 '열에 아홉'은 주가안정을 위해 자사주를 매입한다고 설명하곤 해요.

# 자사주매입이 주가안정? 확실한 효과 내려면 소각해야

하지만 보다 확실하게 주가를 안정시키고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자사주 매입에 그치지 않고 소각까지 마무리해야 해요. 회사가 보관중인 자사주는 언제든 도로 시장에 나올 수 있지만, 소각 즉 주식을 태워버리면(실제로 실물주식을 태우는 건 아니고 회계장부에서 해당 주식을 없애는 것) 도로 시장에 나올 일말의 가능성조차 차단해버리는 것이어서 더 확실한 주가안정 방안으로 꼽히죠.

그러나 꾸준하게 자사주를 매입해온 대신증권은 최근 20년 가까이 자사주를 소각한 적은 없어요. (가장 마지막 자사주 소각은 2002년 월드컵 직후)

또한 대신증권은 2005년 12월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15년간 그 흔한 유상증자나 주식관련사채도 발행한 적 없어요. (2007년 우선주 증자 한번 실시)

따라서 보통주 기준 발행주식수는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5077만3400주로 변함없어요. 강산이 변하는데도 꿈쩍 않았던 대신증권의 주식.

그런데 대신증권이 지난 15년간 사 모은 자사주(보통주)는 무려 2100만주(이번 매입예정 300만주 포함)라는 사실! 회사가 발행한 주식의 거의 절반가량을 회사 돈으로 다시 사들인 것. (현재 자사주 보유량이 총매입량보다 줄어든 건 중간 중간 전략적투자자(일본 닛코코디알)에 팔거나, 임직원상여금, 우리사주조합 무상출연 등으로 처분했기 때문)

결론적으로 대신증권은 놀라울 정도로 자사주를 쓸어 모으면서 정작 단 한 번도 소각하지 않았다는 점.

증권시장을 기반으로 먹고사는 회사, 금융투자 전문가가 수없이 많이 근무하고 있는 대신증권이 단순히 자사주를 매입만 해놓기 보단 소각까지 마무리해야 더 확실한 주가안정 방안이란 점을 모를 리 없겠죠.

그렇다면 대신증권의 자사주 매입은 주가안정용이라는 표면적 이유 말고도 다른 목적이 더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 추론이에요.

그래서 오늘 [공시줍줍]은 자사주의 다양한 쓰임새, 그리고 궁극적으로 대신증권처럼 차곡차곡 사 모은 회사들이 그릴 수 있는 '빅피처'를 가늠해보는 시간!

# 자사주는 급할 때 요긴하게 꺼내 쓰는 비상금

먼저 자사주의 다양한 쓰임새 편.

상장회사가 자사주를 매입만 해놓고 소각하지 않는다는 건 회사 돈으로 경영권을 방어하거나 대주주의 지배력을 높일 '비상금'을 마련해 놓았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무슨 얘기냐고요?

일단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어요.(회사가 장사해서 번 돈으로 자기주식 사모아서 의결권 높이려면 애초 왜 주식을 발행함?) 따라서 자사주 보유 자체만으론 경영권 방어 수단이 될 수 없어요. 하지만 회사의 경영권이 위협받는다는 상황이라고 판단할 때 우호세력에게 자사주를 매각하면 의결권이 번쩍 살아난답니다.(우호세력이 가진 주식은 더 이상 ‘자기회사 주식’이 아니기 때문)

이런 방법으로 자사주를 활용한 대표 선수는 엔씨소프트. 2015년 초 넥슨으로부터 경영권 위협을 받던 엔씨소프트는 넷마블게임즈와 쿵짜쿵~ 주식맞교환 방식으로 자사주를 넘겼어요. 같은 해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앞서 자사주를 KCC에 전량 매각해 우호지분으로 확보한 사례도 있어요.

대신증권은 현재 최대주주 지분율이 13.7%에 불과한 회사. 그래서 늘 경영권이 불안하다는 얘기를 듣는 곳. 하지만 최대주주 지분율의 두 배가 넘는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기도.

따라서 대신증권의 자사주는 단순히 주가안정용 목적을 넘어서 혹여나 최대주주의 경영권이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판단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비상금'이기도 해요.

