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초입까지 계속된 상승장 속 초대어급 신인들의 잇따른 데뷔로 올해 공모시장이 어느 때보다 풍성했던 가운데 기업들의 상장 조력자로 나선 증권사들도 역대급 실적을 올리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초대형 투자은행(IB) 5개사의 공모 주관 금액이 급증한 가운데 그간 IB 강자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의 그늘에 가렸던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의 부상이 눈에 띈다. 국내 증권사뿐 아니라 최근 실적이 전무했던 외국계 증권사들도 대형 주관 계약을 따내며 약진했다.
단 질적·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공모가 거품 논란이 불거졌던 점은 개선해야 할 점으로 꼽힌다.
'잠재력 폭발' 미래에셋·KB증권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과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자기자본 순) 등 국내 대형 증권사 '빅5'의 올해 공모 주관 규모는 24조7000억원으로, 전체 공모 주관 총액 37조3000억원의 70%에 달한다. 지난해 공모 주관 총액 5조2000억원과 비교하면 거의 5배가 늘었다.
이들 5개사가 올해 상장 주관을 맡은 기업 수도 2017년 42개사에서 올해 73개사로 대폭 증가했다.
개별 증권사로는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의 활약이 돋보인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공모 주관 금액이 7700억원에 그쳤지만 올해는 그보다 10배도 넘는 8조9000억원의 공모를 주관하며 경쟁사들을 여유있게 따돌리고 왕좌를 차지했다.
조 단위 공모 주관을 잇달아 맡은 게 주효했다. 상반기에는 SK바이오사이언스와 함께 초대어급으로 평가받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공모액 약 2조2000억원)의 상장을 대표 주관했고 하반기에는 현대중공업(1조800억원)과 크래프톤(4조3000억원) 등의 주관을 맡았다.
공모총액 증가율 면에서는 KB증권의 성적이 가장 뛰어났다. KB증권은 지난해 공모 주관 규모가 1000억원대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그보다 5000% 급증한 약 5조원을 주관했다. 현대중공업, 카카오뱅크 등 대형 신인들의 상장 주관사로 참여한 덕분이다.
전통의 주식발행시장(ECM) 명가 NH투자증권은 미래에셋증권에 밀려 3년 연속 1위 자리 수성에 실패했다. 2019년과 2020년 NH투자증권은 각각 1조3000억원, 2조1000억원 규모의 공모를 주관하며 2년 연속 정상을 차지한 바 있다. 올해도 3조7000억원어치를 공모 주관하는 등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경쟁사들에 밀려 4위로 내려앉았다.
외국계 증권사도 '실적 잔치'
올해 국내 공모시장 풍년에 외국계 증권사들도 모처럼 웃음꽃을 피웠다. 최근 주관 실적이 전무했던 크레디트스위스를 비롯해 골드만삭스, 제이피모간증권 등이 나란히 조 단위 공모 주관에 성공하며 국내 증권사 못잖게 쏠쏠한 재미를 봤다.
이들 외국계 3사가 대표 주관이나 공동 주관으로 주식 발행에 참가한 기업 수는 7개사로 공모총액은 9조8000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카카오페이와 SK아이테크놀로지, HK이노엔의 상장 주관을 맡은 제이피모간이 4조4000억원 규모의 공모 주관 실적을 달성하며 선두에 섰다.
카카오뱅크와 현대중공업 공모에 공동 대표 주관사로 참여한 크레디트스위스는 3조6000억원, 카카오페이와 케이카의 공동 대표 주관사인 골드만삭스는 1조9000억원의 공모 주관 총액을 기록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공모총액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증권사들이 주관수수료 수익을 많이 챙겼다고 해석할 수 있다"며 "여기에 해외 매출 비중이 일정 수준 이상이거나 향후 투자 유치를 의식한 기업들이 주관 증권사 선정에 외국계도 포함하면서 국내외 증권사 모두 상당한 실적을 올렸을 것"이라고 전했다.
공모가 고평가 논란은 '옥에 티'
올해 공모시장이 어느 때보다 풍성한 한 해를 보낸 덕분에 상장 주관사들은 알토란 같은 실속을 챙겼지만 개선해야 할 점도 존재한다.
공모가 거품 논란이 대표적이다. '상장=따상(공모가 2배로 시초가 형성 후 상한가로 마감)' 공식이 일반화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일부 기업이 시장 평가와 동떨어진 기업 가치를 산출해 논란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3분기와 4분기 증시에 나란히 합류한 크래프톤과 카카오페이가 공모가 거품 논란의 대표적인 주인공이다. 그중에서도 크래프톤과 관련한 잡음이 더 컸다.
앞서 크래프톤은 공모가 산정 당시 비교 기업으로 월트디즈니와 워너그룹뮤직 등을 포함해 고평가 논란에 불을 지폈다. 비교기업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에 할인율을 적용해 공모가 상·하단을 정하는 산출 방식에 비췄을 때 PER을 과도하게 뻥튀기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크래프톤은 결국 금융감독원의 공모가 정정 지시에 주당 희망 공모가액을 40만~49만8000원으로 내렸지만 일반 공모청약에서 경쟁률 7.8대 1에 그치며 흥행에 실패했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공모시장의 호황 속에 투자자들과 기업 간 적정기업 가치에 대한 충돌이 빈번했던 만큼 주관 증권사의 더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판단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가급적이면 공모가를 내려 투자 수익을 확대하려고 하는 반면 기업 입장에서는 공모가를 조금이라도 더 높여 조달할 수 있는 금액을 늘리려고 하는 게 당연하다"며 "공모 가격에 대한 잡음을 줄이기 위해서는 적정 가격 발견 측면에서 주관 증권사들의 객관적인 역량과 자질이 향상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