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글로벌 증시를 흔들어 온 러시아발 전쟁의 공포가 국내 투자자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됐다. 국내에 상장한 러시아 상장지수펀드(ETF)의 순자산가치가 0원이 되면서 상장폐지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일반적으로 ETF가 상장폐지될 경우 거래정지 기간을 거쳐 순자산가치를 기준으로 한 해지상환금을 받게 된다. 그러나 순자산가치가 0원이 되면 해지상환금을 받을 수 없게 돼 투자자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하한가' 직행한 러시아ETF…상폐 가능성 커졌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INDEX 러시아 MSCI(합성)' ETF는 4일 전일 대비 29.97% 하락한 1만70원으로 거래를 시작한 후 가격 변동없이 장을 마쳤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러시아 주식을 사실상 퇴출하기로 결정하면서 상장폐지 가능성이 커지자 상품을 보유했던 투자자들이 '패닉셀'에 나선 탓으로 풀이된다.
KINDEX 러시아 MSCI는 'MSCI Russia 25% Capped Index'를 기초지수로 삼아 러시아 거래소에 상장한 종목중 시장 대표성 요건을 충족한 종목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국내 ETF중 유일하게 러시아 시장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러시아 주식 익스포져(위험노출액)가 96.87%에 달한다.
최근 들어 KINDEX 러시아 MSCI는 최근 러시아의 MSCI 신흥국 지수 퇴출 소식에 하락세를 거듭해왔지만 상장폐지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ETF의 기초지수가 MSCI 신흥국 지수가 아니라 맞춤형 지수인 'MSCI Russia 25% Capped Index'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MSCI가 산출하는 지수에서 모든 러시아 주식을 사실상 퇴출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MSCI는 지난 3일 러시아 주식에 대해 0.00001 가격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MSCI가 산출하는 지수를 구성하는 러시아 주식의 종가가 오는 9일을 기준으로 모두 0.00001 수준으로 평가될 예정이다. 이 경우 KINDEX 러시아 MSCI의 장중순자산가치(iNAV)도 오늘 10일자로 0원으로 바뀌게 된다.
KINDEX 러시아 MSCI는 기초지수의 성과를 교환하는 장외파생상품(SWAP)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기초지수가 0이 되면 장외파생상품의 스왑가치가 0으로 바뀌게 된다. 이 경우 스왑계약이 조기 종료될 수 있고 ETF의 자산가치도 0원으로 하락하게 된다.
ETF의 지수 산출이 중단되거나 괴리율이 커져 상관계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장외파생상품 거래상대방 위험 등이 발생하면 상장폐지될 수 있다. KINDEX 러시아 MSCI는 세 요건에 모두 해당될 가능성이 생기면서 상장폐지 가능성이 커진 상태다.
러시아ETF 순매수 나섰던 개미의 운명은?
KINDEX 러시아 MSCI가 실제 상장폐지될 경우 ETF를 매수했던 투자자들의 손실은 크게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들은 ETF가 상장폐지되면 남은 순자산가치를 기준으로 산출된 해지상환금을 지급받게 된다. 그러나 KINDEX 러시아 MSCI의 순자산가치가 0원이 되면서 해지상환금 역시 제로(0)가 될 전망이다.
특히 최근 들어 KINDEX 러시아 MSCI를 대거 사들인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이 클 것으로 보인다. 개인은 지난 한 달간 KINDEX 러시아 MSCI의 가격이 하락하자 이를 저가 매수 기회로 삼아 8511억원어치 순매수를 기록했다.
오는 10일 실제로 KINDEX 러시아 MSCI의 순자산가치가 0원이 되면 이후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될 전망이다. 이 경우 투자자들은 거래 정지가 되기 전 매도에 나서야 투자금의 일부라도 건질 수 있다. 일반 주식과 달리 정리매매없이 거래 정지후 바로 상장폐지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상장폐지되는 주식은 정리매매 기간을 통해 매도할 기회가 주어지고 이때 변동성을 노린 일부 투자자들이 매수에 나서기도 한다"면서 "ETF는 거래정지 이후 곧바로 상장폐지, 투자신탁 해지 단계를 밟게 돼 이같은 기회조차 없다"고 말했다. 이어 "순자산가치가 0원이 되는 것이 확실한 ETF를 거래 정지 전에 매수할 주체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