우호세력에게 자사주를 곧장 매각해서 ‘우리랑 같이 손잡고 경영권을 지켜보자’고 할 수도 있고요. 또는 교환사채(일정기간 이자를 주고 나중에 자사주를 1주당 얼마에 교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를 발행해서 자금을 모을 수도 있어요.

특히 자사주 활용의 하이라이트는 지주회사 전환과정에서 인적분할을 할 때 쓰임새.

얼마 전 LG화학이 기업분할 방식으로 물적분할을 선택하면서 주식시장에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몰고 왔는데요. (LG화학 물적분할 이슈 더 알아보고 싶다면?)

# 인적분할 마법.. 대신증권의 빅픽처?

기업분할에는 물적분할과 함께 인적분할 방식도 있어요.

기업분할= 기업이 여러 개의 사업 중 한 개 이상의 사업을 떼어내서 새로운 회사를 만드는 것.
물적분할(物的分割)= 회사의 재산만 분할하는 것. 주로 사업 구조조정, 체질개선, 사업경쟁력 확보 등을 고민하는 회사들이 선택.
인적분할(人的分割)= 회사의 재산을 분할하면서 주주들의 주식도 함께 쪼개는 것. 주로 지주회사 전환을 고민하는 회사들이 선택.

이건 내용이 조금 복잡해서 그림을 그려봤어요.

만약 대신증권이 지주회사 전환을 결심한다면 먼저 회사를 두 개로 분할하는 게 일반적 흐름.  대신증권A(지주회사) 대신증권B(사업회사)로 나눈다고 상상 해봐요. 그러면 분할 전 대신증권이 가지고 있던 자사주는 지주회사인 대신증권A가 가져가는 게 또 일반적이에요.

그럼 분할 후 대신증권A는 자사주 29%를 가지는 동시에 자사주에 대해 대신증권B 신주를 배정받아 지분 29%를 가져요. 또한 최대주주도 분할 후 두 회사 지분을 각각 13.7%씩 가져요. 물론 다른 주주들도 마찬가지.

인적분할을 마치면 지주회사인 대신증권A가 자회사 대신증권B 주주들을 대상으로 '너희들이 가진 대신증권B 주식을 우리에게 넘겨주면 우리 주식을 새로 찍어서 교환해줄게'라고 제안해요.

그럼 최대주주는 자신이 가진 대신증권B 지분을 넘기는 대신 대신증권A 지분을 받아요. 이러면 지주회사인 대신증권A 지분율이 높아져요. 이때 돈은 들지 않아요. 주식과 주식을 서로 맞교환하는 방식이니까요. 뿐만 아니라 세금도 면제받아요. (조세특례제한법상 지주회사 전환과정에서 현물출자·주식 교환 시 양도세·법인세는 과세이연)

이처럼 몇 번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대신증권 최대주주는 지주회사 지분율을 크게 높여서 지금보다 훨씬 안정적인 지배력을 갖추고, 대신증권도 회사 돈으로 쌓아두기만 했던 자사주를 활용해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다질 수 있어요.

물론 대신증권은 한 번도 인적분할이나 지주회사 전환을 언급한 적은 없어요. 다만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인적분할시 자사주가 대주주의 지배력을 높이는 용도로 활용되어온 것은 이미 수많은 기업들이 선보였던 과정이에요.(aka. 인적분할의 마법) 대신증권처럼 최대주주 지배력이 낮고 자사주는 많이 보유한 회사라면, 충분히 나중에 자사주의 쓰임새 중 하나로 예상해볼 수 있는 방법이에요.

증권사 가운데 대신증권처럼 최대주주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낮으면서, 자사주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회사가 더 있어요.

신영증권= 최대주주 지분율 26.5% but 자사주 33.5%
부국증권= 최대주주 지분율 27.6% but 자사주 42.7%

두 회사도 대신증권처럼 꾸준히 자사주를 사 모으는 회사. 신영증권은 한 달 전에도 자사주 매입 공시를 냈고요.

☞관련공시 신영증권 8월 21일 주요사항보고서(자기주식취득결정)

부국증권은 최근에는 좀 뜸했지만 2년 전까지 꾸준히 자사주를 매입했어요.

대신증권, 신영증권, 부국증권은 오랜 업력을 가진 증권사이자 지주회사 체제는 아니고, 개인오너가 존재하는데 지배력이 충분치 않은 회사. 그래서 지분승계 과제가 남아있는 회사. 이런 곳들이 모두 자사주를 쓸어 모으고 있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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