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 고금리 정책과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자산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에 다시 이목이 쏠린다. 일반적으로 금은 인플레이션 헤지(hedge·위험회피) 수단으로 각광받는 자산이어서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조금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진단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이른바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가시화되면서 달러가 아닌 모든 자산이 가격 추락을 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현물 ETF에 몰려드는 개미…강달러에 가격은 하락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개인투자자들은 'KINDEX KRX금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148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이 ETF는 한국거래소의 KRX금시장에서 거래되는 금 현물의 수익률에서 실물 보관비용을 차감한 순수익률을 반영해 산출한 지수를 활용한다. 파생형 ETF가 아니기 때문에 퇴직연금 계좌에서도 투자가 가능하다. 간접적으로나마 '개미'의 금 투자 수요를 읽을 수 있는 상품인 셈이다.
금융시장에 금리인상, 인플레이션, 전쟁 등 악재가 불어닥치며 주식과 채권, 가상자산을 막론하고 자산가격이 죄다 급락하자 안전자산인 금에 수요가 몰려든 것으로 풀이된다. 실물자산이자 가치의 '저장' 수단으로서 투자자들은 금에 주목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흐름과 다르게 금 가격은 최근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선물 8월물 가격은 온스당 1724.80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이는 연중 최저치로 지난 3월8일 고점(2049.90달러)보다 15% 급락한 가격이다.
최근 유럽을 필두로 경기침체 시그널이 짙어지면서 "믿을 건 오로지 달러"라는 심리가 급속도로 퍼진 데 따른 것이란 분석이다. 심수빈 키움증권 연구원은 "경기침체 전망에 따른 시장 불안에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서 금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침체 가시화에 긴축속도 늦춰질 것…금 반등 기회"
앞서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31년 만에 무역수지 적자를 냈고, 미국 장단기 국채 금리는 또 한번 역전현상을 보였다. 금리 역전의 경우 지난 3월과 6월에 이어 올해에만 세 번째다. 일반적으로 채권금리는 불확실성을 반영해 장기물 금리가 단기물보다 높다.
그런데 이게 역전됐다는 건 그만큼 당장의 경기를 더 나쁘게 보는 투자자가 많다는 것이다. 노무라증권은 지난 4일 경제전망보고서에서 한국과 미국, 유로존, 영국, 일본, 호주, 캐나다 등이 앞으로 1년 안에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에 강달러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유로화와 엔화, 파운드화 등 세계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는 지난 12일(현지시간) 108.21에 거래를 마쳤다. 2002년 10월 이후 19년9개월 만의 최고치다. 금이 달러로 거래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강달러 국면에서 금의 체감 가격은 더 비싸진다. 역시 금 가격을 끌어내리는 요인이다.
다만 반론도 만만치는 않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당장은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를 한번에 0.75%포인트 인상)을 밟더라도, 경기침체가 가시화되고 있는 만큼 오는 9월부터 긴축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전망에서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긴축 속도가 빨라질수록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진다"며 "침체를 반영하면 연준은 9월 이후 금리인상 속도를 베이비 스텝(한번에 0.25%포인트 인상)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이 경우 장기금리가 하락하며 금 가격의 반등을 이끌 수 있다"고 분석했다.
모든 자산가격이 하락하는 국면에서 본연의 투자 목적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는 평가다. 당장 가격의 가파른 상승을 기대하기보다 불확실한 시장에서 일종의 도피처로 금에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인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부터 주요 자산의 수익률이 전반적으로 부진해진 가운데 금 가격은 상대적으로 선방했다고 봐야 한다"며 "앞으로 경기 불안감이 확대되면서 금 수익률의 상대적 우위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